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만남부터 이별까지, '개를 낳았다' [만화]

글 입력 2024.02.10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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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다. 대개는 헤어짐을 예견하고 만남을 시작하기 마련이다. 어떤 헤어짐은 머리카락을 자르듯이 간단한 것이고, 또 어떤 헤어짐은 몇 년을 곱씹으며 후회하는 어려운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대개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해당한다. 헤어짐이 힘겨워질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이유는 다양하겠으나 가장 강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주는 행복함과 두려움은 아이러니하게도 비례관계에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할수록 이 사랑이 끝나는 것이 두려워지니까. 그럼에도 통제할 수는 없다. 이미 사랑에 빠져버린 사람은 본인조차도 막을 수 없다. 이별이 힘들어질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을 멈출 수 없게 된다.

 

*

 

‘애완동물’보다 ‘반려동물’이라는 용어가 친숙한 지금은 천만 반려인 시대. 일면식 없는 인간보다 나의 반려동물을 우선시하는 사고와 동물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는 퍼지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동물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건가. ‘고작 동물’인데, 어떻게?

 

그 답은 이선 작가의 <개를 낳았다>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인공 ‘다나’는 우울증에 ‘히키코모리’마냥 생활하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다. 아주 즉흥적인 계기로 강아지를 ‘명동이’를 분양받고 다나의 삶은 변한다. 늦은 새벽 취침하고 오후에 기상하는 생활패턴은 정상으로 돌아오고 청소나 외출, 산책을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 명동이의 사회화를 위해 이웃 주민과의 교류에도 우물쭈물 참여하고 가족들과 대화도 시작하게 되었다. 명동이와 다나를 둘러싼 (인간과 개를 포함한) 주변 인물은 점점 많아졌고 그에 따라 다양한 사건을 겪고 성장한다. 명동이는 성견으로, 다나는 어른으로.


고작 작은 개, 그것도 소형견 포메라니안 한 마리지만 다나는 명동이를 만남으로써 만족스러운 새 삶을 찾았다. 결핍을 채우고 책임을 배웠다. 그 작고 어린 강아지가 다나의 딸이자 친구가 되었고, 내일을 기대하는 이유와 고된 하루를 버틸 힘이 되어주었다.

 

 

개를 낳았다.jpg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건,


 

 

"그 작은 개가 내 인생을 바꿨어"

 

 

소설 속이나 어디 대본집에나 새겨진 문장 같지만 반려동물을 키워본 나에겐 지극히 실체적인 문장이었다. 왜냐하면,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특별한 일이기 때문이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지게 되는 것이다. 작중에도 언급되었지만, 반려동물은 동물이기에 보호자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밥을 차려 먹는 것도 산책하는 것도 할 수 없다. 화장실 뒤처리는 고사하고 아픈 몸을 살피는 것조차 못 하는 것이 동물이다. 이 생명의 숨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내가 절실히 필요하다. 사소한 실수에 연약한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늘 안고 살아가는 것은 반려인의 숙명과 같다.


또 반려동물 대부분은 수명이 아무리 길어도 20년을 넘기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면 나는 한 생명의 생애 주기 전체를 관찰하고 함께하며 책임지는 것이다. 의미 없이 보내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감하고 오늘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죽음 앞에 무력한 나를 마주하기도 하고 처음으로 시간이 고까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반려동물과의 삶을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조건 없는 애정과 선의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나는 이 동물을 데려온 순간 그의 세계가 된다. 하루 온종일 나를 기다리고 나와 함께하는 시간에 가장 행복해하고 매번 나의 부족함을 용서하는 반려동물을 볼 때면 인간에게선 구할 수 없는 무한한 애정을 느낀다. 심지어 매를 맞으며 큰 강아지도 돌아가는 곳은 결국 주인의 곁일 정도다. 멍청할 정도로 나만 사랑하는 작은 동물은 이내 나의 효능이 된다.


이렇게 특별한 반려동물과의 관계는 김인육 시인의 “질량과 부피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을 증명한다. 그래서 그 제비꽃같이 자그마한 계집애가 그랬듯이, 이 작고 힘없는 동물은 나를 지구보다 큰 중력으로 끌어당긴다. 그 무한한 사랑을 받다 보면 통제할 수 없이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다. 처음에는 내가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 같다가도 금세 전세는 역전되어 반려동물이 나를 키우는 것 같은 감각이 든다. 내가 낳은 것 마냥 나 또한 이 동물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가 된다. 그렇게 힘든 헤어짐을 각오하고서라도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만다. 




죽음을 바로보기


 

내 고양이는 다나의 시골 개 덕진이처럼 4년을 살았다. 그리고는 덕진이처럼 네 번째 생일 일주일 후에 갑자기 떠났다. 내가 본가에 도착하고 다음 날, 이미 진행이 많이 된 심장병을 발견했고 병원에 다녀온 그날 밤에 숨을 거두었다.


또 작중 강아지 유치원을 운영하는 ‘민영’의 노견처럼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이했다. 입원실에서 힘겨워하는 내 고양이를 두고 민영이와 같은 고민을 했었다. 우리 고양이가 버틸 거라 믿고 병원에 두고 올지, 아니면 사랑하는 가족 품에서 마지막을 맞게 할지. 결과적으로 나는 민영과 반대로 고양이를 병원에 두고 왔고, 지금까지도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간호사에게 안겨줄 때 내 옷을 꽉 잡던 발톱이 내 마음속까지 할퀴어놓은 듯 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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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떠난 지 2년이 되었지만, 누구에게도 내 마음에 관해 얘기한 적 없다. 개인적이고 무거운 얘기는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편한 성격 탓이었다. 그렇게 내 고양이는 마음에서 조금씩 흐려졌다. 점차 나에게서 잊혀간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마다 외로웠다.


외로움은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덜어진다. 다나와 민영과 그 밖에 다양한 방식으로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마치 공감대가 무척 많은 친구와 대화한 것 같은 후련함이 밀려왔다. 각자의 방식으로 반려동물을 만나고 살아가고 이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랜 기억 속의 추억을 끄집어내기도 했다. 아기 고양이였을 때 얼마나 작았는지, 처음 만나러 갔을 때는 어떤 계절이었는지, 내가 ‘보리’라는 이름을 지어줄 때에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처음 내 손에 뺨을 부볐을 때는 어떤 감촉이었는지.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오랜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나는 어쩌면 고양이의 죽음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억세게 사로잡혀 있었나 보다. 혼자 죄책감에 빠져 좋은 마음으로 고양이를 추억하지 못하고 점차 기억이 흐려지는 것을 죄악시하며 내 고양이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지 못했다.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자기 위안을 넘어 반려묘의 죽음을 인정하고 건강하게 극복하는 데에 정말 큰 힘이 된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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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디에도 고양이는 없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 유골을 스톤으로 만들어 보관해 뒀었다. 아직도 내 책상 한 켠을 자리 잡고 있다. 잘 어울렸던 색 바랜 분홍 꽃핀과 함께. 그렇게나마 실체를 남겨두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 내가 내 고양이를 영원히 기억하고, 또 그렇게 해야 이 고양이가 존재했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내 고양이는 이렇게 내 마음속에 남아있고, 흐려지고 가려지긴 해도 어떤 계기만 있다면 문득문득 떠오를 정도로 깊숙이 뿌리내렸다. 작가의 말처럼, 나의 환경, 나의 생각, 나의 방향. 지금의 내가 네가 있었던 흔적이니까. 이제 죽음에서 한결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내 고양이가 가장 원했을, 나의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

 

<개를 낳았다>는 고작 개 한 마리, 고작 고양이 한 마리처럼 고작 만화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에게 <개를 낳았다>는 스물셋 나의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사건을 넘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다. 내 고양이와의 만남부터 이별까지를 영원히 잊지 못하듯이, 나는 <개를 낳았다>의 첫 화부터 완결까지를 잊지 못할 것 같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봄 직한 작품이다. 지금 네이버 웹툰에서 완결 후 외전이 연재 중이니 유료로 전환되기 전에 빨리 읽어보길 바란다. 나와 같은 과거, 혹은 현재에 대한 공감이나 미처 생각지 못한 미래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다나와 명동을 둘러싼 많은 개의 만남부터 이별까지를 함께하다 보면 왜 우리가 헤어짐을 예견하면서도 사랑을 멈출 수 없는지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그건 헤어질 때의 슬픔보다 같이 가꾸는 행복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걸,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촉촉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상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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