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전시]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 – 관계의 시작과 끝

살아가는 동안 당신은 걸어내야합니다.
글 입력 2023.02.1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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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자코메티

(Alberto Giacometti)

화가, 조각가

 

1901.10.10. ~ 1966. 1. 11

스위스 보코노베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관계에 융통한 사람이다. 언제나 자신의 내면에 진실하고 상대방에게 진솔한 사람이다. 그 진실하고 진솔한 관계 사이에는 서로를 꿰뚫는 시선이 있었다. 오가는 시선 속에서 자코메티는 끊임없이 본질을 찾아 헤매었고, 그런 그의 시선은 왠지 모를 서늘함이 풍기는 작품들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네모난 틀 속에 갇혀 빳빳이 굳은 표정으로 어딘가를 주시하는 그 눈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전시회의 끝 즈음에는 자코메티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그 본질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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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가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했던 그이만의 독특한 방식은 관계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태어난 스탐파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인상주의 화가인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가 예술가의 길을 걷게끔 만들었고, 그가 사랑한 이사벨이란 여인은 그로 하여금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고 표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늙은 신사와의 관계는 특히나 주목할 만한데, 자코메티 특유의 덜어내고 지워내는 기법과 인간의 본질을 찾으려는 그의 고뇌와 갈망이 바로 이 관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마주한 낯선 이의 생생한 죽음은 자코메티에게 삶의 부질없음을 안겨줌과 동시에 부질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겨줬을 것이다. 겉보기엔 같은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순간에‘물건’이 되고 만 늙은 신사를 보며, 자코메티는 자신의 조각에 ‘생명’을 불어넣고자 치열히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맺은 관계들 속에서 발견한 생명은 살아있음을 알게 해주는 눈빛이었고 그에게 있어서 시선은 관계의 시작이자 끝이 되었다. 사람을 조각하는데 있어 그 외의 것들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 자코메티에게 그 외의 것들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덜어내고 또 지워냈다. 그는 자신에게 보이는 것만을 자신이 보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였고 그래서 우리는 그의 조각에서 그의 시선을 만날 수 있다. 이제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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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내막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눈엔 그저 하나의 죽어있는 돌덩어리에 불과할 것이다. 심지어 섬뜩하고 괴랄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흡사 고대 유물과 같이 혹은 해골과 같이 말이다. 가느다랗지만 힘 있는 굴곡 사이에 맺힌 하나의 시선이 내 뒤통수를 관통하는 느낌을 알 수 있을 리 없다. 전시회장 곳곳에 적힌 말들이 그러하듯, 제대로 보기 위해선 제대로 보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자코메티의 조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의 관계들이 필요했다. 그가 조각에 쏟은 모든 표현이 관계 속에서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이번 전시회는 관람객에게 꽤나 친절했다. 인물별로 섹션을 나누어 관계를 풀어 설명해주는 구성은 관람객이 예술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자코메티의 삶을 조망하며 하나하나 이해해나가다 보면 그와 작품의 연결고리가 그러함을 스스로 설득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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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마지막 방에서는 예술가와 시대상, 예술가와 관람객, 전시와 관람객 등 그 모든 관계가 극대화 된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암담한 방 한 가운데 우뚝 서있는 ‘걸어가는 사람’은 나의 관계마저 돌아보게 만든다. 얼마나 수많은 고뇌와 열정이 깃들어 있기에 그러한 아우라를 뿜어낼 수 있던 것일까. 무수한 시선들 사이에서 자코메티가 마주한 것은 결국 죽음 앞에 한없이 작을 수밖에 없는 자신이었을까. 모두가 침묵하고 가만히 앉아 그 작품을 들여다본다. 공간과 작품과 자신이 하나가 된 것 마냥 흡입력있는 분위기에 스스로를 기꺼이 내어논다. 전쟁과 죽음, 사랑, 생명 그 어떠한 것들 사이에서도 묵묵히 걸어가야 함을 시사하고 있는 그 작품은 20세기뿐만 아니라 21세기에서도 그 뜻을 같이한다. 금방이라도 기울어져 쓰러질 듯한 모습에서 어떻게든 앞으로 걸어 나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표면을 타고 흐른다. 예술가와 관람객의 관계가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살아가는 동안 당신은 걸어내야 합니다."

 

아무리 표현방법이 심오하고 난감하더라도 결국은 삶의 이야기이다. 예술과 삶은 아주 밀접한 관계이고, 인간의 삶을 고찰한 예술은 더더욱 그렇다. 자코메티는 살아있음을 사랑했고, 그 삶을 눈빛에 담아 전하려했다. 그리고 그 눈빛에 담긴 삶은 우리 모두의 삶과 비슷했다.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고독하기도 한, 마냥 즐겁기만 할 수는 없어 고뇌하는 삶. 그런 삶의 모습을 우리 모두가 알기에 그만의 독자적인 표현방법마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마주한 시선의 끝에서 결국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 사람들은 그래서 자코메티의 작품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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