[Opinion] 사적이고 은밀한 대화 [영화]

영화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
글 입력 2024.02.1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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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장면을 간직하다 #4 – 제인 버킨의 ‘평범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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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전기를 떠올리면 보통 그 사람과 관련된 객관적인 사실과 거기에 얽힌 여러 인물의 ‘뒷이야기’가 더해져, 인물 혹은 시대에 대한 회고 내지는 평가를 기대할 것이다. ‘아녜스 바르다’가 그린 ‘제인 버킨’의 삶. 이 엄청난 소재를 보며 많은 사람이 이 ‘다큐멘터리’(그나저나 정말 이것을 다큐라고 불러도 될까?)에 품은 기대를 예상할 수 있겠다.

 

잠시 ‘제인 B’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단락을 하나 끼워 두고자 한다. 제인 버킨은 누구인가?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 패셔니스타, 세르쥬 갱스부르의 (한때) 연인이자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어머니, ‘버킨 백’의 뮤즈, 그를 둘러싼 화려한 예술 세계와 사랑, 딸,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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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욕망>(1966)에서의 제인 버킨(왼쪽).

 

 

그러나 제인 버킨은 아녜스 바르다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평범한 사람으로 나를 봐줬으면 해요’.

 

어쩌면 제인의 이 요청이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는 제인 버킨의 삶을 시간의 순서대로 퍼즐을 맞추고, 그의 삶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담아내려 노력을 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제인 버킨은 자신이 되고 싶은 얼굴, 역할, 자신이 떠오르는 생각, 예술, 사랑을 툭툭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그는 좀 전에 이야기한 바로 그 장면 속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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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를 바라보는 감독이자 카메라, 즉 아녜스 바르다의 시선은 따뜻하고 애정 가득하다. 감독은 제인의 집에 핑크빛 대형 리본을 달아두고, 제인의 삶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사실 인간적인 면에서 제인의 ‘진짜’ 삶과 이야기는 어쩌면 좀 따분하나, 그것이 바로 인간 아닌가!) 제인이 원하는 것을 재현해 내는 마법사이다.

 

제인을 담아내는 카메라(아녜스)의 시선이 유쾌한 것은, 그 방식이 단순히 호의와 애정만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건조하게 거리를 지키면서도 그 속에 단단하게 굳은 심지 같은 애정을 비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V’는 ‘B'에게 함께 연기하고 싶은 상대역을 골라 보라고 한다. “말론 브란도.” “그건 우리 예산에 안 맞아.” “그럼 장 피에르 레오.” 그렇게 다음 장면에서 B의 소망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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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에서는 제인 버킨의 판타지가 모두 현실이 된다. 

 

 

이런 애정과 응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은 신기하게도 가장 마지막에 제인의 사십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꽃을 전달할 때이다. (실제 씬의 촬영 순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마지막에서 이 영화 자체가 제인이라는 사람의 생일, 나아가 그의 인생을 축복하고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라니! 영화 감독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고 수준의 헌사라고 할만하다.

 

혹자는 이 ‘다큐멘터리’ 내지는 ‘픽션’이 너무 지루하고 난해하다며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실망이 ‘아녜스 바르다’와 ‘제인 버킨’이라는 예술인의 삶과 명성에서 비롯된 기대 때문은 아닌지 생각한다. 이 영화는 줄거리가 있는 어떤 ‘이야기’라기보다는, 아녜스가 제인을 취재한 인터뷰이면서, 동시에 아주 편안하게 차를 마시며 나누는 둘 사이의 싱거운 농담에 불과하기도 하다. 혹은 ‘V’가 ‘B’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사진에 적어 묶어 놓은 일종의 사진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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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적인 이야기가 무슨 영화사에 의미를 갖냐고? 글쎄, 내 이야기를 이렇게 풀었을 때 재미가 있을까? 사적인 이야기가 다수의 타인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 상당한 재능이다. 고로 이 작품은 유쾌하다가 관능적이다가 다시 즐거워지는 충분히 흥미로운 영상 작품이다.

 

이 영화 속 제인의 맨얼굴을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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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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