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제르멩에게 편지를 씁니다 - 사랑하는 당신에게

글 입력 2023.05.24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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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사랑하던 아내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아내를 떠나보낸 슬픔도 잠시, 자신을 아픈 노인 취급하던 자식들의 건강 염려증은 극을 달했다. 남은 자신마저 허무하게 떠나보낼 수 없다는 걱정과 불안 때문일까. 그러나 오히려 그 마음은 제르멩에게 옥죄는 속박처럼 다가올 뿐이다. 


그는 아내가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설레는 맘으로 임했던 현대무용을 떠올린다. 공연을 기다리던 벅찬 미소와 상기된 목소리. 그는 떠난 아내의 자리를 대신해 공연에 올라서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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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렁한 흰 러닝셔츠에 불룩하게 나온 배, 백발에 까만 뿔테까지. 제르멩은 옆집에 살 것만 같은 이웃의 모습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그가 무대에 서기로 마음 먹기까지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시놉시스만 읽고도 백발 노인의 현대무용 도전기가 무척 기대되었다. 그는 아내와 어떤 약속을 했으며, 어떤 마음으로 공연까지 달려갈지, 그 과정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을지 호기심이 가득찬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평소 관심있던 ‘현대무용’이라는 소재와 할아버지 캐릭터의 결합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또 내가 좋아하는 거장 ‘피나바우쉬’를 별명으로 갖은 안무가가 영화에 등장한다고도 했다. 안무가가 영화에 직접 등장한다고? 이 또한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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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는 나이가 지긋한 백발 노인의 현대무용 도전기와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 휴머니즘 드라마다. 그런데 휴머니즘을 설명할 이야기가 부족하다. 나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느낌표를 찍지 못했다. 물론 제르멩은 중간중간 아내에게 편지를 쓰며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진행상황 등을 덧붙인다. 그러나 단편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나는 조금 더 사적이고도 자세한 감정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난생 처음 현대무용을 시작하고 춤의 매력을 알게된 제르멩의 마음과 생각, 무용 단원과의 이야기, 아내와의 애틋한 과거 스토리, 가족 간의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조금 더 깊이있게 듣고 싶었던 것은 나만의 욕심은 아니었으리라. 사소하고 작은 이야기들, 인물과 사건이 부족해 제르멩의 도전과 공연까지의 과정을 온전하게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그의 이야기가 막을 내리고 난 후에도 해결되지 않은 물음표들이 내 머리 위를 둥둥 떠다녔다. 나는 제르멩이 아내 리즈에게 편지를 쓰던 것처럼 그에게 편지를 쓴다. 가장 궁금했던 부분을 꼽으며, 상상력을 동원하며.


 

제르멩에게


제르멩, 당신과 리즈는 어떤 부부였나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두 사람 분명 다정하고 따뜻한 부부인 것 같았는데 당신이 그녀를 그리워하고 힘들어하는 시간은 너무나 짧은 것 같아서. 당신은 지울 수 없는 사랑의 그리움을 편지로 해소할 수 있었나요?

 

물론 그녀 하나만을 생각했기에 생전 관심 갖지 않던 무용을, 그것도 현대무용 공연의 주연이 되어 춤출 수 있었겠지요. 그랬기에 당신이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고 두 사람이 어떤 시간을 보낸 건지 궁금해졌어요. 분명 둘은 아름다운 사랑을 했겠죠. 침대 위에서 편안하게 나누던 대화와 다정한 미소로 짐작할 뿐이에요.


제르멩, 당신은 어떻게 끝까지 도전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나요?

 

당신이 춤을 추며 느끼고 표현한 것들을 알고 싶었어요. 분명 편지에서는 재미를 붙였다고도 말하고, 집에서 여러 움직임을 꺼내는 것도 보긴 했지만 공연장에서 단원들과 상호작용하는 그 과정을 더 자세히 알고 싶었어요.

 

처음이었지만,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던 것 같아요. 각기 다른 성격의 단원들과 몸으로 어떤 소통을 했을까. 어떤 심정일까 궁금해졌어요. 리즈와 연결되는 기분에 행복할 뿐이었나요?

 

저 또한 당신처럼 백발에도 힘들지 않게 도전할 수 있는, 고민없이 시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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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멩은 아내와의 편지에서 현대무용에 흥미를 붙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분명 그 과정 속에서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해방감, 즐거움 등을 느꼈으리라. 그럼에도 뭘 어떻게 느꼈는지. 어떤 내용을 주제로 춤을 춘 것인지. 그는 왜 계속해서 이어나간 것인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는 매우 힘들어하면서도 열성적으로 임하고, 가족들에겐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해나간다.

 

현대무용은 무용가의 솔직한 움직임을 긍정하고 꺼내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나쁜 움직임, 좋은 움직임이라는 잣대 보다는 안무가의 디렉팅하에 무용수가 해석한 것을 몸 바깥으로 꺼내는 것이다. 이는 영화를 제작할 때 감독과 배우의 관계와 비슷하다. 대본은 정해져 있지만, 대본을 해석하여 캐릭터를 탄생시키는 연기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방향성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무용도 마찬가지다. 제르멩은 어떤 내면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무엇을 주제로 움직임을 꺼냈을까.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내가 바라본 제르멩은 스스로의 욕구에 충실하고 혼자의 시간만큼은 솔직했다. 날것의 움직임은 존중 없는 속박의 시간에서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여 나올 수 있는 몸짓이었을까. 아내와의 왈츠였을까.

 

안무가는 제르멩이 춤추는 모습을 보다가 이렇게 말한다. “제르멩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

 

안무가는 제르멩의 합류 후 그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건져올린다. 제르멩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단원의 만류에도 그의 솔직한 움직임, 투박한 손짓을 바라보며 그를 중심으로 안무를 다시 짜기 시작한다. 그의 모습에서 아이같은 순수함을 발견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녀는 제르멩의 이야기에서 뭔가를 느끼긴 느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와도 공유해주었으면 어땠을까? 난 제르멩에게서 그 특별한 무언가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제르멩의 도전기는 인간미가 진하게 묻어나와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낸다. 가족들에게 공연 준비를 숨기고 싶은 마음도, 몸이 좀처럼 따라주지 않지만 열심히 임하는 과정도, 공감하기 어려웠던 무용세계를 이해하는 시간도,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집에서도 춤을 추는 과정도. 관객석에서는 그의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터져나온다. 약간은 초연하고 약간은 해탈한 듯한 성격도 공감이 된다.


유쾌하고 귀여운 영화다. 제르멩의 우스꽝스러운 행동과 대사, 고양이 등 소소하게 웃음을 터뜨릴 요소가 많다. 그러나 꼭 있어야 하는 이야기들이 부족한 영화라고 느껴졌다. 그의 도전기를 응원하면서도 설득력이 부족해 알쏭달쏭한 느낌이 들었다. 아쉬운 마음은 제르멩에게 보내는 서간문으로 대체하고 감독의 시선을 바탕으로 추측해본다. 인생의 아픔은 짧게, 소박한 행복의 시간은 크게 보여진다. 슬픔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남은 인생의 기회들은 잡는 삶의 지혜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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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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