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과거의 나와 함께 살아가기 - 뮤지컬 마틸다 [공연]

글 입력 2024.03.13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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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나는 런던 여행을 다녀왔다. 독일에서 학기가 끝나지 않아 영국은 이틀밖에 머물지 못함에도 1월에 런던을 방문한 것은 딱 한 가지,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였다. 나의 집은 서울.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기에 한국에서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겠지만, 대극장에서 하는 뮤지컬은 너무나 비싸 볼 염두도 내지 못하곤 했다. 반면 영국 런던은 대부분의 뮤지컬이 전용 극장을 가지고 매일 공연을 진행하며 티켓 가격도 한국에 비해선 염가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1) 태어나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은 기만이지만


 

[크기변환]마틸다 생일파티.jpg

 

 

<마틸다>의 첫 번째 넘버는 Miracle이다.

 

My mummy says, I'm a miracle (ah)

My daddy says, I'm his special little guy

I am a princess, I am a prince

Mum says I'm an angel sent down from the sky


엄마에게 나는 기적이며 아빠에게 나는 특별한 존재이다. 공주이며 왕자이고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이기도 하다. 어떠한 수식어도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어떤 통념의 극단이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마구 사랑해 준다는 어떤 통념이다. 부모가 차려준 생일상 앞에서 넘치게도 적절한 사랑과 돌봄을 받은 아이들은 내내 웃는 얼굴이다.


이때 만삭인 부인이 등장한다. 그 여성은 자신이 임신이라는 사실조차 모른다. 이미 아이가 하나 있으며 더 이상의 자녀 계획은 없었던 여성이다. 이런 여성에게 산부인과 의사는 어여쁜 여아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그녀의 말에 의사는 단호히 말한다. 생일상을 받은 아이들이 외쳤던 것처럼 “Every new life is a miracle (miracle)”.

 

 

[크기변환]마틸다 원언가족.jpg

 

 

정말? 웜우드 부부는 극에서 무지한 파렴치한이다. 출산 직전이 되어서야 임신 사실을 깨달을 정도이며 평소 행실 역시 좋지 못하다. 그렇기에 의사가 말하는 ‘miracle’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심지어 출산을 원하지 않는 부모들에게 당신의 아이는 기적이기 때문에 출산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은 권위가 담긴 독촉과 협박일 뿐 원의미를 담지는 못한다. 극적으로 전개되는 부분이기는 하나, 우리는 여기에서 사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사실-누군가의 출산이, 그로 인한 나의 출생이 환희와 기쁨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인구 정책의 실패일 수도, 무지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대면해야만 한다.


My mummy says, I'm a lousy little worm

My daddy says, I'm a bore

My mummy says, I'm a jumped-up little germ

That kids like me, should be against the law

My daddy says, I should learn to shut my pie hole

No one likes a smart-mouthed girl like me

Mum says I'm a good case for population control

Dad says I should watch more, TV


마틸다는 이 노래 마지막 부분에 처음 등장한다. 다른 아이들이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던 것처럼 마틸다 역시 본인이 적절히 돌봄 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Miracle이라는 노래에는 이렇듯 세 주체가 등장한다. 마틸다를 제외한 아이들, 마틸다의 부모와 산부인과 의사, 그리고 마틸다. 이 노래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 누구인가. 이 노래는 누구의 노래인가. 나는 기적이라는 말 하에 이 대립하는 주체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틸다의 총명함 때문에 혹은 부모의 우스꽝스러운 면모 때문에 놓치기 쉬우나 마틸다의 원가족은 마틸다에게 심각한 수준의 아동 학대를 저질렀다. 마틸다와 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자라나며 자신을 길러주는 원가족 구성원들과 나름의 관계를 정립해 나간다. 첫 장면에 등장한 아이들의 모습이 이상향이라는 것도 알게 되며, 나의 모든 상황이 그렇지는 못함도 인정해 나간다. 아이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의 처지를 타협하고 타인(유아 시기 주로 가족)과 협상하며 내 자리를 만들어 낸다.

 

나는 어렸을 적 내가 가족으로부터 겪는 부정적 감정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불경스럽고 어차피 먹고 자는 모든 걸 가족에게 의지하고 있기에 그런 생각에는 어차피 대안이 없기 때문이었다. 대신 이상한 어른들과 똑똑한 아이들이 나오는 수많은 아동 소설들이 존재하는 것은 그러한 현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마틸다는 이렇게 말해준다. 누군가가 나를 귀히 여겨 주어 귀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이 땅에 태어났기 때문에. 오직 나의 존재만으로 나는 귀한 존재임을. 나의 귀함을 그 누구도, 심지어 부모조차도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 어른들이 잘못한 것일 수도 있으며 나를 아껴주지 않는 가족에게 아낌 받으려 내가 느끼는 감정조차 거짓으로 만들어 버릴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2) 가족 당하기


 

[크기변환]마틸다 허니.jpg

 

 

어렸을 때 영화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선생님과 마틸다가 가족이 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마틸다가 도서관에서 입양 절차에 대한 서류를 발견하고 선생님께 가족이 되기를 요청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겨우 평화를 찾은 학교, 기댈 수 있는 선생님을 영원히 떠나 맞지도 않는 가족과 평생 살기는 싫었을 것이기 때문에. 마틸다 본인이 겨우 만들어낸 관계들을 포기해야하는 것은 가족들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선생님이 그 입양 서류에 동의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선생님에게는 그 외에도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학대받았던 이모에게서 마침내 분리되고 재산을 회복한 젊은 성인 여성에게는 아직 십수년의 양육이 필요한 아이와 가족이 되는 것 이외에도 더 많은, 사회가 말하는 더 나은 선택지가 여럿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입양 서류를 받아들자마자 서명을 하는 장면은 극을 빠르게 끝내기 위한 장치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틸다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그뿐이었기에 그런 급한 마무리도 싫지는 않았다. 마틸다와 선생님이 잔디에 누워 피크닉을 하는 장면에서는 안도감을 느꼈고 그 장면을 상상하면 마틸다 다시 보기를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 다시 본 마틸다에서 알게 된 것은 허니 선생님 역시 아프다는 것이었다. 아동기부터 이어진 이모로부터의 학대, 경제적 궁핍, 성인이 되었음에도 학대상황에서 도망치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진 정신. 못된 교장을 몰아낸 사건은 아이들에게 통쾌한 사건으로 남았겠지만 이모를 떠나보낸 허니 선생님에게는 통쾌함만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감정이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긴 시간이 남긴 상처는 이모가 사라지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못한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허니 선생님에게도 마틸다가 필요하다는 것을. 물론 허니 선생님은 마틸다의 훌륭한 보호자가 되어줄 것이다. 둘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모두 같지는 않으니. 그러나 이들이 만들어나갈 가족은 전통적인 엄마-딸의 관계로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상처받은 이들의 연대. 부모 자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 무엇도 인생에서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 이들의 첫 번째 선택들. 이런 말들의 엄마 혹은 딸보다 강력할 수 있음을 나는 믿고 싶다.

 

운명은 우연이다. 우연은 강제다. 내가 요청한 적 없는 상황에 나는 휩쓸리고 휩쓸림 속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 온전한 선택이라는 것은, 온전한 내 삶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의 기적이며 과거이고 미래임을 확인한다.


 

[진세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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