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매번 바뀌는 트렌드가 싫다면, 유행처럼 번지는 '놀이'의 행위가 어색하다면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7.3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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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거짓말도 '거짓된 것'이라, 차라리 침묵을 택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 중 수줍음이 많아 말수가 적은 사람들도 있지만,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할까 염려되어 자연스럽게 침묵을 택하는 이들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가짜, 허구 등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참된 것, 진실한 것을 추구하기에 올곧고 한결같은 성정으로 주변 사람들을 든든하게 지켜주지만, 한편으로는 융통성이라고는 없어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뭔가 '꾸며서' 하는 것을 영 어색해 하는데, 작게는 인사치레에서도 느껴진다. 한국인이라면 흔히 하는 인사, "나중에 밥 한번 먹어요"라고 헤어질 때 말하는 인사말도 쉽게 하지 못한다. 언젠가 꼭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지금은 많이 내려놓았지만, 사실 나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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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이유



이런 소나무 같은 성향의 사람들은 따라서, 유행이 금세금세 바뀌는 현 세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요즘 애들 쓰는 말을 알아야 하고, 유행하는 릴스를 따라야 하며, 여러 개의 자아를 전시해야 한다. 아이러니하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드는데 MZ 세대만이 유일한 소비자인 것 마냥 마케팅을 하고, 타의에 의해 '꼰대'라고 부정적 호명을 받은 이들은 젊어 보이기 위해 트렌드 공부를 열심히 한다.

 

무언가 진실을 배제한 채, 가짜로 도배된 세상에 자연 거북함을 느낀다. 부자연스러운 것, 인위적인 것에 별로 동조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 이런 소나무 취향의 사람들이, 정형화된 틀을 깨고 혁신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예술'을 사랑한다. 아이러니하다.

 

현대미술은 부자연스러운 것 투성이고 연극, 영화, 음악, 조각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난해함을 자랑하지만, 해서 '트렌드'를 주도하기도 한다. 지루함을 못 참고 예측 불가능한 (하지만 안전한) 새로운 것에 이끌리는 인간 특성으로 인해, 예술은 '트렌디함', '힙함'의 선봉장을 때때로 맏는다.

 

최소한의 진실을 까발리는 탓도 있지만, 우리가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는 아마도 세상에 필요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질문의 답이 아무리 급진적이어도, 진실됨을 표현하는 예술이라면 충분히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예술은 다른 목적 (가령 '돈')을 위해 다른 것인 양 꾸며, 사람 속이는 짓은 하지 않으니까. 최소한 '거짓말'은 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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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요즘은 '돈'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 애초에 속이지 않고 (뒷광고 하지 않고)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예술의 목적이 '돈'을 향해도 의미와 재미가 있는 무엇을, 사람들은 기꺼이 향유한다. 따라서 더이상 '돈'도 거짓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 무엇이 '진짜'인지도 알 수 없다. 뭐가 먼저고, 나중인지 알 수 없으니까. 먼저 만들어졌다고 '진짜'도 아니고, 나중에 생겼다고 '진짜'가 아닌 것은 아니다. '최초'의 밈이란 건 없다. 많은 것들이 무한 복제되고 변형된다. 짤은 돌고, 리믹스된다.

 

사회적 관계에서도 정보의 유무의 격차로 계급이 발생하지 않는다. 누가 연예인이고 누가 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같이 즐기고, 같이 소비한다. 소위 '놀이'를 하는 셈이다.

 

 

 

'문화예술'과 '놀이'의 공통점 : 유희를 동반하는 역할극 혹은 의식



이 '놀이'라는 것은 '유희(amusement)'를 동반한다. 유희, 오락은 문화예술의 기본 속성이기도 하다.

 

그럼 '놀이'는 '가짜'인가, '진짜'인가?


'놀이(play)'라고 하면은 어린 시절 많이 했던 '역할극'을 떠올릴 수 있다. 인형에 역할과 이름을 붙이고 가족놀이를 하고, 마술사, 사냥꾼 등의 직책을 이름붙이고 전쟁놀이를 하기도 한다. 이는 확실히 '가짜'다. 가상의 세계이고 가짜임을 알고 우리는 놀이를 진행한다.

 

'의식(ritual)'도 비슷하다. 제례 의식을 진행할 때, 우리는 '진짜'가 아님을 인지하고 있다. 실제 조상님의 혼령이 오든 오지 않든, 조상님이 오셔서 맛있게 제삿밥 잡수기를 바라며 절을 올리고 가족의 평안을 비는 일종의 '놀이'를 한다. 어린 마음에는 제사가 마치 놀이 같았으니, 재미있었다고 말한다면 유희를 동반한 '의식'도 '놀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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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진짜와 의미가 없어 보이는 '놀이'를 나는 왜 어색해 할까? 단순 진실되지 않아서?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재미'도 매우 중요하다. 재미와 의미를 다 얻고 싶은 마음은 진지충인 나에게도 해당된다. 그러면 과연 이 감정의 배경은 무엇인지. 사회에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트렌드를 쫓다가는, 가랑이 찢어질 것 같아서. '가짜'와 '진짜' 때문에, 내가 트렌드가 의미없다고 생각하는지 고민해봤다.

 

*

 

너무 빨리 변화하는 '속도'의 문제일까? 아니면 절대적 '기준'이 사라진 세상에서 갈피를 못 잡는 '나'의 문제인 것일까? 혹은 세계를 대하는 사고방식 자체를 개조해야 할 때가 온 걸까?

 

최근까지만 해도 정보의 유무로 계급이 나뉘고, 물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당연한' 이치처럼 정보는 있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흘렀다. 하지만 지금은 순서가 없다. 물이 흐르는 게 아니라, 물방울이 흩어져 있는 무중력 상태이다. 떠다니는 물방울을 수집하고 싶은 욕구가 들지만 이제는 소용이 없다. 오히려 다가올 미래에는, 물방울 사이를 유영하는 '놀이'를 즐기기만 하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놀이'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앞으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이 '놀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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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2022 국립정동극장_세실 창작ing 연극 <카사노바> 프로그램북

 

 

 

역할극과 의식을 동반하는 예술 장르 : 연극, 에서 '놀이'의 의미를 찾다.



아이러니하게, 나는 이 답을 역시나 예술에서 찾았다. '의식'이자, '놀이'이고 '유희'이기도 한 예술. 2022 국립정동극장 세실 창작ing 연극 <카사노바>를 관람한 이후의 생각의 소용돌이에 이끌려 오늘 오피니언까지 작성하게 되었다.

 

평소 스크린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연극'이라는 장르는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연극적이다=부자연스럽고, 꾸밈이 있다. 과장되다. 꾸미는 '행위'는 곧 '의식'이다. 현실과 단절시키고,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 '의식'이다. 내가 하고 싶은 '놀이'는 이러한 '의식'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이에 관한 내용은, 다음 오피니언을 통해 더 자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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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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