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음 깊이 상처를 내는 영화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영화]

때로 추하고, 때로 서글프며, 가끔씩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글 입력 2022.11.2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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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시작



사랑의 시작.jpg

 


이 영화 속,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은 '우연'과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조제는 우연하게 만난 츠네오의 다정함에 호감을 갖게 되고, 츠네오는 조제의 순수하고 엉뚱한 모습에 흥미를 느낀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 추억은 늘어간다. 츠네오는 다리가 불편한 조제를 위해 유모차를 손수 만들어주고, 그녀를 태워 다닌다. 일상이라곤 유모차, 옷장, 헌책, 할머니가 전부였던 조제에게 츠네오는 새로운 세상과 경험을 선물한다. 조제도 츠네오에게 정성을 들인 요리를 대접하며 서로는 서로에게 의미있는 사람이 된다.

 

조제는 츠네오를 좋아하지만, 비장애인인 그와 장애인인 자신과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 더 상처받기 전에 그에 대한 마음을 떨쳐 내보려 한다.


하지만 사랑만큼 속수무책으로 새어 나올 수밖에 없는 감정이 있을까. 연락을 끊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제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츠네오는 마음이 쓰여 그녀를 찾아가고, 결국 둘은 연애를 시작한다. 

 

 


사랑의 끝



사랑의 끝.jpg

 

 

연애를 한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둘은 여행을 떠난다. 츠네오는 이미 몇 번 경험해본 여행이었을지 몰라도, 다리가 불편한 조제에게는 생의 첫 여행이 특별하기만 하다. 조제는 한껏 들떠 새롭게 발견한 놀라움을 츠네오와 공유하지만, 츠네오는 그런 그녀가 조금은 성가신 듯 말을 자른다.

 

조제의 유모차가 고장이 난 탓에 여행을 하는 동안 츠네오는 조제를 업고 다니게 된다. 가려고 했던 수족관에 도착하니 휴무로 굳게 닫혀있는 문.

 

평생 보고 싶던 물고기를 보지 못한다는 것에 실망한 조제는 츠네오의 등에서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지르고 떼를 쓴다. 조제의 다리를 자청해 그녀를 업고 있던 츠네오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하다.


츠네오는 그 순간 '조제와의 차이'를 새삼 온몸으로 실감한다. '상대의 결핍을 나눠 감당하는 현실’은 사랑을 시작할 때 조제를 유모차에 태워 밀던 무게보다 한참 더 무겁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생의 '지쳤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미안한 듯 조제를 말없이 끌어안는 츠네오. 그의 죄책감과 허탈함이 화면 너머로 와닿는 듯했다.

 

 

수족관 숙소.jpg


 

여행의 끝, 낮에 물고기를 보지 못한 조제를 위로하듯 운이 좋게 돌아가는 길에 수족관 컨셉의 숙소를 마주친다.


불을 끄면 바닷속 물고기 홀로그램이 벽면을 타고 흐르는 그 독특한 숙소도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던 탓인지 조제를 업고 다니느라 피곤했던 탓인지 츠네오는 먼저 잠이 든다. 조제는 홀로 깨어 물고기들을 보며 혼잣말을 한다.


 

그냥 깜깜하기만 했던, 그곳이 옛날에 내가 살던 데야.

깊고 깊은 바닷 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만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지는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 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데굴데굴 계속 굴러다니게 되겠지.

 

그런데 말이야. 그것도 나쁘진 않아.


 

몇 달 후, 둘은 이별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조제가 좋아했던 소설의 한 대목처럼 그들은 또다시 고독해졌고, 흘러간 1년의 세월만이 남게 된다.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때로 추하고, 때로 서글프며, 가끔씩은 아름다울 '사랑'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사랑의 시작과 끝’, 그것을 다룬 많은 작품과 속설, 통계, 예측 등이 무색하게 내가 느낀 사랑에 대한 사실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경험상 사소한 호기심, 작은 착각, 우연이 겹쳐 사랑은 언제든 시작될 수 있었으며, 한 사람이라도 관계에서 도망을 치면 사랑은 언제든 끝날 수 있었다.


 

사랑이 아름답다고 하는 말은 다 거짓이었다. 사랑은 바다만큼도 아름답지 않았다.

때로 추하고 때로는 서글프며, 또한 가끔씩은 아름답기도 할 사랑.

 

양귀자 <모순> 중


 

또한, 사랑은 위 문장과 같이 ‘가끔씩’만 아름다웠으며, 때론 비겁하고, 남루하고, 심지어는 영악했다.

 

믿었기 때문에 약점을 보여주었지만 그런 내 모습을 달가워하지 않던 (혹은 비난까지 하던) 상대방에게서 이별을 통보받기도 했고, 운명이라 여겼던 상대에게서 내가 먼저 권태를 느껴 도망치기도 했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랑은 필연적으로 아픔을 수반한다는 것을, 권태와 이별까지도 사랑의 과정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 영화를 두 번 보기에는 큰 결심이 따랐다. 사람들이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무조건 이 영화를 말할 정도로 좋아한다고 떠벌리면서, 정작 나는 이 영화를 딱 한 번 본 게 전부였다.

 

이 영화를 다시 보지 못했던 이유는, 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외면하고픈 사실을 짚어주기 때문이다. ‘부족한 나를 수용해준 사랑과도 언젠가 이별하고야 말 것'이라는 시린 사실 말이다.

 

사랑은 높은 확률로 언젠가 우리를 좌절하게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우리를 파멸하게 하는 것들은 우리의 삶에 양감을 만든다.

 

조제의 마지막 독백처럼 '사랑의 경험은 이별 후에도 우리 안에 잔재하며, 신체를 바꾸어 놓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하니까.

 

 

 

'이별'이 곧 '사랑의 소멸'은 아님을



조제를 업고 있는 츠네오.PNG

 

 

이 영화는 츠네오가 조제와의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회상하며 시작한다. 이별한 이후에도, 조제와 츠네오의 우주에 '지난 사랑'은 한 번 생성되면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다는 파동처럼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한 흔적을 꽤 오랜 시간 추적할 것이다. 가끔은 웃음 지으며 그리워하고, 가끔은 어쩔 수 없던 이별을 합리화하고, 가끔은 그 당시보다 더욱 애틋하게 아파하기도 하면서. 때와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빛과 그림자처럼, 시간이 지나며 다양하게 해석되는 '지난 사랑'을 그들은 아득하게 지켜볼 것이다.


나 역시 시간이 흘러도 가끔 이들의 이야기를 마치 내가 사랑의 당사자인 것처럼 돌아보며 좇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내 기억 속 '사랑하며 도망쳤던 츠네오들'과 '담백하게 이별을 받아들인 조제들'을 여전히 먹먹하지만, 그럼에도 이해한다는 듯 안아주고 싶다.

 

 

 

아트인사이트_권기선.jpg

 

 

[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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