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넓은 의미의 여행을 떠나볼까 - 제2회 인사이트 데이

여행 같은 강연을 즐기다
글 입력 2023.01.1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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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에 이런 말이 나온다. 맥베스가 잠을 죽였다. 이젠 잠을 잘 수 없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여행을 죽였다. 우리는 더 이상 여행을 갈 수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서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공항에 사람 발소리가 더 잦아졌다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전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어느 순간 여행은 그립고 망설여지는 이름이 었다. 맥베스에게 잠이 그러하듯이.


그러던 때에 찾아온 것이 인사이트 데이였다. 여행자에서 여행 기록자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여행을 좀 더 오래 기억할 방법을 찾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여행이 낯설어진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강연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행과 관련된 물품으로 꾸며진 공간에 모여 여행을 추억하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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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두사람’과 카페 ‘언제라도 여행’의 대표인 김준영 씨는 여행이란 단순히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을 즐기는 순간만 말하지 않고 여행을 계획하는 순간의 설렘과 다녀온 후의 여운까지 포함한다고 했다.

 

실제로 카페 ‘언제라도 여행’의 손님 중엔 여행을 계획하기 위해 오는 분이 많다고 한다. 반대로 여행이 끝난 뒤 여행을 추억하기 위해 찾아오거나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을 효과적으로 써보기 위해 카페에서 주최한 오프라인 강연을 들으러 오는 분도 계셨다. 각자의 방식대로 여행의 유통기한을 늘리는 것이다.


카페 ‘언제라도 여행’은 이러한 대표의 관점이 엿보이는 공간이었다. 들어서는 순간 여행지 특유의 설렘과 아늑함을 느꼈으니까. 벽에는 여행지에서 찍은 액자가 걸려 있었고, 한구석에는 여행을 주제로 만든 옷이 걸려 있었다. 일상에서 자주 입진 않지만 여행지에 가면 이상하게 편하게 입게 되는 얇고 밝은 옷. 가게 한 벽면을 채운 여행 관련 책은 괜히 여행 전에 이것저것 정보를 찾아볼 때처럼 들뜨게 했다.

 

또, 멀리 떠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조금이나마 여행의 낭만을 느끼고자 베트남 연유 커피 등 여행지의 유명 음료를 판매한다는 설명은 나까지 새로운 여행을 즐길 준비를 마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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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시선을 바꾸니 여행의 단점은 사라지고 장점만 남았다. 금전적, 공간적 한계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두근거리는 감정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물론 진짜 여행만큼은 못하겠지만, 왜 여행을 좋아했는지 떠올리며 유행병이 죽인 여행이 부활할 때까지 기다리기엔 충분하다.


출판사 ‘두사람’에서도 여행을 다른 방식으로 즐기는 방법을 오래 고민해왔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직전 출판을 위해 각 나라를 돌아다니던 작가들은 기약 없이 출판을 미뤄야 했다. 예상치 못한 불행 속에서 ‘두사람’은 이 상황에서만 낼 수 있는 책을 편집했다. ‘우린 다시 여행하게 될 거야’는 잃어버린 여행을 그리워하면서 또 한편으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으며 여러 작가분들 글을 함께 묶은 에세이집이다. 제목부터 여행이 필요한 우리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이렇듯 여행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일까. 강연 내내 활기가 돌았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자신의 여정을 이야기하고 내게 도움을 줄 때처럼 한 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선후배가 되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여행이란 사람을 한 마음으로 묶는 힘이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여행 관련업이 모두 불황에 빠지긴 했지만 기존에 나와있는 수많은 여행서 사이에서 빛날 수 있으려면 가장 먼저 뭐가 필요할까? 강연에서는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지나온 여정 작성을 하는 것보다 여행에 무언가 특별한 것을 첨가해야 매력적인 여행 일지가 나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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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대표는 ‘못하는 걸 잘하려고 하지 말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언급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잘 쓸 수 있는 것을 쓰면 된다고.

 

못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빈틈을 채워주면 된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 인상 깊게 들리는 건 왜일까? 그동안 내가 시를 처음 쓸 때 미사여구와 비유를 잔뜩 넣으려는 사람처럼, 여행서를 쓸 때 남들이 하는 건 다 따라 넣으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하고 비우는 힘. 비단 여행 기록이 아니라 모든 글에 필요한 충고였다.


나만의 콘텐츠가 정해지면 기획도 중요하다. 기획은 단순히 목표와 방향성을 설정하고 최신 유행과 소비층을 파악해 읽히고 팔리는 글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일기처럼 혼자 읽고 끝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한 명에게라도 읽혀야 의미가 생긴다.


그치지 않고 끝까지 쓸 수 있도록 설정하는 것도 중요해 보였다. 아무리 좋은 콘셉트를 가지고 있어도 끝까지 쓰지 않으면 안 쓴 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뛰어난 기획과 콘셉트여도 완성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에 모든 기록은 장기전이다. 위대한 목적을 가지고 달리는 것도 좋지만 장기전을 끝까지 해내는 끈기도 필요하다. 여행도 멋진 장소를 가겠다는 목적을 세우는 것보다 아무리 초라한 장소라도 실제로 도달해야만 의미가 있지 않은가. 뭐든 마무리까지 지어야 의미가 생기나 보다.


이 장기전을 더욱 수월하게 진행하는 팁이 있다. 마음에 드는 글을 필사하면서 흐름을 파악하는 법을 배우면 글쓰기가 좀 더 수월해지고 평소 기록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취재 노트처럼 정리해두면 현장감을 살리면서 글이 더욱 풍성해진다.

 

또 “아마추어는 영감이 오길 기다리고 프로는 영감이 오는 방법을 안다”는 인용구가 루틴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회사원이 된 것처럼 일정한 루틴을 짜면 기복 없이 글을 써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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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뿐 아니라 사진과 그림에 대한 팁도 들을 수 있었다. 현장에서 드로잉하거나 찍은 건 SNS에 곧바로 올리면서 소통하면 피드백을 쉽게 받을 수 있어 장기전을 치를 힘이 생긴다. 이후 시간을 잘 분배해서 정성을 들인 작품을 올리거나 당시 현장에서 느낀 감정을 함께 올리는 식으로 나만의 콘텐츠를 꾸려볼 수도 있다.


여행 사진은 어떤 방식으로 찍는 게 좋을까? 나처럼 촬영에 자신 없는 분이 Q&A 시간에 질문은 주셨는데 재미있는 대답을 들었다. 잡지 같은 경우 대체로 인물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한다. 인물이 나오면 독자의 감정 이입을 쉽게 유도할 수 있다고. 잡지 사진 대부분은 구매욕을 자극해야 하니 더욱 중요한 방식일 것이다.


여행지 정보를 전달하는 책의 경우 식당 외부, 내부, 음식 사진을 90도 각도, 45도 각도, 디테일 컷으로 한 장씩 찍는 둥 정해진 틀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해진 방식대로만 사진을 찍다 보면 금방 질릴 수도 있으니 자신만의 분위기를 찾아 여러 방향으로 도전해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일을 위해 찍다 보면 내가 왜 여행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는지 근본을 잃어버린다고. 그러면 여행의 설렘까지 잃어버린다고.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겐 특별한, 녹슨 대문, 푸른 하늘, 나무에 걸린 감 따위를 찍는 것도 여행에서 느낀 감성을 기록할 수 있다면 다 괜찮다. 중요한 건 잘 팔리고 잘 읽히는 여행 기록을 만들기뿐만 아니라, 여행 그 자체를 즐기는 것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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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여행이 죽은 이 시점에도 여행을 놓지 않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일까? 맥베스는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서 잠을 기다렸지만 여행은 없다고 해서 특별하게 못 사는 것도 아닐 텐데.

 

여행이란 일상에서 벗어나는 상황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지루한 삶을 좀 더 활기차게 만드니까. 여행지에서의 행복을 즉시 기록해 올리는 일도, 여행지를 다녀온 후 추억을 남기는 일도 일상에서 벗어난 기쁨을 만끽하기 위한 행동이다.


그렇다면 이 강연은 넓은 의미의 여행이었다. 여행을 가기 전 여러 정보를 찾아보는 것처럼 넓은 여행을 시작하기 전 정보를 찾아 나선 여행. 고작해야 2시간 거리로 떠났을 뿐인데, 홍대를 처음 간 것도 아닌데, 비행기를 타고 낯선 나라에 도착한 듯 모든 게 신기하고 새로웠던 이유를 이제 알겠다. 여행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차와 버스, 비행기를 타고 떠난 여행은 아니지만 가슴 설레고 벅찬 여행을 시작했다.

 

맥베스는 기어코 잠을 죽였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끝내 여행을 죽이지 못한 셈이다. 이제 펜을 든다. 지난 여행을 새 여행으로 탈바꿈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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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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