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를 기억하는 법 -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전시]

모든 것이 보이는 원경의 꼭대기에서
글 입력 2022.12.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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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하고도 매서운 칼날처럼 와닿는 차가운 공기를 뚫고,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이 열리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전시의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듯, 이번 전시는 서울살이를 하면서도 어렸을 때 이후로 한 번도 다시 찾아갈 생각을 못 해 봤던 63빌딩에서 개최되었다.


내게 있어 맥스 달튼 전은 올해 관람이 처음이지만, 작년 마이아트뮤지엄에서도 동일한 전시가 개최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맥스 달튼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오리지널 일러스트를 작업한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전시를 보기 전부터 색감과 연출로 유명한 영화의 명성을 그에게도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게 되었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60층에는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전경으로 둘러싸인 전시관 입구가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들어서는 벽에 적힌 “하루에 세 편의 영화, 일주일에 세 권의 책, 그리고 훌륭한 음악 레코드만 있다면 내가 죽는 날까지 행복하기에 충분할 것이다.”라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한마디와 함께 관람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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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주로 프린팅되어 액자에 걸려 있는 작품을 감상하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각 섹션의 벽면들은 맥스 달튼이 특히 살리고자 했던 빈티지한 색감들로 깔끔하게 칠해져 있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감상의 몰입감을 살리는 요소로 작용했다.

 

고전과 동시대를 아우르는 영화들을 한 화면에 압축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는 그의 작업은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일러스트 구석구석에 담긴 유머러스한 디테일들은 영화가 지닌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지인과 함께 관람했는데, 각자의 감상에서 아는 영화와 모르는 영화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그래서인지 추가로 구매해서 들었던 오디오 가이드에는 작품에 대한 설명보다는 영화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뤘고, 개인적으로는 스포일러를 당하는 느낌이라 중간부터는 듣는 것을 그만두었다.


또한 큐레이션에는 작품과 관련된 영화 OST 플레이리스트를 함께 제공하고 있어 여운을 주는 좋은 구성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상업 전시여서 그런지 지니 뮤직을 구독하지 않을 경우 1분 미리 듣기밖에 할 수 없었고 감상보다는 판매 유도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라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Elvis Presley.jpg

 

 

맥스 달튼은 현재 일러스트레이터뿐만 아니라 뮤지션, 작가로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3막 섹션에서는 그가 음악적 거장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린 LP 커버와 동화책 일러스트, 화가의 시리즈 등 영화 외적으로의 다양한 작품들 또한 감상할 수 있었다.

 

사실, 전시 공간의 전체적인 흐름보다는 액자 속의 일러스트에 더욱 집중하며 관람해야 하는 이번 전시가 개최된 곳이 63빌딩이라는 점에서 조금 의아했었다. 돌이켜 보면 63빌딩에서 바라본 전경이 작은 요소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그의 일러스트와 꽤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 중간에 있는 한강 쪽 전망대 섹션에 봉준호 감독의 〈괴물〉 일러스트를 배치한 것도 나름의 재치 있는 요소였다.

 

 

Le Sans Blague 저화질.jpg

 

 

일러스트 전시는 그리는 사람의 확고한 취향과 그림체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어느 영화를 표현한 작품이든 맥스 달튼만의 그림체에서 오는 일관성에 묘한 안정감을 받았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눈여겨보았던 지점은 화면 구성과 연출적인 측면이었는데, 잘 짜여진 섬세하고 정교한 구조 속에서 수년간 출판사와 잡지사, 광고 회사 등에서 근무했다는 그의 그래픽 디자인적 역량을 엿볼 수 있었다.

 

 

“흔히들 사람들은 작가가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해 온갖 에피소드와 사건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스토리를 창조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사실 정반대죠.

 

주변 사람들이 작가에게 캐릭터와 사건을 제공한답니다. 작가는 그저 잘 지켜보고 귀 기울여 들으면서 스토리의 소재를 주변인들의 삶 속에서 찾아내는 거죠.

 

작가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동시에 타인의 이야기를 듣죠. 지금부터 여러분께 전혀 상상도 못 할 이야기를 제가 들은 그대로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온전히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 맥스 달튼


 

전시에서 자신 있게 전하는 맥스 달튼의 메세지는 그가 영화를 기억하는 법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그가 일러스트라는 매체에서 구축해 낸 영화 속 세계는 영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온전히 보존하며 새롭고 직관적인 스토리텔링을 추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전시에는 맥스 달튼의 영감의 출처가 동시대를 아우르는 수많은 대중문화였다는 사실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다고 회고한다.

 

각자 다른 필름을 그만의 스타일로 이어 붙인 콜라주 작품 같았던 전시를 다 보고 나니, 입장할 때까지만 해도 밝았던 하늘이 어느새 밤이 되어 있었다. 낮과 밤의 필름을 붙인 듯한 느낌으로 발걸음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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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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