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보존하는 문화재'에서 '활용하는 문화재'로 - 문화동행 신영주 대표

글 입력 2022.11.2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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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 화성궐리사_포스터-01.png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어제보다 새로운 것이 눈앞에 놓여 있는 시대, 역사와 문화재 같은 옛것을 들여다보는 일은 지루하고 정적인 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옛것이라고 거기 그 자리에 계속 고정된 것은 아니다. 물리적인 형태는 같을지라도 그 가치와 의미를 누가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문화재는 새로운 모습이 된다. 있는 그대로 잘 보존하는 것만이 문화재를 사랑하는 방식은 아니다.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지금 우리가 이 문화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환기하는 것 또한 문화재를 아끼는 방법이다.

    

‘문화동행’은 우리의 전통문화와 문화유산을 보존, 관리, 교육하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재 활용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단체다. 문화재를 중심으로 하는 대안교육단체 ‘지기학교’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 무려 16년이 넘는 시간이다. 문화재가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사람을 거쳐왔듯, 이곳에도 여러 사람이 나고 들며 이곳만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지기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단체를 이끌어 온 신영주 대표는 켜켜이 쌓인 기억의 산증인이다.


2022년 한 해 동안 오산시 화성궐리사와 서울의 낙성대를 중심으로 여러 활용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쉴 틈 없이 달려온 문화동행은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 바쁜 나날을 보내는 신영주 대표를 만나 문화동행과 지기학교가 걸어온 지난 15년의 발자취를 들어보았다.

 

 

 

우리 곁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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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을 알아가되, 다음번에도 또 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게

저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대표님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영주라고 합니다. ‘지기학교’라고 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그리고 문화유산 활용사업을 하는 ‘문화동행’이라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문화동행은 문화유산 활용사업을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좀 더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문화동행은 문화유산이 지닌 가치를 활용해 다양한 행사를 기획합니다. 올해는 주로 오산시의 화성궐리사와 서울의 낙성대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예전에는 광주의 남한산성, 용인의 심곡서원에서도 문화재 활용사업을 진행했어요. ‘보존’이 아니라 ‘활용’에 방점이 찍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문화유산, 즉 문화유산의 ‘원형’보다는 문화유산이 지닌 ‘가치’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게 특징이에요.


예를 들어 최근에 진행한 화성궐리사 사업을 보면, 궐리사 건물 자체의 건축적 의미보다는 궐리사가 지닌 가치를 강조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했어요. 오산에 있는 화성궐리사는 정조가 새 도시를 건설하며 유교를 진흥하기 위해 만든 곳임을 강조하는 거죠. 그렇게 접근하면 정조의 개혁과 효심을 강조하는 콘셉트를 잡을 수도 있고, 원래 주인이었던 공서린을 내세워 공자의 인의예지를 이곳에서 가르친다는 콘셉트를 잡을 수도 있어요.

 

 

말씀을 듣다 보니 오랫동안 우리나라 문화재 관련 정책이 보존에 치우쳐 있었던 것 같아요. 문화재 활용 프로그램이 생겨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인가요?


맞아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문화재는 소수 연구자의 전유물로, 멀리서 바라보는 보호의 대상이었어요. 그러다가 1990년대 이후부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와 함께 개개인이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공부하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지요.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재를 활용해 행사나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거기에 참여하는 것도 문화재를 사랑하는 방법의 하나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죠.


외국에서는 예전부터 역사적 가치가 있는 성당에서 음악회나 연극을 하는 등 문화재 활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90년대 무렵부터 우리나라도 문화재를 활용하는 쪽으로 정책이 새롭게 생겨났어요. 그렇게 궁중문화축전, 생생문화재 사업, 향교 서원 활용사업, 문화재 야행사업 등 다양한 문화유산 활용사업이 생겨났습니다. 저희가 궐리사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은 그중 ‘향교 서원 활용사업’에 해당해요.

 

 

사업을 기획할 때 대표님이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일단은 지자체의 의지가 가장 중요해요. 활용하기 좋은 문화유산이 있어도 지자체에서 의지가 없다면 사업을 진행하기가 어렵거든요. 그 다음에는 해당 문화유산을 알아야 즐길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교육에 중점을 둡니다. 물론 그러려면 방문객을 끌어야 하니 볼거리, 즐길 거리를 마련해 축제 성격을 띠도록 만들어요.


그렇다고 문화재와 전혀 상관없는 체험 프로그램을 넣는 건 지양하려 해요. 예를 들어 한동안 축제 현장마다 페이스페인팅이 유행이었는데, 저희는 그게 문화유산과 관련이 없는 방식이라면 안 했어요. 굳이 한다면 그 페이스페인팅을 통해 해당 문화재를 조금이라도 알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프로그램을 경험한 방문객들이 문화유산을 알아가되, 다음번에도 또 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게 저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재로 나를 알아가고 세상에 다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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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수업을 들었을 때,

역사를 통해서 나 자신을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대표님 말씀을 들어보니 문화동행 이전에 지기학교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기학교는 어떤 곳인지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지기학교는 2005년부터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문화재형 대안 교육을 했던 비영리 민간단체예요. 주말에 학생들과 문화재 현장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배우고 문화재 주변을 청소하는 정화활동을 했죠. 그땐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했어요. 그만큼 보람도 컸고 추억도 많아요. 하루하루 아이들이 성장하는 게 보이니까 내가 더 잘해야겠다고 매번 새롭게 다짐하며 10년을 했어요. 잘 따라와 준 아이들도 대단했죠.

 

 

지기학교를 오래 운영하시다가 문화동행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오랫동안 정말 열심히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이 줄어들었어요. 무엇보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단체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져서 대부분의 활동을 정리하게 되었어요. 그 후 문화유산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문화동행을 만들었고, 지금은 오히려 문화동행이 제 주된 일이 된 상태예요. 시작할 때만 해도 생각 못 했던 일이죠.

 

 

지기학교의 시작이 2005년이라면 16년 넘게 문화재와 함께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대표님이 문화재에 빠져든 그 시작의 순간도 들어보고 싶어요.


저는 문화재를 통해 세상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된 사람이에요. 원래 경력단절 여성이었는데, 아이가 좀 크니까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해져서 역사교육 공부를 했죠. 처음 문화재 수업을 들었을 때 역사를 통해서 나 자신을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지금까지 제가 받았던 교육과는 너무 달라서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저는 사람이 살면서 정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성장을 위해서는 나 자신을 계속 새롭게 알아가야 하는데, 문화재를 공부하는 일은 나를 알아가는 것과 연결되어 있어서 좋아요. ‘지기학교’라는 이름 역시 ‘나를 알아가는 학교’라는 뜻이고요.

 

 

지금까지 문화재로 진행했던 프로그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무엇이었나요?


매번 하나씩 끝낼 때마다 쉽지 않다는 걸 느끼는데, 몇 년 전 남한산성에서 진행했던 수업이 기억에 남아요. 일정이 여러 번 밀려서 8월 15일 엄청나게 더운 날에 첫 수업을 하게 되었어요. 땀을 뻘뻘 흘렸죠. 그때 프로그램 중 활쏘기 체험이 있었는데 장난감 활이 아니라 실제 사용되는 진짜 활을 썼더니 얼마나 무거운지… (웃음) 너무 힘들어서 기억이 생생해요.


외국인 참여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도 생각이 많이 나네요. 외국인들이 단체로 왔는데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더라고요.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보며 내가 문화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아직까지 문화재라 하면 고루하고 학술적이라는 느낌이 있는 듯해요.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대표님은 어떻게 문화재를 소개하고 싶나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고, 일단 가봐야 해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거든요. 오랜 시간을 지나온 문화재가 내 눈앞에 있는 그 순간에는 불어오는 바람과 뒤편에 보이는 자연의 모습까지 문화재와 함께 하나의 풍경이 되어 복합적인 느낌을 줘요.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우주와 만난다고 할 수도 있을 듯해요. 책에서 봤던 것과는 너무 다르고, 이래서 직접 문화재를 보러 다니는구나 싶은 순간이 와요.

 

 

 

오랜 친구가 된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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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를 보면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때론 사랑스럽다는 생각도 해요."

 

 

단체를 이끌어 오시며 가장 힘들었던 때와 뿌듯했던 순간을 듣고 싶습니다.


뿌듯한 순간은 대부분 아이들과 관련되어 있어요. 예전에 함께했던 아이들이 잘 자라서 대학에 간다, 군대에 간다 소식을 전해올 때 참 기뻐요. 골든벨에 나가서 상금을 탄 친구가 상금을 저희 단체에 후원한 적도 있었고요. (웃음) 여러 나이대의 아이들이 섞여 있었는데 그 안에서 따뜻했던 분위기도 많이 기억나요. 그 친구들이 있었기에 저희도 10년 넘게 잘 버틸 수 있었어요. 생각하면 고맙죠.


힘든 건 아무래도 운영 부분이었죠. 단체가 금전적으로 넉넉지 못하다 보니 관리비와 임대료 내는 것, 활동하던 선생님들께 강사비를 많이 못 드리는 것이 힘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기도 했고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래도 그만두지 않고 문화재 일을 계속하셨는데요, 앞으로 나아가는 대표님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나요?


3, 4년 전 지기학교에서 하던 일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사무실 이사를 오던 날 침울한 분위기였던 게 기억나요. 내가 새로운 일을 다시 잘할 수 있을까 앞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지금 이 순간을 잘 버텨보자는 생각만 했어요. 당시 누가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으면 “잘 버티고 있어요.”라며 대답했죠.


버틴다는 건 흐르는 시간 속에 아무것도 안 하고 나를 그냥 방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공을 키우든 상처를 보듬든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견디며 그다음을 생각하는 거예요. 뚜렷하게 앞이 보이지 않을지라도요. 열정이 없었다면, 지금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못 했을 거예요.

 

 

오랫동안 문화재와 함께해 오신 대표님께 여쭤보고 싶어요. 우리가 문화재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문화재를 고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알고 보면 진짜 재밌고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게 우리 문화유산이거든요. ‘문화재를 알아야 하는 이유’를 단답형으로 바로 대답하기는 어려워요. 공부하다 보면 철학과도 연결되고 사람의 도리와도 연결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알면 알수록 깊은 매력이 있어서 저도 지금까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웃음) 저는 문화재를 자주 봐서 그런지 문화재를 보면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때론 사랑스럽다는 생각도 해요. 이게 바로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자산이구나 생각하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문화재로 교육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정말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인데요, 앞으로 문화재로 더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제 웬만한 건 다 해봤어요. (웃음) 최근에는 건국대학교 세계유산학과에서 박사 과정 수료를 해서 논문을 써야 해요. 내가 이 나이에 박사 학위를 취득해서 어디 쓸까 고민도 했는데, 특별한 계획이 없더라도 지금껏 내가 해오고 배운 것들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해보기로 결심했어요. 더 나아가 저는 이 지역에서 문화유산과 시민을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계속하고 싶어요. 제가 배운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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