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노인의 폐지는 물살을 갈라 먼 곳을 간다 - 연극 '페이퍼 하우스' [공연]

글 입력 2024.03.2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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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페이퍼 하우스>는 약간 빛바랬지만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페이퍼 하우스의 무대에는 6개의 문이 배치되어 있다. 문들의 모양은 성처럼 대칭 모양으로 비치되어 있다. 문에는 바퀴가 달려 자유롭게 옮길 수 있다. 종이의 질감으로 프린팅된 문에는 호실을 나타내는 명패가 붙어 있다.

 

연극이 시작하면 노인이 무대 중앙에서 폐지에 무언가 쓰고 있다. 만면에 웃음을 띤 이 노인이 폐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착은 작품의 후반부에서 드러난다. 폐지에 적었던 그의 출사표는 작품의 끝에서 훌륭하게 성취된다.

 

여섯개의 방에는 폐지 줍는 노인, 사업 실패로 인해 일용직을 뛰는 남자, 국제결혼으로 입국했다가 이혼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베트남 여자, 약간 여성스러운 이미지의 삼수생, 인디래퍼, 작가지망생이 살고 있다. 이들은 현대사회에서 고립된 이들로, 월세 30만원도 내기 힘들어하면서 공용 공간에 있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이들이다. 문에서 충분히 드러나는 것처럼, 마치 노인의 폐지처럼 이들의 쓸모는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작품은 중반까지 이들이 각자 어떤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일용직을 뛰는 남자는 -후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애먼 사람들을 향해 담배를 피우다 침을 뱉고, 보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상관없이 래퍼는 웃통을 까고 노인과 싸운다. 라면을 먹을 때만 나오는 삼수생은 폐지 위에 배려 없이 자신의 구르마를 놓는다. 작가 지망생은 자신의 글을 옥상 위에서 던진다.

 

누군가 비 오는 날 폐지 줍는 노인의 폐지를 훔쳐가면서 평행선을 그리던 등장인물의 관계가 급변한다. 자신이 모은 종이에 애착을 둔 노인은 사람들의 문을 두드리면서 자신의 종이를 돌려달라고 소리 지른다. 관리인인 할머니는 노인의 폐지를 다시 찾아주기 위해 폭력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내세운 것은 폐지를 찾을 수 있도록 거주민들의 문을 열거나, 라면을 없애거나, 월세를 올리는 것이었다. 자신의 공간을 여는 것을 거부하는 이들은 결국 라면을 없애는 것에 모두 동의한다.

 

이후 서로의 존재를 짜증스럽게만 인식하던 이들이 서로 점차 인식하게 된다. 소소하게는 일전의 사건으로 미안함을 느낀 베트남 여자가 자신의 음식을 주변 사람과 나눠 먹는 것부터 시작한다. 좀 더 가깝게는 래퍼가 작가 지망생이 비행기로 날려보낸 글을 주워서 읽은 후, 옥상 위에서 비행기를 날리는 작가 지망생에게 래퍼는 진솔한 태도로 가까워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폭력적으로 두들겨지던 문은 폐지 사건이 계기가 되어 살짝 그 틈을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작가 지망생과 노인의 만남이다. 처음에는 노인이 작가 지망생이 버린 종이를 폐지로 생각해 줍는다. 그리고 작품의 전개에 따라 옥상에 있는 작가 지망생과 눈이 마주친다. 노인은 어느 날 그녀가 버린 종이를 모아 그녀의 방 앞에 가져다 놓는다.

 

작가 지망생은 폭발적인 분노를 표현한다. 일상 수준을 넘어선 분노에 맞서, 노인은 그것이 쓰레기가 아님을 이야기한다. 작가 지망생은 노인에게 폐지에 자기 자신을 투영하여 버리는 노인의 삶을 모욕하고, 봉투를 풀어 노인의 머리 위에 자신의 글을 쓰레기처럼 붓는다. 그 모습에는 자신의 글에 그 어떤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결심마저 비친다.

 

이윽고 분노와 슬픔에 휩싸여 울고 있는 작가 지망생에게 노인은 그녀의 머리에 작은 상자를 씌워 마음껏 울도록 내버려 둔다. 작가 지망생이 목놓아 울고 있는 것을 보면서 노인은 그것을 다시 모아 다시 담아 돌려준다. 그리고 자신이 오랜 시간 폐지를 주우면서 종이의 쓸모를 잘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작가 지망생은 자신의 머리에 씐 상자와 종이를 가지고 돌아간 후, 소각로에서 자신의 글을 모두 태워버린다.

 

베트남 여자가 음식을 나눠 먹기 위해 다른 거주민들을 부른 어느 날, 기어코 일이 터진다. 작가 지망생이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그녀의 방문을 노인은 몸을 부딪쳐 열고, 작가 지망생은 가까스로 생존한다. 하지만 노인은 기력을 다해 사망하고 만다.

 

노인의 사망 이후, 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관리인 할머니의 입을 통해 노인이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은 이후 폐지를 줍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 밝혀진다. 연극의 초반에 그가 쓴 글에는 자신이 쓸모없는 폐지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폐지를 모아 배를 만들어 바다로 가겠다는 꿈이 담겨 있음이 밝혀진다. 

 

폐지에 쓰인 글을 본 작가 지망생은 죽는 것을 포기하고, 페이퍼 하우스의 다른 사람들의 제안에 따라 바다에 놀러 가기로 한다. 떠들썩하게 떠드는 입주민들의 뒤를 따라 작가 지망생은 노인을 기리며 천천히 퇴장한다. 무대의 마지막 씬, 처음 등장했던 때처럼 밝은 미소를 띤 노인이 등장해 무대의 중간에 종이배를 놓는다. 그리고 문들을 눕히고 세워서 배처럼 만든다. 작품의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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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의 중심 소재는 '노인의 폐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부인의 시선으로, 노인의 시선에서 그것은 '노인의 뱃조각'이다.

 

작가지망생의 말대로, 노인은 쓰레기 같은 폐지에 자기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와 달리, 그는 그것을 버리거나 불태우지 않고 모아 쓸모있는 무언가로 만들고자 하는 원대한 포부를 꿈꾼다. 버리고 줍는 행위, 불과 물, 젊은이와 늙은이, 비관과 낙관, 작가 지망생과 노인의 대비는 이 작품의 메시지를 뚜렷하고 따뜻하게 만든다. 죽음을 향해 내달리던 젊은이를, 가장 살고 싶었던 늙은이의 죽음을 통해 삶으로 되돌려놓은 작품의 결말은 묘한 감동을 준다.

 

사실 이 대비가 강렬할 수 있었던 것은 작품 전반에 작가 지망생의 내면 묘사가 충실하게 깔린 덕분이다. 옥상에서 자신의 글을 종이비행기로 만들어 날려버리는 행위는 작가 지망생의 내면을 인상 깊게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글로 표현된 자기 자신의 일부를 잘라 쓰레기처럼 버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노인의 폐지를 보고, 누군가는 버리고 싶지 않았던 종이라고 이야기하는 대사처럼, 작가는 언제든 소각할 수 있는 자신의 글을 구태여 완전히 불태워 버리지 않고, 옥상 위에서 자신으로부터 멀리 가지 못하는 빌라 바닥에 린다. 그 행위에는 그녀의 삶에 아련한 미련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약간의 삶에 대한 희망을 담은 그 행위를, 살아있는 사람들이 포착해서 돌려주거나 보관한다. 노인은 그것을 다시 모아 쓰레기가 아님을 공고히 해주고, 래퍼는 작가 지망생의 문앞에서 '이제 이건 누나가 버렸으니까, 내 거'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행위들이 궁극적으로 옥상 위에서 자기 자신을 잘라버리는 행위를 멈추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영원과 염원', '그 노인의 폐지가 좋은 일을 했네'와 같은 주옥같은 대사들이 이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의 수준을 크게 끌어올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을 보는 내내 요즘 같은 세상에도 이런 따뜻한 마음으로 올라오는 작품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메시지를 품고 있는 이 연극에도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다. 일용직 노동자와 삼수생의 에피소드가 다른 인물들에 비해 너무나 얕게 묘사된 부분이나, 작품의 끝에서 구태여 바다를 가게 한 전개가 다소 작품의 메시지를 드러내기 위해 억지스럽게 삽입된 느낌이 있었다. 물론 노인이 공을 들여 배를 만들어내는 장면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묘한 감동을 주긴 했지만, 묘사하지 않았으면 그의 마음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을 것 같아 아쉬웠다.

 

작가의 내면 묘사는 훌륭했지만, 그 내면을 스크린을 통해 텍스트로 전달하는 부분도 그랬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종이를 닮은 문을 이용한 연출은 좋았는데, 스크린을 통한 연출은 다소 혼란스러웠다.관객으로서는 텍스트가 퍼져있는 화면을 보기 힘들고, 스크린을 통한 연출이 꼭 필요하거나 작품의 메시지와 중요하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임팩트가 문을 통한 연출과 인물들간 묘한 시선 맞춤에 있음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의 이런 사소한 불편들 때문에 이 작품의 메시지와 완결성이 잘못 전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장인물이 여럿 등장하는 이 연극에서는 인상 깊은 장면과 캐릭터 묘사를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는 할아버지와 작가지망생이 눈을 마주치고, 결국 마주한 작가지망생이 -아마 자기자신에게 향하고 있는-엄청난 원망을 쏟아내고 할아버지가 작가 지망생에게 상자를 씌워주는 그 장면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어떤 위로와 연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버려진 이가 자신을 버린 이에게 내미는 그 따뜻한 손길은, 노인의 개인 삶에서도 자기 자신의 삶을 폐지 속에 두지 않고 더 넓은 세계를 항해하게는 포부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그 노인의 폐지는 정말로 멋진 일을 한다. 앞으로도 이런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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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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