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매일 새롭게 바라보는 것 - 사울 레이터 100주년 기념 에디션

글 입력 2023.10.20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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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식 회고록이 출판되었다.


뉴욕 '사울 레이터 재단'의 설립자 마깃 어브와 부이사장 마이클 파릴로가 엮은 이 회고록에는 흑백사진, 컬러 사진, 패션 화보, 회화 작품, 누드 사진까지 그의 모든 시선이 담겨 있다.


1923년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사울 레이터는 10대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은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보고 경험하는 순간들을 필름에 쌓았고, 사후에 그의 사진들이 주목받게 되었다.


그는 <에스콰이어>, <하퍼스 바자> 등 유명 패션 잡지사에서도 유명한 사진을 남겼지만, 어쩐지 그가 1950년~1960년의 소박한 뉴욕의 길거리를 담은 사진에 더 눈길이 간다.

 

“세상 모든 것은 사진으로 찍힐만해요. 사진의 좋은 점은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겁니다. 온갖 것을 음미할 수 있게 해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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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월 말, 피크닉에서 <사울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를 보러 가서 홀린 듯이 빨간 우산을 샀다.

 

어두운 것과 비오는 걸 싫어해서 낮이 긴 여름을 좋아한다. 근데 여름에는 또 긴 장마 기간이 있다는 게 큰 단점이다. 이랬던 내게 사울레이터가 담은 흐린 날의 빨간 우산은 비 오고 흐린 날도 사랑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시를 보고나서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빨간색 우산을 샀고, ‘비가 언제 오나’ 하고 일기 예보까지 봤던 기억이 난다.

 

접이식 우산이 아닌 긴 장우산이라 가지고 다니기에 번거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비가 오는 날에 "비오는 날 싫어."라는 말 대신에 "빨간색 우산은 좋아"라고,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사울 레이터는 어떤 표정으로 카메라를 들어 창문이나 유리창에 반사되어 겹쳐져 보이는 사물들에 초점을 맞추었을까.

 

여행지가 아닌 일상의 공간에서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담아내는 사울 레이터의 사진과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정채봉 시인의 시, <첫 마음>이 떠오른다.


아마 사울 레이터는 첫 마음은 물론이고, 매일 같은 것을 바라보면서도 공들여 바라보니 새로이, 사랑할 것들을 발견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첫 마음>

 

                          정채봉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 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 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사울 레이터(Saul Leiter)는 1923년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10대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고 사진을 찍었으며 회화 전시로 일찍이 성공을 거두었다. 뉴욕에 정착한 후로는 생계 수단으로 사진 작업에 집중했으며 그러면서도 그림을 놓지 않았다.

 

1957년부터 약 20년간 [에스콰이어], [하퍼스 바자] 등과 작업하며 패션 쪽 일을 했다. 초반에는 흑백 사진을 작업하다 나중에는 컬러 작업도 병행했다. 상업 쪽 일에 매진하면서도 늘 거리 사진을 촬영했다. 대부분 장소는 그가 거주하던 다운타운 맨해튼이었다.

 

2006년 첫 사진집 [얼리 컬러](슈타이들)가 발간되면서 1940년대 말부터 쌓아온 컬러 사진 대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사울은 자신의 사진이 점점 인기를 얻던 2013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세계 곳곳에서 그의 사진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렸고 책이 발표되었다.

 

 

[오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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