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같은 삶은 우리 코앞에 있음을 - 사울 레이터 100주년 기념 에디션

글 입력 2023.10.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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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성이 떨어질만큼 너무나 멋진 상황을 일컬어 흔히 영화같다고 한다. 이 표현에는 '영화같은 순간'은 쉽게 오지 않으며 손을 뻗어도 닿기 힘들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어떠한 사건을 영화의 한 장면과 같다고 인식하게 되는 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레퍼런스로 떠올리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것과,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이다. 가령 혹자가 생각하는 '영화같은' 것이 2001년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앤 헤서웨이 주연)의 스토리라면, 그에게 영화같은 일은 일생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일 것이다.

 

반대로 실제로 누군가가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미아처럼 삶이 송두리째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더라도 행복하고 황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삶이 영화같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울레이터(평).jpg

 

 

난데없이 이런 진부한 표현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은 것은 사진 작가 사울 레이터의 100주년 기념 도록을 살펴보며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이건 영화의 한 장면같다!'였기 때문이다.

 

가령 1957년작 '택시'는 여러 시네마틱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택시 뒷좌석에 앉아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는 저 남자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누구를 급하게 만나러 가야 하는건가?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창 밖을 보고 있을까? 막힌 차들의 행렬, 아니면 아직 시야에는 보이지 않는 목적지? 그의 손에 가려진 택시 운전사의 얼굴은 무엇을 말하려 하고 있는가?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사울 레이터) 또한 차 안에 앉아있는 듯 보인다. 그는 아마도 운전을 하며 옆 차선에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구경하다 아주 짧은 찰나에 이 택시를 발견하고 빠르게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이렇게 사소한 일도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사울은 그렇게 함으로써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에서 영화적인 순간을 건져낸 것이다.

 

1950년대 작품인 '보라색 우산'도 많은 것들을 연상시킨다. 우산 속엔 누가 있을까?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설렘 가득한 길일까, 혹은 누군가와 이별하고 슬픔 속에 잠긴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데이트 상대가 픽업하러 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걸까? 아니, 두 명이 함께 걷는 중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오는 날 우산 끝이 시야 위쪽을 가려 모든 것들이 조금씩 가려진, 답답하면서도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듯한 그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우산 색에 따라 달라지는 기분을 사울도 잘 알고 있다는 듯 짙은 핑크색 우산으로 마음을 들뜨게 한다.


사울 레이터는 많은 유대인들에게 존경받는 랍비였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예술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부자지간의 사이는 영원히 틀어지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일생에 걸쳐 끊임 없이 다작한 그를 보면, 예술가의 길을 걷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 분명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60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사진을 찍고 회화 등의 작품 활동을 했을 만큼 활발한 작가였다.


드라마틱한 피사체나 특수 효과 없이도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모두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현실주의자가 아니라 낭만주의자예요. 가장 사소한 순간들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죠."라는 그의 말처럼, 그의 사진은 무수히 많은 자극에 감각이 무뎌진 오늘날의 우리에게 일상에 대한 찬사와 행복의 재발견을 선물해준다.

 

 

[강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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