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공연]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선 그를 드러내어 제대로 소독해야 한다
글 입력 2023.01.2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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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서울 연극제 대상 수상 작품인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가 지난 12월,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개막했다.


2018년에 초연한 이후 2020년에 서울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는 잊히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잘 담아냄과 동시에 사회가 외면하는 문제를 직면한다는 점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이번 공연은 국립극장과 극단 수가 공동으로 주최한다. 또한, 화려한 배우들의 캐스팅으로 관객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더불어, 서울연극제 수상의 주역 정의신 작가와 구태환 연출이 다시 한번 참여해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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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는 1978년 개관한 낡은 영화관을 배경으로 한다. “레인보우 씨네마”는 오랜 시간 동안 추억을 만들어왔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 결국 폐관이 결정되어 마지막을 앞두고 있다.


그를 계기로 초대 극장주 조병식과 그의 아들이자 현 극장주 조한수, 한수의 아들인 조원우까지 3대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레인보우 씨네마는 단순한 영화관이 아니라 특별한 추억의 장소였다. 때로는 궂은 날씨를 피하는 쉼터가 되어주기도 하고, 표 한 장으로 다양한 세상을 구경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주기도 했다. 레인보우 씨네마에 특별한 추억을 가지고 있던 이들 역시 하나둘 레인보우 씨네마로 모이기 시작한다. 


영화관을 만들었던 병식도, 영화관을 지켰던 한수도, 영화관을 떠났던 원우도, 원우를 따라온 태호도, 영화관에서 일하는 수영과 희원도, 매일 같이 영화관을 찾는 정숙도 모두 마음속 한구석이 뒤틀린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함께 곧 다가올 마지막 상영회를 준비한다. 


그러나, 폭풍이 몰아치는 영화관 속에서 꾹꾹 숨겨두었던 과거의 일들이 터지며 이들은 서로의 마음을 못되게 할퀴기 시작한다. 과연 이들은 마지막 상영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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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은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레인보우 씨네마의 초대 주인이자 작품의 든든한 중심축이 되어주는 ‘조병식’ 역에는 국민 배우 신구와 김재건이 열연을 펼친다. 두 배우는 조병식의 다정함과 따뜻함을 표현하며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


영화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2대 주인 ‘조한수’ 역은 배우 손병호와 박윤희, 성노진이 맡았다. 무뚝뚝하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아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은 친근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책임진다. 


레인보우 씨네마의 폐관 정리를 돕기 위해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조원우’ 역은 배우 이성열과 이시강, 임지환이 맡는다. 언제나 무뚝뚝한 모습으로 일관하지만, 이들은 그 속엔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원우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극을 전개해나간다. 


원우와 함께 레인보우 씨네마의 정리를 돕는 ‘신태호’ 역엔 한윤춘과 김성철, 박장면이 캐스팅됐다. 다양한 연극을 해온 한윤춘과 오랜 기간동안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에서 태호의 이야기를 보여준 김성철과 이번 공연에 새로 캐스팅된 박장면이 든든한 태호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스터리한 영화관의 영상기사 ‘박수영’ 역에는 배우 조성국이, 매일 영화관을 찾는 ‘김정숙’ 역에는 배우 황세원이, 쾌활한 레인보우 씨네마의 직원 ‘송희원’ 역에는 배우 배현아가 열연을 펼친다. 스윙에 유진희를 포함하여 총 15명의 배우가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의 감동을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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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극단 수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가 보여준 큰 매력은 바로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련함이었다. 곧 폐관될 위험에 처한 레인보우 씨네마를 보내주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무조건적으로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레인보우 씨네마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레인보우 씨네마가 가진 의미를 되새기는 것. 그것은 곧 사라지는 것에 대한 완벽한 쉼표가 되어주었다. 비록 모습은 사라지겠지만 그들의 기억과 추억 속에는 계속 남아있을 존재에 대한 쉼표였다. 


슬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안을 함께 고려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영화관을 정리하고 마트에서 일하게 된 한수의 새 출발을 모두 응원해준다. 만일 그의 취직을 안타까워한 이가 있었다면, 괜스레 슬퍼지기만 했을 것이다. 희원의 헬스장 취업을 격려하고 축하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적극적으로 수영의 취업을 알선하는 한수의 모습도 새 출발을 위한 희망찬 발걸음으로 보였다. 


이별은 슬프지만, 우리는 그 슬픔에 안주할 수 없다. 이별을 멈출 수 없다면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는 그 해답을 들려준다. 


아련함은 간직하되 아쉬움은 보내주는 것. 


우리의 곁을 떠나는 존재에 대한 아련함은 잊으려 해도 쉬이 잊히지 않는다. 그 아련함은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때때로 들여다보면 된다. 너무 그리워 다시 만나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으로 간직해두면 된다. 그러나 아쉬움은 아니다. 아쉬움은 언제나 깊은 후회를 동반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지난날을 후회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없다.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는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잔잔하게 그려내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의 아픔을 조명하고 그를 보듬는 방식을 다룬다. 


조병식과 조한수, 조원우에게는 각기 다른 아픔이 있었다. 바로 원우의 동생인 원식의 죽음이었다. 극심한 학교 폭력을 당한 탓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원식은 병식과 한수, 원우 모두의 가슴에 아프게 박혀 있었다.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 각자의 아픔을 견뎌온 그들은 폭풍을 마주하고서야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되었다. 


홀로 가정을 지키며 열심히 달려온 한수도, 죄책감과 함께 가족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병식도, 그저 답답한 마음에 가족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원우도 모두 제대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런 한수와 원우에게 병식은 터놓고 이야기할 것을 제안한다. 서로 대화하지 않고 상처를 드러내지 못했다며, 각자가 가진 아픔을 털어놓자고 말이다. 


그 과정에서 원우는 한수가 끌어안아야만 했던 무게를 깨닫게 된다. 한수는 홀로 견뎌내야 했던 시간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렸고, 병식 역시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아픈 기억을 꺼내어 놓는다. 원우는 오랜 시간 동안 혼자 고민해왔던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한 고민을 사실 한수가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기도 한다. 


원우에게 상처받았지만 언제나 자신의 마음에 솔직했던 태호 역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마음이 다쳐 인형 탈을 써야만 사람을 마주할 수 있었던 수영도, 치매인 어머니를 모시며 속앓이하던 정숙도, 사랑에 상처받은 희원도 각자의 마음에 솔직해진다. 


진솔한 대화를 통해 외면하기만 했던 상처를 온전히 드러내면서 결국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끌어안을 수 있었다. 상처를 소독하는 것은 언제나 쓰리고 아프지만, 제대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올바르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상처를 온전히 들여다보고 소독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재개발로 인한 추억의 장소가 사라지거나 학교 폭력으로 인해 고통 받는 피해자들, 성소수자들의 고충 등은 깨닫지 못했을 뿐, 우리의 주변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문제다.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는 그러한 문제들을 다루면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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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극단 수

 

 

필자가 관람한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회차에서는 조병식 역으로는 배우 신구, 조한수 역으로는 배우 박윤희, 조원우 역에는 배우 이시강, 신태호 역에는 배우 박장면이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조한수를 연기한 박윤희 배우의 익살스러우면서도 진정성 있는 연기가 매우 감동적이었다.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는 위트 있고 유쾌한 대사와 연기로 진중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데, 박윤희 배우의 연기가 특히나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유쾌한 연기로 극의 분위기를 살리고, 갈등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감정을 폭발시키는 연기가 큰 감동으로 이어졌다.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는 참으로 따뜻한 연극이었다. 추운 겨울에 만난 한여름의 이야기는 잔잔하고 따뜻한 감동을 주었다. 비록 레인보우 씨네마의 마지막 상영은 끝났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깨달은 이들의 영화는 계속될 것이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선연하게 기억난다. 마지막 상영을 마친 상영관 밖으로 쏟아져 내리던 황금빛과 그 빛을 맞으며 환하게 웃던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마치 비 온 뒤 떠오르는 무지개처럼 맑았다.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는 2023년 2월 19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인터파크와 예스 24에서 예매할 수 있으니 공연 관람에 참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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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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