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가 제노사이드를 기억하는가 -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

기억하는 자와 말살하려는 자
글 입력 2023.07.1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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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수학여행을 간다면서요, 아우슈비츠, 다카우로? 내가 항상 궁금한 건, 어디서 샌드위치를 먹죠? 콜라는 어디서 마시냐구요? 거기서 사진도 찍나? 웃으면서, 손 잡고? 그곳에서 적절한 행동은 아무것도 없어요. 시험지 문제도 어떻게 해도 적절할 수가 없어요. 이 애들이 무슨 답을 쓸 수 있습니까? 아무리 잘 쓴다고 해도, 그들이 받았던 고통의 의미를 손상시키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잘 쓴다고 해도, 못 쓰는 것과 다름 없이, 손상시키는 겁니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에 나오는 대사다. 서로 다른 성향의 두 교사가 공동 수업을 하면서 ‘홀로코스트를 가르칠 수 있는가, 아니 가르쳐야만 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시킨다. 몇 학생들은 입시 면접관에게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해 홀로코스트라는 대학살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없는지 연구한다. 뻔한 대답으로는 면접관 눈에 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 교사 중 한 명인 헥터가 입시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을 가볍게 소모하는 것이 옳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비단 대입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는 학생들 뿐 아니라 관광하듯 제노사이드의 현장에 방문하는 사람들도 꾸짖는다.

 

여행 에세이이면서 제노사이드 역사를 정리한 도서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을 보면 해당 교사의 우려를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800미터에 이르는 땅굴을 걸어 반대편으로 나갈 수 있기를? 쫄깃하고 짜릿한 전쟁 엔터테인먼트를? 가이드가 설명하는 내내 “나는 네 상처를 이해해”라며 쉴 새 없이 입을 놀려 대던 중년의 호주 남자와 영상을 시청하는 내내 온갖 아는 체를 하면서 “어차피 점령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도대체 왜 멀쩡한 건물들을 죄다 파괴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라고 투덜대는 젋은 미국 여자 때문에 더 아찔해졌다. 나는, 이 사람들은,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하러 여기에 온 것일까? 나로 인해 생전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는 나라의 역사 강의를, 그것도 어설픈 내 통역을 통해 띄엄띄엄 듣게 된 엄마가 “나는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겠고 지루하다”고 한 말이 나를 포함해 그곳에 ‘비장하게’ 모인 사람들의 어떤 반응보다 가장 진실에 가까웠을 것이다.

 


제주 평화기념관에서는 행방불명 된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 앞에서 ‘사진 명당’이라며 단체 사진 찍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니 헥터의 우려와 비난이 노파심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고통의 의미를 손상’시키는 행위에 대한 조심스러운 반박으로 시작한다. 


 

제노사이드 현장을 둘러보는 체험은 우리에게 타인의 불행과 재앙이 그리 멀리 있지 않으며, 그들과 우리 사이에 놓인 것은 그저 우연과 운뿐이라는 차가운 진실을 일깨운다. 나는 다크투어가 우리 사회에 부족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 믿는다. 내가 국내외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억압과 비인권적 행위에 분노하고 가슴 아파한다면, 그것은 많은 부분 여행이 가르쳐 준 것들 덕분이다. 공감도 학습이 필요한 일이며,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훌륭한 선생이다.

 

 

공감하는 문단이다. 


책은 ‘누가 아르메니아를 기억하는가’라는 장으로 시작한다. 독일 폴란드 침공 일주일 전인 1939년 8월 22일 오버잘츠베르크의 별장에서 히틀러가 장교들을 모아 놓고 한 연설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진 이 문장은 적을 물리적으로 파괴할 수만 있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지금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듯이 홀로코스트를 기억할 사람도 없으리란 확신이 기막히지만 실제로 나는 책을 읽기 전까지 아르메니아라는 지역을 들어본 적 없었다. 작가가 아르메니아에 찾아가지 않았고 책을 내지 않았다면 여전히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에 대해 단 하나의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책에서는 바로 이것을 다크 투어, 진지한 마음으로 죽음과 비극에 관련된 역사적 장소를 찾아가 사건을 기리고 교훈을 되새기는 여행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비극을 기억하는 일.


책은 비극을 왜곡할까 봐 조심한 흔적이 보인다. 각주에 QR코드를 새겨 간략하게 설명한 상황이나 차용한 문서의 전문을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말은 전해질 수록, 요약될수록 오해의 소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덕분에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고 알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면 QR코드를 시작점으로 더 많은 자료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점도 단순한 여행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대학살과 피해자를 기억하려는 시도처럼 보였다.


‘기억을 말살하려는 자들과 기억하려는 이들의 사투’라는 소제목 다크 투어의 의의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준다. 헥터의 말대로 제노사이드 현장을 방문하는 행위 자체가 의미를 훼손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제노사이드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대학살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기억을 말살하려는 자들은 언제나 죄를 숨기고 덮기 위해 급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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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광주에 간 적 있다. 친구에게 놀러간 거였다. 광주는 여느 도시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맛있는 게 많았고 볼 게 많았다. 단 하나 다른 건 건물에 박힌 총탄이었다. 건물 외곽에 눈에 띄게 동그라미로 표시해둔 총탄 자국은 보다 현실로 다가왔다. 먼 과거가 아니라 가까운 과거로, 교과서에 적힌 사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있었던 사건으로 더 깊게 각인되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을 돌아다니며 친구와 나눈 대화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4, 5월이 되면 학교에서 대대적으로 5•18운동을 기리는 행사를 했고 기록관에 현장 학습을 오는 일도 많아서 다른 지역도 다 그런 줄 알았다고. 그 말이 왜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한편 올해 5월 서울 대로변에는 5•18운동을 조롱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무기고 털어서 총도 좀 훔쳐주고 장갑차도 훔쳐 타고 교도소 습격도 해주고 / 도청에 다이너마이트도 설치하고 방송국 방화쯤은 해줘야 / 5·18민주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지.”라고 적힌 현수막 명의는 자유당이었다. 현수막을 보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야말로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손상시키는 현수막이었다. 오직 그것만을 위해 만들어진.


기억을 말살하려는 자란 말 그대로 흔적을 지워버리는 것만 뜻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을 왜곡시키고 가해자의 비윤리적인 행위를 경감시키는 것 역시 말살이다. 그러니 현대에도, 그리고 한국에서도 기억을 말살하려는 행동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만일 내가 5•18민주화운동에 관심이 없고 수업에서도 듣지 못했고 광주에서 총탄 박힌 건물과 기록관을 살피지 않았다면 그렇구나 하고 넘겼을지도 모른다.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세상에는 그렇게 잊혀져가는 죽음이 너무나 많다.


 

<세계인권선언>은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대전을 겪은 뒤에 다시는 전 세계에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는 국제적 합의하에 작성되어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됐다. 제 1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났으므로 서로를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하지만 책에 나열된 년도를 따라 가다보면 이 문장이 참 무색하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4•3 사건이 일어났고 1973년 9월 11일 칠레 산티아고에서는 쿠데타가 벌어졌으며 1975년 4월 캄보디아에선 크메르루주가 ‘완전한 평등’이란 명목하에 변호사, 의사 등이 무차별하게 살해당하는 둥의 사건이 벌어졌다. 1992년 보스니아 내전에선 민족 보전이란 말도 안 되는 명목으로 이슬람교도인 보스니아계가 대학살을 당했다.

 

그리고 여전히 세계의 곳곳에서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대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당장 중국이 위구르 족을 수용소에 가두고 탄압한 사건만 보아도 그렇다. 우리는 과거의 대학살에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 무엇을 반성하고 어떤 것에 경각심을 느낀 것일까? 


대학살에 한 기관을 탓할 생각은 없다. 대신 무기력해질 정도로 반복되는 대학살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한다.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피해자가 겪은 고통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


기억하는 일인 것 같다. 과거에 일어난 일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제노사이드 피해자는 내가 될 수도 있었고 내가 될지도 모른다. 이미 끝난 과거의 일이 아니며 다신 오지 않을 미래가 아니다. 


기억을 후대로 넘겨주는 일도 필요하다. 이 책이 내게 아르메니아인을 아우슈비츠의 죽음을 캄보디아 킬링필드가 무엇인지를 보스니아 내전이 왜 실질적으로 제노사이드라고 불리는지를 알려주듯이 말이다. 칠레의 사막에서 암매장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실종자를 찾아 헤매는 여성들과 아르헨티나에서 아직도 활동 중인 ‘오월 광장의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상기시킨다. 제주도에서 일어났지만 최근까지 한국인 대부분이 제대로 알지 못했던 4•3사건을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작가가 그들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독자에게 넘겨줬기에 가능하다. 물론 이 책을 읽은 것으로 방대하고 고통스러운 여러 나라의 제노사이드 현장을 다 안다고 생각해선 안 되겠지만 말이다.

 

이 책이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게으르게도 책을 읽은 순간만 충격을 받고 영원히 아르메니아, 폴란드, 캄보디아, 보스니아, 칠레, 아르헨티나, 제주도를 잊고 살지 않기를 스스로 다짐해본다. 


혹시라도 바쁜 삶에 잊어버리게 되면 어느 날 여행지 추천글에서, 축구 대전표에서, 어딘가에서 그 지역을 접하게 되었을 때 불쑥 떠오르기를 바란다. 얄팍한 기억을 더듬어 인터넷의 홍수를 헤매다가 다시 이 책을 펼치게 되기를. 또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대학살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작가의 다크투어는 일회적인 투어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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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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