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쁜 사랑이 남긴 것 - 검정치마의 THIRSTY [음악]

충만함에 대한 갈망을 인정하기
글 입력 2023.07.0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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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발매된 검정치마의 정규 3집 Part 2. 사랑의 가장 아름답고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하던 Part 1과 달리, ‘나쁜 사랑’의 뻔뻔스러움과 그로테스크함을 노래한다.

 

검청치마의 조휴일이 써내려간 나쁜 사랑의 방황. 채움과 보호의 사랑을 꿈꾸던 소년이 난생 처음 겪은 나쁘고 지독한 감정의 덩어리. 그 여정의 끝에서, 돌아온 탕아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대단히 유기적이고 서사적인 이 앨범을 동화책 읽어나가듯 짚어 나가고자 한다.

 

 

 

섬 (Queen of Diamonds)


 

 

 

“너 사는 섬엔 아직 썰물이 없어 결국 떠내려온 것들은 모두 니 짐이야”

“너 살던 섬은 이제 가라앉았고 내가 두고 온 것들은 다 저기 저 아래에”


 

사랑. 어쩌면 누군가에겐 기적이고, 누군가에겐 미움으로 가득 차 온갖 감정이 덕지덕지 묻은 명사. 3변 트랙이자 타이틀곡인 ‘섬’에서 화자는 자신이 간절히 바라던 ‘채움’과 ‘교류’의 사랑이 완전히 침몰했음을 알린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섬이라면, 그 섬에는 썰물이 없다. 감정 교류에 밀물, 즉 인풋만이 존재하고 썰물, 즉 아웃풋이 없는 일방향 관계라는 것이다.

 

때문에 화자가 아무리 사랑을 외쳐도,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무거워진 섬은 퇴적된 감정에 묻혀 점점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사랑의 끝이 다가오는데, 화자는 끝까지 아무런 감정도 돌려주지 않는 사람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평온하고 아름다운, 어찌 보면 낭만적이기까지 한 멜로디 위엔 소년이 느꼈을 사랑의 절망이 있다. 온건하고자 했던 사랑의 종말이다.

  

 

 

광견일기


 

 

 

“사랑 빼고 다 해줄게 더 지껄여봐 내 여자는 멀리 있고 넌 그냥 그렇고

눈물이라도 흘려봐 좀 인간이 돼봐”

 


순수한 사랑을 상실한 소년은 이제 순수함의 경계 바깥으로 눈을 돌린다. 지속적이고 정신적인 기쁨이 아닌, 단발성이고 육체적인 ‘나쁜 사랑’이 시작된다. 서로에 대한 이해나 연민 없이 ‘수준 이하의’ ‘인간이 되지 못한’ 사람이라고 서로를 폄하하면서.

 

‘광견일기’라는 제목이 이를 더욱 극대화한다. 내일이 없는 듯 서로를 탐하는 사랑은 목줄 풀린 광견들이 하는 짝짓기와 다름없다고 화자는 스스로 평하고 있다.

 

 

 

하와이 검은 모래


 

 

 

“그대가 가고 싶은 섬 나는 못 가요 알다시피 내 지은 죄가 오늘도 무겁네요

우리가 알던 그 장소는 무덤이 되었겠죠”

 

 

나쁜 사랑으로 눈을 돌렸던 화자는 어느 순간 과거의 순수했던 사랑을 회고한다. 적어도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사랑했던 순수한 시절. 그리고 사랑의 흔적이 가득했던 ‘섬’.

 

그러나 그리움을 깨닫자마자 소년은 탄식한다. 그는 이미 나쁜 사랑과 파괴적인 관계를 경험했고, 그것은 소년이 다시는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와이 검은 모래’는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이 곧 하와이고, 우리가 알던 그 장소가 무덤이 되었다는 가사는 영영 추억으로 남아버린,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사랑임을 노래한다.

 

 

 

피와 갈증 (King of Hurts)


 

 

 

“내 불을 켜줘 마마 꺼진 적 없지만 날 미워하지 말아 난 어린애잖아”

“나를 기다릴 줄 알았던 사람은 너 하나였는데 이제 난 혼자 남았네”

 

 

나쁜 사랑의 끝. 후회와 자기혐오만이 남은 순간, 소년은 과거의 사랑도, 나쁜 사랑을 나누었던 상대도 아닌 어머니를 찾는다.

 

집을 떠난 소년이 순수하고 완전한 사랑의 울타리를 벗어나 나쁜 세상을 경험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찾는 돌아온 탕아의 서사. 소설 데미안이나 오디세우스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회귀적 구조가 THIRSTY의 서사를 완성시킨다.

 

 

 

돌아온 탕자


 

소년은 언제까지고 순수한 사랑의 세계에서 살 수 없다. 그것은 소년이 자라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듯, 인간 삶에서의 자연스러운 단계다. 그리고 순수함의 울타리 밖에서 세상을 경험한 소년은 다시는 그 전의 소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이를 ‘나쁜 사랑’으로 빗대어 표현한 이 앨범에서 리스너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나쁜 사랑을 하지 말자는 교훈? 혹은, 나쁜 사랑으로 죄를 지은 사람은 언젠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가치?

 

이 앨범에서의 나쁜 사랑은 마치 바닷물과 같다. 목이 마를 때, 생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마시게 되는 것. 순수한 사랑의 대체재라고 여겨졌던 것. 그러나 바닷물을 마신다고 해서, 갈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실수록 더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될 뿐이다.

 

THIRSTY의 마지막 트랙은 바닷물을 마셨던 사람의 후회다. 사람은 결국 바닷물이 아닌 생수를 마셔야만 한다는, 절실함을 부각시키는 하나의 장치다.

 

사람에겐 단순한 사랑이 아닌 존재의 외로움을 견디게 해줄 수 있는 ‘충만한 사랑’이 필요하다. 이는 마냥 순수한 사랑도, 무작정 나쁜 사랑도 아닌 보살핌의 사랑이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처럼 타인의 존재를 보듬는다.

 

따라서 나쁜 사랑의 그로테스크함과 유해성은, 사람이 얼마나 ‘충만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지 절감하게 해준다.

 

그러니 오늘도 존재하느라 지독하게 외로운 하루를 보냈다면, 당장 나쁜 사랑을 하러 울타리 밖으로 떠나기보단 검정치마의 THIRSTY를 들어 보자. 사실 필요했던 건, 외로운 하루를 버티게 해줄 충만함이었음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울타리의 경계선을 걷는 모든 존재가 조금은 덜 각박하고 덜 외로운 하루를 보내길 바라본다.

 

 

[김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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