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 : 나의 뉴욕 수업

글 입력 2023.05.1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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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문에서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바로 '괴테처럼 살겠다 결심하고 뉴욕으로 떠나 호퍼처럼 산 이야기'이다.

 

뉴욕행을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37살에 바이마르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 철학자, 정치가, 과학자이기도 한 괴테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자신의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됐다고 말한 이탈리아 여행에서 어쩌면 그의 예술적 영감이 진정으로 무르익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책의 부제인 '호퍼의 도시에서 나를 발견하다'는 2018년 출간된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의 개정판인 『나의 뉴욕 수업』을 관통한다. 개정판을 작업하면서 호퍼의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추가해 고쳐 쓰고, 이를 다시 책의 곳곳에 배치하였다. 그림을 하나씩 찾는 재미만큼이나 저자가 발견한 뉴욕의 풍경이 사뭇 궁금해진다.

 

 

나는 호퍼처럼 도시의 인물들을, 풍경들을, 순간들을 포착하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다가 나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해 기록했다. 의식적으로 호퍼를 따라 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알아차려보니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호퍼의 작품처럼 어디에나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 나만의 이야기지만 독자들과 함께하면 더 좋을 이야기가 되었다. 

 

- p.15

 

 

 

도시의 관찰자, 그림 속 주인공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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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밤은 무척이나 어두우면서 동시에 밝다.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과는 다르게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이 끝나지 않았거나, 집에 돌아와서 또 다른 일상을 준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빛과 어둠'이라는 이미지에서 대비되는 심상이 느껴진다. 밖은 온통 어두운데, 사람들이 있는 공간은 작은 불빛 하나로 주위를 환하게 비춘다.

 

 

이 그림을 이야기하며 호퍼는 말했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나는 대도시의 고독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무의식으로부터 고독한 공간을 끄집어내 화면에 재현하고, 무의식 속 외로운 인물들을 그 공간에 배치했다. 심상을 읊어내는 시인처럼, 호퍼는 마음속 이미지를 화폭에 옮겼다. 그래서 그림 속 식당은 어디에든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환영幻影같지만, 실재實在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의 무의식에는 고독한 공간의 이미지가 가라앉아 있고, 호퍼의 식당도 그중 하나이니까.

 

- p.56

 

 

《밤은 지새우는 사람들은》은 관찰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도시의 풍경, 도시인의 삶을 보여준다. 그림의 제목처럼 어딘가 쓸쓸함이 느껴지는 인물의 뒷모습이라든지, 손님들이 나갈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는 사람에게 눈길이 간다. 그러다가 이내 사람들에게 집중했던 시선은 공간 전체로 향한다. "오른쪽 벽 색깔 좀 봐. 레몬색이야."라는 친구의 속삭임에 저자는 비로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밤의 창문》은 1년간 머물렀던 저자의 방을 연상케한다. 처음엔 창밖을 바라보는 관찰자였지만, 어느새 뉴욕의 일상에 녹아든 《밤의 창문》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로 뛰어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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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교실 밖의 수업, 즉 호퍼의 도시에서 나를 발견하는 여정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던 이유는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로 뛰어들어든 이야기 때문이다. 가령 수업이 끝나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관람하기, 센트럴파크에서 혼자 자전거 타기,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오래된 서점을 발견하고, 어릴 때 좋아하던 책의 배경이 된 공간을 찾아간다. 그 외에도 평소라면 지나쳤을 공연장에 들어가고, 뉴욕에 살면서 가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던 동네를 방문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일상과 비일상이란, 정확히 반으로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균형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하루는 비일상에서 일상이 되기 위한 책 읽기와 운동 등을 시작하고, 다음날은 일상을 잠시 떠나는 여행 계획을 세운다. 어떤 것을 더 중점에 둘 것인지, 매 순간에 마주하는 유지와 변화에 대한 선택도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나를 발견하고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향을 향해서 조금씩 나아갈 뿐이다. 

 

그리하여 어느 곳에서든 '머무른다' 보다 '산다'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 좋아하는 것을 일상에 두었지만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겠다는 저자의 결심을 '나의 인생 수업'에도 적용하고 싶다.


 

(···) 세계의 확장에 대해서도 여러 번 생각했다. 차라리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괴로운 일을 겪었을 때나 대체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도, 내가 찾은 답은 한 가지였다.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그 어떤 커다란 손이 나를 이 시점에 이곳에 가져다놓은 것도 내면의 세계를 확장하라는 뜻인 걸까. 나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 분투했던 뉴욕 생활에서 결국 얻은 깨달음은 어디에 있든 나는 나이며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나답게 살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인데, 그 역시 내면의 확장에 포함되는 것일까. (···)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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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과 뉴욕 휘트니 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작가의 첫 국내 개인전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를 관람했다. 평소에 알고 있던 작품 이외에 발걸음을 멈추고 꽤 오랫동안 바라본 그림이 있었다. 바로 《뉴욕의 영화관》의 습작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이었지만, 이 글을 쓰면서 완성된 작품보다도 작은 스케치가 먼저 떠올랐다. 채색된 그림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환영과 실재 사이를 부유하는 관찰자의 시선을 따라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호퍼의 작품을 볼 때, 여러 요소에 집중하는 것처럼 한 장면을 확대하듯이 면밀하게 관찰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니 <나의 뉴욕 수업>은 이미 전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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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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