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베를린, 7월 2일 일요일 [여행]

여름의 베를린이 내게 일러준 것들
글 입력 2023.12.1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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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나는 6일간 베를린에 있었다. 아래는 그중 하루, 일요일에 남긴 짧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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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일요일의 마우어파크. 플리마켓에 들러 코닥 디카를 샀고 근데 12장 찍었는데 메모리가 부족하다네. 플리마켓을 지나 잔디밭에 도착했는데 푸드트럭에서 맥주 한 병에 4유로. 그래도 살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은 잔디 위에 나도 일정 간격을 맞춘 하나의 점이 되고 돗자리도 없이 털썩 드러누워 이어팟으로 슬롬의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듣는 지금은 오후 두 시. 썬베딩. 풀 위에서 안락하다는 생각을 처음 해보며. 내 옆에는 책과 맥주와 디카. 베개 삼은 가방과 양산 삼은 모자. 잔디가 어찌나 싱싱한지 축축해지는 나의 등과 엉덩이. 내 앞에는 신발을 벗고 헤드폰과 맥주 한 병을 끼고 혼자 누워있는 제이크 질렌할을 닮은 남자. spike ball이라 쓰여있는, 처음 보는데 재밌어 보이는 공놀이를 즐기는 남녀 4명, 그리고 수많은 가족과 친구들, 반려견, 춤추는 사람들, 박수 소리, 흐린 하늘이 개고 적당한 구름과 맑은 햇빛, 반짝이는 잎들, 불어오는 바람, 흩날리는 나무들, 그 찬란한 소리…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삶은 지속할 가치가 있다. 삶은 어느 날 내게 어떤 표정을 지어 보이더라도 내가 태어나 처음 받은 선물이다. 이 사람들은 늘 웃어준다. 처음 보고 다신 보지 않을 나에게도. 독일인들 중에 비건 인구가 많으며 환경 보호에도 적극적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들에겐 당장의 행복과 직결되는 거지. 지구가 변하면 당장 일상이 무너지는 거지. 지구가 빌려주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만끽하는 사람들. 과하다 싶을 만큼 많은 공원. 사람이 많아도 앉을 자리가 더 많은 의자와 벤치, 그리고 잔디. 베를린에서 공원이 관광지 중 하나가 되어도 손색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늘을 피해 볕의 테두리에 몸을 비빈다. 이런 삶의 생생한 목격. 여름이라는 계절에 호불호가 없을 사람들. 따스함이 다시 돌아올 걸 알기에 꼭꼭 씹어 나머지 계절을 삼킬 사람들. 여름의 베를린이 그렇게 좋대. 자주 들려왔다. 소문보다 더 찬란하다.

호스텔과 외로움 때문에 솔직히 서울 가고 싶었는데 마음을 다잡는다. 낭만은 거창하지 않다. 맥주 한 병과 햇살과 잔디와 바람, 시야를 뒤덮는 흩날리는 녹색, 하늘색, 흘러가는 하얀색들까지. (물론 거창하게 유럽까지 와서 느끼지마는) 구름에 가렸던 햇볕이 다시 내리쬘 때마다 가끔은 세례를 받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맥주가 유별나게 맛있다기보단 맛있어지는 도시. 약간은 취한 채로 거닐어도 술주정이 푸른 바람에 영영 떠내려가는 도시. 가정을 꾸려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도시. 가끔은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런 삶도 있구나. 이렇게 살아도 되구나.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어디까지나 겨우 며칠 머무르는 여행자 신분이다 보니 분주하게 움직였고 여기까지 와서도 분주한 내 모습에 조금 서글펐는데 진짜 일요일이 돼서야 나의 여행은 늘 일요일의 연속이었음을 상기한다. 베를린에서 보낸 6일. 6일간의 일요일. 다시 바쁘지 않은 듯이 길을 헤매어볼까. 일상인 듯 숨 쉬어볼까. 여행의 하루하루. 분주한 평일을 보내고 찾아온 주말, 느지막이 일어나 텅 빈 이틀을 마주한 그 도시의 여느 주민처럼. (이렇게 써 놓고 난 내일도 다리가 얼얼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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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시야가 간결해질 때마다 나는 베를린에서의 6일을 떠올리고 싶다.
 
이 세상에 태어나고 존재하는 까닭이 취업을 하고 경쟁을 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시간이 나를 추격할 때마다 정해진 규격의 열차에 올라타 안락하게 숨어들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무사히 도착하겠지만 나는 이곳이 어디이며 어디를 지나온 건지 모르고 싶지 않다. 그릇된 판단이더라도 내가 내딛는 발걸음만이 나를 움직이고, 나답다고 믿는 삶을 꾸준히 실험하고 신뢰하며, 타인에게 사로잡히지 않고 내가 옳다고 믿는 태도로 삶과 사람을 대하고 싶다.

이곳 사람들은 베를린'에서' 살기보다는 베를린'과' 산다. 도시는 인위적으로 자신을 뽐내기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주지의 역할에 몰두한다. 그런 도시는 순순히 아름다워진다. 안과 밖, 도시와 건물의 경계를 흐리는 테라스. 자연과 문명의 공존, 아니 애초에 둘을 구분 지은 적 없다는 듯 흩뿌려진 공원과 벤치. 일정한 간격으로 끝없이 비치된 주황색 쓰레기통. 자아를 의심하거나 증명할 필요 없이 각자의 느낌이 유일한 규율이 되는 미술관. 늘 행복한 반려동물과 아이들. 서로를 시선으로 핀잔하지 않은 채 각자 갈 길을 가고 할 일을 할 뿐인 사람들. 그러면서도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주저 없이 손길을 건네곤 한다. (제임스사이먼파크에서 병따개 없이 맥주병과 사투하고 있으니 자기 열쇠로 한 번에 따준 형이 아직도 생각난다. 혼자 잔디 위에서 작업을 하다 유유히 사라졌다)

서울에서는 묘하게 얹혀사는 느낌이 든다. 나는 종종 서울의 눈치를 본다. 서울은 서울의 것인 것만 같다. 당연한 사실이 당연해서 서글프다. 정말 서울이 그런 걸까, 이곳에 사는 사람들 때문인 걸까, 아니면 그저 나의 마음가짐 탓인 걸까.

베를린에서 나는 혼자였고 명확히 외로웠으며 말도 통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도시한테만큼은 소외되지 않았다. 내가 느낀 베를린은 베를린의 것도, 베를리너들의 것도, 관광객의 것도 아니었다. 어디에도 소유되지 않는 도시는 투명한 지반 위에 자리 잡은 각자의 일상을 돋보이게 만든다. 일상을 선명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기반을 마련해준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자전거를 타고 책을 읽을 뿐인 우리의 일상. 베를린의 자유로움 안에서 그 가치가 극대화되는 것이다. 사실은 이런 게 가장 중요한 걸지도 모르는데. 종종 우리는 손쉽게 휩쓸리고 의심하지 않은 채 허우적거린다.

나 역시 자주 허우적거릴 것이다. 다만 그럴 때마다 물 밖의 세상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사는 방법은 지구의 면적만큼 넓다는 점을 간직해야 한다. 그 사실을 베를린은 아무 말 없이 내게 일러주었다. 귀중하고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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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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