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김초엽을 사랑하는 이유: 글리프 6호 - 김초엽

글 입력 2023.01.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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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초엽 작가를 알게 된 건 <멋있으면 다 언니>라는 인터뷰 책을 읽고 나서다.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라는 점에 유대감을 가졌고, 그가 삶을 바라보는 총명한 시선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 이 자그마한 관심은 점점 커져 책을 한 권 두 권 구매하게 만들었고, 본격적인 덕질을 시작하는 <작가 덕질 아카이빙 [글리프] -김초엽[실험]>까지 이어졌다.


글리프는 나의 생각과 감정을 더욱 확장시켰다. 다른 감상자들의 해석은 내가 간과하고 지나쳤던 부분들을 생각할 수 있게 했고, 유려하게 쓰여진 해석은 김초엽 작가에 대한 애정을 높이게끔 작용했다. 또한 내가 느끼고 있었지만 말로 풀어내지 못했던 부분을 잘 정리된 문장으로 마주하게 되어 시원함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이내 내가 왜 김초엽 작가를 사랑하는지에 대해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왜 김초엽 작가를 좋아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읽어봐, 진짜 좋아”라고만 답했었는데, 글리프가 이 복합적인 나의 애정을 다듬어 주었다. 그 이유를 하나 둘 풀어가자면 다음과 같다.

 

 

 

정상성에 대한 이야기



p.99

이런 미래가 더 무서웠던 이유는 유토피아라는 것도 결국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유토피아가 아닐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 그렇다면 새로운 세상에서 소외되는 것이 누구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므로 그 총구의 끝이 나를 향하지 않을거라 장담할 수는 없다.


너무나 당연하게 정상과 비정상,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우리 사회. 그리고 나는 이러한 방식에 익숙해졌다. 부끄럽지만 김초엽의 시선을 만나기 이전의 나는 당연하게 세상의 원리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었고 정상의 범주에 속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왔으며, 비정상‧비주류에 혐오적인 사고를 가졌었다.


이 딱딱하고 편협하게 굳어진 나의 사고회로는 다행히도 조금씩 무너졌다. ‘정상’이라는 것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정상’과 ‘주류’가 언제든 ‘비정상’과 ‘비주류’가 될 수 있음을 깨달으며 ‘정상’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우습고 부끄러워졌다. 이후로 나는 이 집착을 내려놓고 편협하지 않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일상의 언어에 조금 더 신중함을 가하려 하고 있다.


특히 김원영, 김초엽의 <사이보그가 되다>는 이 이분법적 사고에 원초적인 질문을 던졌다. 장애라는 다양한 경험을 고려하지 않고 비장애를 중심으로, 비장애를 지향하며 기술이 발전된다. 두 발로 걷기 위한 보조장치가 만들어지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보청기가 개발되며, 이동에 제한을 해소하고자 가상, 증강현실이 구현된다.


하지만 과연 이게 정답인지, 비장애를 지향점에 두고 즉 한계점을 만들어두고 개발된 기술들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이는 자연스레 장애에 부끄러움의 감정을 갖게 하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게 만들며, 삶에 절망을 수반하게 한다.


최근 대두된 출근길 장애인 지하철 시위 이슈가 떠오른다. 이들을 비난하는 시선에 복합적인한 감정이 든다. 지하철 탑승 구조도 비장애인 위주로 되어있다는 점, 출근이 가능하다는 것 또한 취업시장이 비장애인을 선호한다는 점.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사회가 비장애인이라고 일컫는 이들 위주로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장애’의 기준점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데 말이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



김초엽 작가의 작품은 다양한 과학기술적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SF라는 소재로 분류되곤 한다. 그렇지만 단순하게 SF로 분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를 새로운 시선으로 읽히게끔 SF라는 소재를 빌려온 것이 아닐까 싶다. 책 속에 등장한 ‘마인드 업로딩’, ‘유전자 편집’등의 단어가 차가운 느낌을 풍기지만 결국 ‘사랑’을 외치는 따뜻함이 곳곳에 자리한다.


김초엽 작가의 작품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차가운 과학기술적 소재로 따뜻하고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나는 이 크고 작은 감정들을 ‘사랑’이라는 범주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초엽 작가는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을 떠나 세상의 다양한 형태의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김초엽의 <스펙트럼> 속 희진은 루이가 보는 방식으로 풍경을 볼 수 없지만, 루이가 보는 세계를 상상하고 기쁨을 느낀다. 서로 같은걸 볼 수 없어도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려는 노력에서 사랑이 묻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은 다른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언어, 다른 모습의 이들을 자신과 동일하게 만들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 나는 이를 사랑으로 느꼈다.


그리고 이 글리프에서 에디터들은 김초엽 작가가 말하는 사랑을 각자의 경험에서 찾아 풀어준다. 반려견 뽀뽀와 감각하는 방식,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존재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지만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사랑하고(p.52), 프랑스인 남편과 시간을 가지고 상대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하며 유창하지 않은 언어로도 별의 탄생을 이야기하며(p.66), 반려식물과 함께 삶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고, 교감하고, 리듬을 맞춰가며 생명에 대한 소망을 품는다.(p.70)


우리는 크고 작은 사랑을 경험하고 이 사랑을 함께 나누고 확장하며 세상을 채워간다. 나는 갈수록 이분법적 원리와 소수에 대한 혐오가 만연해진 어지러운 사회라고 불려도 사랑의 불씨를 꺼트리고 싶지 않다. 김초엽 작가의 작품이 내 마음 속 꺼지기 일보 직전의 불씨를 다시 살려낸 것 같다. 사랑을 실천하고 전하며 조금 더 평등하고, 따뜻하고,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싶다. 


*

 

김초엽 작가는 문학이 꼭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작가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나는 작품이 주는 즐거움에 기인해 다양한 이야기와 사고를 확장하는 시간을 가졌다. 글리프를 통해 김초엽 작가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대에 함께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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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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