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면을 회복하는 시, 흉터 쿠키 [도서]

글 입력 2022.11.0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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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경험에 덧대져 따뜻하고 풍부한 시선으로 모욕과 슬픔을 관통해 독자들을 위로하는, 깊이 있는 관찰과 강렬한 묘사와 상처받은 내면을 회복하는 아름다운 시 30편과 에세이가 담긴 시집이다.


시인은 "시는 상처보다 흉터에 가깝다"고 이야기하며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는 과정을 특유의 감수성과 밀도 높은 언어로 그렸다. 시는 비대한 슬픔에 침몰하지 않고 상처가 아물어 흉터가 되고, 분노하고 좌절했다가 그 구멍마저 사랑하게 되는, 삶을 향한 독백이자 기꺼이 결핍을 끌어안는 목소리다.

 


“마음을 헌 그릇처럼 내어주고 그냥 잠시 기대 있으면 어때요 구름이 꼭 비를 위해 모여든 것이 아니듯 마주 댄 손이 언제나 기도는 아니듯 마주침이 꼭 잇댐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잖아요” - 22페이지


결과보다는 과정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과거에는 상대의 행동이나 말이 내 생각과 같았으면 했다. 이랬으니까 이래야 하고, 이렇게 행동했으니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등. 내가 보낸 모든 감정이 온전히 닿기를 바랐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내 몫으로 두지 않고, 내 손에서 떠난 것들은 딱 거기까지임을 알게 되었다.


기대나 바라던 것은 때로는 실망으로 이어졌지만, 사람은 여전히 기대를 가지고 사는 것 같다. 상처가 흉터가 되었지만 그 구멍과 결핍을 인정하고, 일어나 또 다시 그 다음을 기대하는 것. ‘삶을 향한 독백’이라 말하는 작가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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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의 단면을 본 적이 있니. 아무리 얇게 잘라도 기어코 생겨나는 양면을.” - 29페이지

 

 

우와. 감정을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던 문장이다. 표현이 생소한데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모든 감정은 양면성을 가진다. 이해된다 싶으면서도 서운하고, 괜찮다 싶다가도 기분 참 별로다. 알겠다 싶다가도 돌아서면 다르다. 다양한 감정을 한꺼번에 느꼈을 때 혼란스럽기 마련인데, 기분은 단 하나로 귀결되기 힘들다는 말에, 무언가 탁, 후련해지는 느낌을 받았던 문장이다.

 

 

<숨은 새>  80p


책장을 넘기며 / 날개를 꺼낸다

어두운 페이지를 깨트려 / 주어진 여백을 따라

갈피의 빛을 배웠지 / 펼치면 달아나는 / 새의 기척을

작은 속삭임에도 눈가를 물들이던 / 떨림의 주파수를

숨은 우리가 창조한 공기의 단위 / 투명하게 펄럭이는 깃발이었어


좋아해 / 밭아진 소리를 주고받으며 / 여기를 만들어내는 모험을 / 오래 머금어 깊숙해진 / 부름을

책이 수많은 빈틈으로 이루어진 건축이라면 / 접힌 그늘만큼의 부피를 품어 안겠지

공중을 안쪽으로 당겨 앉히기 위해 / 호흡의 태엽이 조금씩 감기는 지금

엎질러진 의미들이 / 손가락을 딛고 날아간다 

 

속삭여봐 / 호수를 은빛으로 채점하는 물수제비처럼

사이에서 자라난 낱말들이 / 새로운 방향을 얻도록

무수히 깃털을 내어놓으며 / 틈새를 태어나게 하는 휘황으로

 

 

그냥 마음이 편안해진 시였다. 포근하다는 느낌을 받은 이유는 아마 ‘새’라는 단어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은근히 바닥을 딛고 날아가는 새가 떠올라서다.

 

도서 <흉터 쿠키>의 표지 그림과도 겹쳐 보인다. 표지 작품은 건축적 요소를 통한 공간성 위에 인물과 상황의 어긋난 이미지 등을 초현실적으로 재구성하는 채지민 작가의 작품인데, 서 있는 새와 달리, 날고 있는 그림자가 그려진 그림과 시가 꽤 잘 어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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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1부의 ‘흉터 쿠키’와 3부 마지막의 ‘도넛 구멍 속의 잠’은 내 개인적인 해석과 상상을 일게 했다.

 

동그란 쿠키 모양을 떼어낸 남은 납작한 반죽은 평면이지만, 동그랗고 퐁실퐁실한 도넛은 보다 입체적이다. 둘 모두 동그란 구멍(흉터)을 가졌지만, 결핍을 끌어안고 인정하게 된 시인은, 도넛처럼 더 깊고 분명한 상처와 흉터에도, 이제는 웃으며 넘기게 될 것이다 하는 것을 반영한 게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앞일을 모르는 존재로서 나는 미래를 만나기 위해 쓰며 나아간다. 그건 두렵고 어려운 일이지만, 오늘의 운세를 미리 적어보는 것처럼 신비롭고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110p)”, “계속 할 것이다. 모욕과 슬픔을 관통하며 걸어가 더 환한 생각들을 만나야지. 잊혀지고 싶지 않으니까. 어떤 이의 목소리는 듣는 자에게 스며들어 새롭게 나아갈 용기를 준다. 능란한 노래보다는 나지막하고 쓸쓸한 고백의 힘으로. (112p)”


시인은 시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시집을 넘기는 한 장 한 장, 그리고 마지막 에세이 부분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창작에 대한 고민과 고통, 믿음을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도.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려하고, 잘 해내고 싶은 것에 욕심을 가진 시인과 같은 사람들에게 조그맣게나마 힘을 보탠다. 흥미를 잃지 않길, 이제껏 잘 해냈듯 앞으로 나아가길, 작가와 (나를 포함한), 그와 닮은 이들을 응원한다.


“비슷한 각도로 기울었으면 좋겠다.” 말하는 작가의 바람이 내게 조금은 실현되지 않았나 싶다. 시집 <흉터 쿠키>로 따스해졌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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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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