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중된 글에게 바칩니다 [도서/문학]

청춘유감 리뷰
글 입력 2023.12.30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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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망치는 데 선수였다. 실패하는 미래를 너무 많이 상상한 나머지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망한 기분이 들어 때려치우기 일쑤였다. 작게 성취하고 금방 버렸다. 전부를 걸지 않았고 조금씩 투자했다. 답이 안 보이는 곳에서 열을 내지 않았고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금방 선회했다. 완강한 거부에는 매달리지 않았고 쉽게 포기했다. 영화도, 소설도 그렇게 내던졌다.”

 

“취업 준비를 하고 취업을 하고 일을 하고. 소설을 쓸 수 없는 핑계들이 생겨났던 건 소설을 계속 쓰지 않으려는 이유를 내가 만들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빠른 포기에도 장점은 있었다. 잃을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비참한 미래를 아주 많이 시뮬레이션 했기 때문에 진짜 망할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었다. 물론 그래서 망하지 않을 가능성도 함께 차단했다는 사실은 모른 척했다. 자기기만은 자기혐오로 침몰하지 않기 위해 하는 안간힘이었다.(『청춘유감』, 162쪽 발췌)”


여느 날처럼 핸드폰을 하던 중에 본 글귀였다.

 

도망치는 데 선수라는 고백이, 그리고 자기기만이 자기혐오로 침몰하지 않기 위한 버둥거림이었다는 작가의 고백이 언젠가 내가 떠올렸던 생각과 닮아있었다. 현재도 어느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도망 다니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차였기에 책을 구매해 읽기로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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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유감』이라는 책을 집필한 작가는 한소범이라는 2016년부터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기자이자 작가였다. 그는 1991년 광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국문학과 영상학을 전공하였으며 발표된 적 없는 소설과 상영되지 않은 영화를 쓰고 만들었다고 소개된다. 이 책의 저자는 나와 굉장히 닮아있다. 그의 인생이 닮았다는 게 아니라 그의 글이 닮았다.


저자는 영상학을 전공하였고, 신춘문예 등단을 통해 작가로 데뷔하기를 바라며 활동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현재는 기자로 일하고 있다. 소설 작가는 자신이 창조하는 세계를 얼마나 독자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가가 중요하지만, 기자는 사건을 얼마나 간략하게 전하는지가 중요하다. 허구의 세상을 만드는 사람을 동경하였던 사람이 현실의 일을 전해야 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지 알고 있다.


나 역시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로 먹고사는 사람을 동경했다. 학교에서 작게 글짓기 대회를 열면 곧잘 수상도 했기에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중학교 때 들어가고 싶던 동아리 면접에서 떨어지고 불려 간 교무실에서 면접관이셨던 선생님께서 “면접은 별로였는데, 자기소개서가 정말 좋아서 붙여줄까 해.”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막연히 갖고 있던 생각을 구체화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는 막연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곧 깨졌다. 현실을 직시한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는 현실이 아닌, 그저 나에게 글을 계속 쓸 수 있을 만큼의 글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거기에 더해 나에게는 글 사랑도 없었다. 내가 잘하고 말고를 떠나 조건 없는 애정을 보낼 만큼의 사랑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못 쓰는 나를 마주할 때마다 도망쳤고, 모든 글쟁이가 엄청난 재능을 가진 것은 아니니까, 그런 재능은 하늘이 주는 거니까 없는 게 당연하다며 자기 위로를 했다.


그러면 깔끔하게 미련을 접고 물러났어야 하는데, 여전히 미련은 가득히 남아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글로 먹고사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사실은 내가 글을 포기한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내가 글을 못 쓰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드라마, 라디오, 소설 작가 등으로 일하는 작가와 달리 많은 사람의 감정을 건드는 글을 쓰지 못한다. 책을 보면, 작가는 꾸준히 신춘문예에 도전이라도 했지만, 나는 그조차도 해본 적이 없다.


이유는 소설 작가가 응당해야 하는 '세계를 창조하는 일'을 못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 다른 성격의 사람의 인생을 글로든 그림으로든 무엇으로든 표현할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유명한 작가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가 가장 특별한 이야기라는 조언을 받아들일 나에 대한 믿음도 없다. 그래서 내 글은 언제나 어중간했다. 충분히 문학적이지 못하고 그렇다고 충분히 건조하지 못한, 어딘가 어중된 글.


“근데 쟤는 팩트를 소설처럼 쓰라니까, 소설을 팩트처럼 쓰던데?(『청춘유감』, 108쪽 발췌)”

 

그래서 나도 작가가 받은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소설을 포기했다. 도저히 내가 겪지 않은 일을 소설로 쓸 자신이 없어서.


이 책은 작가에게는 조금 잔인한 말일지 모르겠으나, 엄청나게 감동적이지는 않은 책이었다. 그러나 그래서 나에게는 더 공감이 가고 재밌게 읽힌 책이었다. 나 역시도 충분히 감성적이지 못한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나와 같은 이런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이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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