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열흘간의 동거

글 입력 2023.12.3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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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여행 가있는 동안 강아지를 잠시 맡아주기로 했다. 코코(넛), 만 3살, 흰 말티숑, 식탐이 많음.


일하기 시작하며 이사한 내 자그마한 둥지는 7평 남짓한 원룸인데, 나름 혼자 살기엔 좁지 않다고 생각했건만 역시 맹견과 함께하기엔 확실히 좁았다. 내가 좁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하얀 친구가 뛰어다닐 공간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도 배변 패드는 쉬는 공간과 멀리, 밥그릇과 물그릇은 같이 두고, 전용 방석은 일어나면 잘 보이도록 침대 발치 옆에. 물건들은 내 물건들과 같이 정리했다. 코코가 쓰는 빗도 내 화장대에 두었고, 코코가 먹는 사료와 육포도 내 밥솥 옆에 두었다. 방이 좁은 대신, 산책을 많이 데리고 나가겠다고 결심했다. 그게 벌써 일주일도 더 묵은 각오가 되어버렸다. 이럴 때마다 시간이 빠르게만 느껴진다.


처음에 데려올 때는 낑낑 앓는 소리를 내며 벌벌 떨었는데, 지금은 차에 같이 타면 허벅지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기절한다. 분명 얘 차 타는 거 싫어한댔는데.. 의아하지만 이제는 지레 겁먹지 않는다는 것이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는 내 냄새가 편한가 보다.


코코와의 동거 첫날에는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짝꿍이 산책을 시켜줬다. 그래서 나는 산책이 고된 노동과 같은 것임을 몰랐다. 여의도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샛강도 조금 걸었다는 짝꿍과 코코가 밤에 죽은 듯이 자는 것을 보고 둘의 체력이 다소 걱정스러웠는데, 샛강부터 여의나루까지 걷고 집에 돌아오니 노곤하고 힘이 빠지던 것이 되려 나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마지막 산책이니 제대로 한번 해보자며 뛰기까지 한 게 문제였던 듯하다. 허벅지와 발목이 아팠고, 코코는 저번보다 더 깊은 잠을 잤다.


잠은 전용 쿠션에서만 잘 줄 알았는데 일주일 내내 침대에서 같이 잤다. 짝꿍은 심지어 베개까지 코코에게 빼앗겨서 작은 쿠션을 베고 잤더랬다. 코코가 발치에 자리를 잡으면 옴짝달싹 못 한 채 따뜻함과 불편함 그 경계에서 잠에 드는데, 어쨌거나 이것도 발을 따뜻하게 하고 자는 것과 같은 효과인지 다음날 기상이 유달리 개운하다.


아침잠이 적은 코코는 6시만 되어도 뒤척거리기 시작하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조심스레 배를 꾹꾹 밟으며 올라와 눈앞에 얼굴을 들이댄다. 뜨뜻한 기척이 느껴져 눈을 뜨면 내 얼굴에 코를 댄 채 갸우뚱거리며 ‘왜 안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코코가 보인다. 반복되는 알람보다 효과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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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엄마와 아빠 중 누가 좋냐는 질문처럼 고양이와 강아지를 두고 선택하라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고양이를 선택하는 편인데, 듬직한 이 3살짜리 코코와 살아보니 이젠 조금은 고르기 힘들 것도 같다. 올 사람이 없는데 삐빅거리는 도어락 소리에 재빠르게 달려가 짖는 모습을 보니 상당히 듬직했던 탓이다. 내가 너를 맡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너도 나를 지켜주고 있구나. 매번 같이 걸을 때도 앞서가며 계속 뒤돌아보며 내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는 모양도 사랑스럽고 든든했던 걸 생각하면 이 털뭉치가 나를 지켜주고 있는 셈이긴 하다. 그런데 어차피 너랑 나는 줄로 연결되어 있는데. 바보.


신경 써야 하는 구석은 정말이지 너무 많다. 눈물자국이랑 눈 건강도 신경 써줘야 하고, 사료도 시간 맞춰서 주어야 하며, 적당한 운동도 필요하기 때문에 산책도 필요하고, 눈 쌓인 길을 걷고 오면 발바닥이 아주 꼬질꼬질해지기 때문에 씻겨야 하며, 그 와중에 귀에는 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 씻은 뒤 제대로 말리지 않으면 피부질환이 생길 수도 있어서 잘 말려주어야 하며, 물을 너무 싫어하는 애라 샤워가 곧 고생이기에 씻고 나면 육포나 개껌도 주어야 한다. 집을 비우는 동안에는 혹시 모르니 밟고 올라갈 수 있는 것은 다 치워두고, 쓰레기통도 건들지 못하게 손을 써두어야 한다.

 

낯선 환경 때문에 작은 소리에도 더 예민할 수 있기 때문에 밤에 짖으려거든 안아서 달래주는 게 효과가 좋고, 열이 많기 때문에 작은 창문 하나 정도는 열어두고 환기를 계속 시켜주어 공기가 너무 더워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부분은 키우는 화분들 때문에 통풍을 해야 하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키우는 4개의 화분은 지금 쉽지 않은 겨울을 나고 있는데, 북동향 집에는 햇빛이 적게 든다는 점이 가장 문제이다. 코코랑 산책한 것처럼 화분을 들고 공원에라도 나가야 할까 싶다. 그래도 햇빛과 습도, 통풍만 잘 갖춰주면 식물들의 이파리는 파릇파릇해서 극악의 난이도라고 하기엔 무리다. 정말 어려운 건 이 작고 하얀 코코지. 눈밭 뛰어노는 건 좋아하면서 샤워를 그렇게 싫어하면 어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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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신경 써야 하는 게 한두 개가 아니지만서도 코코가 떠나고 나면 너무나도 허전할 것 같아 벌써 두렵다. 시들고 말라비틀어진 것도 쉬이 버리지 못하는 성정이라 무언가를 흘려보내는 데에 재능이 없기도 하고, 무어든 떠난 자리에는 자꾸만 눈길이 가 길게 앓는다. 애써 보지 않으려 해도 그런다. 얕게 오래 앓는 것이면 차라리 날 성싶지만, 짧지 않은 시간을 깊게 태우는 편이다. 이렇게 감정 소모가 큰 T가 또 있을까.


어릴 적부터 경제력이 생기면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사는 것이 꿈이었다. 일을 시작해도 마음이 서질 않아 미루고 있을 뿐. 들어차는 거야 그저 좋고 따뜻하고 행복하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근심과 겁이 많은 나는 너무 먼 훗날까지 자꾸 먼저 그려보게 된다. 슬플 날들을 굳이 겪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마음.


코코의 하네스와 내 어깨에 크로스로 걸쳐 맨 끈 하나 믿고 모르는 길도 무작정 걸었던 시간이 있다. 오른쪽엔 높은 건물들이 마천루를 자랑하고 있고 왼쪽엔 한강을 따라 가로등이 늘어서 있음에도 겁이 많은 나는 아는 길로만 산책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코코와 함께 걷다 보니 겁이 없어져서 발이 가는 대로 뛰고 걸었다. 확실히, 네가 나를 지켜주고 있구나. 너랑 같이 있으니까 내가 안 하던 짓도 하는구나. 예상치 못한 날 코코 덕분에 이런 해방감을 느끼다니. 일상의 저녁이 비일상이 된 순간이었다. 코코는 뛰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귀엽고 든든했다. 달이 붉고 큰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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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치워두었던 쓰레기통을 원래 자리에 두고, 배변 패드 자리는 빈 자리가 될 테고, 소파에 깔아두었던 담요와 침구류를 몽땅 세탁기에 집어넣고, 바닥 물걸레질도 한번 하고, 쿠션을 두었던 자리에는 다시 내 의자를 두고, 그런 일들을 하겠지. 코코가 함께 있었던 흔적들을 지우는 일. 본래의 제집으로 돌아간 것뿐인데 괜히 아쉬워 저 일련의 행위를 해내는 데에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릴 것이 자명하다.


코코가 집안 여기저기 숨겨둔 개껌을 발견하는 날이면 더 보고 싶어지겠지만, 그래도 넓은 집으로 돌아가서 공 물고 다니며 뛰놀고 맛있는 간식 많이 먹을 걸 생각하면 금세 덜 아쉬워진다. 네가 잘 먹고 잘 자는 게 좋지, 뭐. 언니는 여행을 자주 가니까 자주 맡겨달라고 해야겠다. 코코가 날 지켜주는 만큼 우리가 함께하는 내 작은 방이 더 보금자리 같다고. 혼자 있는 것보다 마음이 훨씬 편하고 잠자리가 따뜻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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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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