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52Hz로 말하고 있습니다. - 52Hz

글 입력 2024.01.0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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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집단 The 광대] 52Hz_포스터.jpg

 

 

어느 날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는데, 아무도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52Hz로 말하는 고래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1989년 미국, 소련 냉전 시기에 미국은 소련 잠수함을 포착하기 위해 설치한 수중음향탐지 체계에서 뜻밖의 낯선 음파를 감지한다. 참 이상하다. 잠수함도 아니고, 보통의 고래도 아닌 것이 계속 소리를 낸다. 보통 고래들은 12~25Hz로 소통하지만, 이 친구는 52Hz의 주파수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이번 극은 우리 사회 속 '소통'과 '고독'에 대한 이야기를 52Hz 고래가 된 주인공 선 씨의 시점으로 풀어낸다.

 

선 씨는 어린 아들과 함께 보낸 순간들이 참 행복했었나 보다. 등에다가 손가락으로 물고기를 그려 맞춰보는 게임을 하면서 둘은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배경은 평범한 일상에서 상상의 공간인 바다를 넘나든다. 주인공이 그린 쥐치가 무대 위를 유영하고, 펭귄 떼는 과장 섞인 몸짓으로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내며 걸어간다. 소심하게 헤엄치던 복어는 관객들의 조심스러운 손길에도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볼을 부푼다. 무대의 네 면은 그렇게 바다가 되어 연희의 물결로 가득 채워졌다.

 

이렇게 평화롭고,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익살스러운 바다생물들은 입에 종이컵을 물고 넥타이를 맨 회사원들로 변한다. 하루를 버텨내는 카페인을 수혈받으며, 그들은 분주하게 무대를 누빈다. 한 직장이라는 같은 배를 탄 동료들이건만, 선 씨를 둘러싼 회사원들은 걸핏하면 그에게 소리를 지르고, 처리해야 할 서류를 한 움큼 던지듯 안겨준다. 바닥에 떨어진 서류들을 선 씨가 주어 놓으면 동료들은 다시 그걸 흩뿌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며 선 씨는 절규한다.

 

직장에서의 지독한 괴롭힘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아들과도 갈등을 빚는다. 함께 바다 그림을 그리던 아들마저 낯선 사람이 된 것처럼 등을 돌리고 떠나간다. 나를 알아주던 단 한 사람마저 나에게 등을 돌렸다는 우울함에 선 씨가 이 세상과 작별하려던 순간. 용왕이 찾아와서 말한다.

 

 

"너는 52헤르츠 고래야. 이제부터 너는 바다로 갈 거야. 그 바닷속에는 평행세계처럼 널 괴롭혔던 모든 사람이 바다 생물로 변해서 살고 있단다. 고래는 떼로 다니지만,  52헤르츠 고래는 혼자란다. 아무도 네 말을 알아듣지 못해.“

 


고래가 된 선 씨는 조심스럽게 바닷속을 헤엄친다. 하지만, 다가오는 생물들을 모조리 공격해 쓰러뜨린다. 그들은 정말 선 씨를 괴롭히고 싶었을까? 혹은 그가 마음의 문을 닫아서 그에게 진심으로 다가오던 생물들마저 막아버린 것일까? 어릴 적 아들이 그렸던 쥐치마저 그는 쓰러뜨린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우리가 옛날에 자주 가지고 놀던 종이컵 전화기 같이 종이컵에 실을 메단 장치가 생긴다. 쥐치로부터 연결된 줄은 사방으로 퍼져나가 관객들에게까지 다가온다. 우리는 고래가 들을 수 있도록 실의 진동에 소리를 실어 바다로 보냈고, 쓰러졌던 쥐치는 눈을 뜬다. 그 후 일상으로 돌아가 선씨와 아들은 미소를 지으며 마주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고, 그들의 상상 속 바다는 다시금 웃음으로 가득 찬다.

 

나는 선 씨가 언제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을지 생각해 보았다. 상사에게 지적받고 많은 양의 업무를 떠안았을 때까지는 참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자신이 더 잘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날마다 버텨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주워 담는 서류들을 보란 듯이 눈앞에서 다시 던져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누군가의 힘듦을 오락거리 삼아 즐거워하는 사람들. 어떠한 사람들은 털끝만치의 고통에도 아파하면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지켜보는 것은 좋아한다.

 

그 사람들 틈에서도 선 씨는 아들을 생각하며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나를 알아주던 아들마저 등을 돌리니, 그는 몰려오는 좌절감에 삶의 희망을 버렸다. 이 모든 일들은 그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들과 선 씨가 어떤 이유로 데면데면해졌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건강한 소통의 부재가 둘의 사이에 금을 가게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건강한 소통이란 단순히 대화하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소통은 꼭 필요하다. 그렇다면 52Hz의 고래는 어떻게 다른 고래들과 소통을 할까?

 

고래 의사소통 전문가인 코넬대의 클록 교수는 BBC에 이렇게 말했다.

 

 

“대왕고래, 참고래, 혹등고래는 사실 52Hz 고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52Hz 고래의 소리는 단지 특이한 거죠.”

 

 

텍사스 대학교의 사로비치 부교수도 덧붙였다.

 

 
"진짜 궁금한 건 52Hz 고래의 소리를 다른 고래들은 어떻게 인식하느냐입니다. 그 소리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 소리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완전히 무시하는 걸까요? 혹은 자신들의 언어에서 조금 벗어난 것쯤으로 생각하는 걸까요?”
 

 

52Hz는 인간의 관점에선 낮은 음역이지만, 고래들 사이에선 평범한 고래가 미키마우스 소리를 내는 것과 다름없다고 한다. 각자 저마다의 음역으로 말하는 것인데, 남들과 조금 다른 음역이면 어떤가. 알아듣기 힘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소리를 그냥 무시하지 말고 잘 들리지 않는다고 표현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꼭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니 이 공연도 대사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내가 극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일단 알아듣기 힘든 것을 알았으니, 그들은 그들만의 해결 방법을 찾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소통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나는 오늘 밤 꿈에서 싱긋 웃으며 52Hz 고래를 안아주었다. 살짝 올라간 그의 입꼬리를 보며, 나는 우리의 마음이 통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원정민 에디터.jpg

 

 

[원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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