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인의 언어와 만난 사람들 [영화]

<헤어질 결심>과 <친절한 금자씨>
글 입력 2022.07.2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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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 특유의 디테일 때문인지, 참 짚어볼 부분이 많은 영화다. 산과 바다, 쓸데없이 아름다운 경찰서, 재미있는 카메라 각도 등.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서래의 중국어와 통역 앱이다. 관람객으로서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지 않은가. 자막도 없이 중국어로 흘러나오는 대사를 뒤늦게 통역 앱에 의존해서 이해해야 한다니. 박찬욱 감독은 이것을 ‘관람객이 정보를 능동적으로 결합해야 하는 경험’이라고 했다.


참 새롭지만, 생각해보면 박찬욱 감독은 이전에도 외국어로 관람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캐릭터를 내놓은 적이 있다. 바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와 제니다.


 


경계에서 합쳐지는 언어


 

<친절한 금자씨>를 기억하는가.

 

끔찍한 범죄자인 동시에 교도소의 친절한 마녀였던 이금자. 금자는 영어를 공부했다. 제니를 만나기 위해. 제니는 호주로 입양 보낸 금자의 딸이다. 금자는 제니와 제니의 양부모에게 투박한 발음의 영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딸을 만나고 싶어 호주에 왔다는 내용을 열심히 설명한다.

 

우리는 여기서 영어에 드러난 금자 특유의 억양(청각 정보)과 자막(시각 정보)을 결합해, 자연스럽게 ‘금자의 말’을 한국어로 듣게 된다. 분명 금자는 영어로 말하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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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헤어질 결심>과 닮은 데가 있다. 서래는 자신이 한국어로 정확히 전달할 수 없는 말을 통역 앱에 쏟아붓고, 통역 앱의 딱딱한 목소리에 맞춰 자신이 했던 눈짓과 몸짓을 반복한다.

 

서래에게는 언어가 부족하고, 통역 앱은 비언어적 표현과 반언어적 표현이 부족하다. 중국어를 모르는 우리는 당연히 서래가 어떤 단어에 힘을 주고 어떤 악센트를 넣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시간차로 제공되는 정보를 덧씌워 서래의 언어를 짐작할 뿐이다. 해준 역시도 그랬을 것이고.


<친절한 금자씨>는 이런 연출을 한 번 더 사용한다. 복수를 앞둔 금자가 백 선생의 통역을 빌려 제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할 때. 물론 우리는 한국어로 전하는 금자의 진심을 알아들을 수 있지만, 제니는 금자의 표정과 말투에 백 선생의 영어를 덧씌워 이해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독해하는 언어는 어쩔 수 없이 완벽하지 않고 경계에 걸쳐 있다. <헤어질 결심>의 서래는 중국어와 한국어에,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는 영어와 한국어의 경계에서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경계의 언어를 알아듣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해준과 제니가 서래와 금자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그런 능동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선택하는, 타인의 언어


 

외국어를 이용한 재미있는 장면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언어를 선택하는 장면이었다.


제니가 느닷없이 호주로 날아와 자신의 옆에 누운 금자에게 ‘엄마’가 한국어로 무엇인지 묻는 장면이 있다. 금자는 ‘엄마’라는 호칭을 알려주는 대신, ‘금자 씨’라고 대답한다. 그 뒤로 제니는 금자를 ‘금자 씨’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것을 ‘금자 씨’로 듣지만, 사실 제니에게는 ‘엄마’라는 뜻이다. 제니는 금자에게 ‘엄마’라고 부르고 싶어 한다. 제니는 왜 자신이 아는 단어인 ‘mom’이 아닌 한국어를 굳이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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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자는 ‘mom’이라는 말을 이해한다.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 사전에서 찾아봤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란, 항상 머릿속에서 모국어로 바꿔야 하는 말이다.

 

상대가 가진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것이 정확한지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때문에 타인의 언어로 말하는 것은, 나의 언어가 의심의 장막을 걷어내고 직관적으로 상대의 심장에 가닿기를 바라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제니에게 중요했던 것은 금자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제니에게는 금자의 심장에 ‘엄마’라는 말이 닿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후 금자는 제니의 편지를 발견하고 빼곡히 적힌 영어를 사전에 하나하나 찾아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는 제니의 마음을 해석한다. 그리고 그 말을 기억해뒀다가 제니에게 ‘I’m sorry.’라고 세 번 말한다. 마찬가지로 금자에게 중요한 것은 제니의 심장에 사과하는 것이다.

 

제니가 익숙하지 않은 ‘미안해’라는 말을 의심해볼 여지 없이 자신의 사과를 심장으로 듣기를 바라기에, 금자는 제니의 언어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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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의 서래는 그렇게 언어를 선택할 여지가 없다. 주변 사람과 소통하려면 무조건 한국어를 구사해야만 하니까. 그런데 딱 한 번, 해준이 중국어를 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서래에게 ‘예쁘다’고 말할 때다. 서래는 해준에게 자신이 예쁜지를 묻더니, ‘중국어로 해달라’고 중국어로 말한다. 해준은 그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그 말을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중국어로 서래에게 예쁘다고 말한다.


서래는 ‘예쁘다’ 정도의 기본적인 말을 모를 정도로 한국어에 서툴지 않다. 그래도 굳이 예쁘다는 말은 중국어로 하기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서래에게 아직 한국어는 공기 같은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한국어란 공기 그 자체다. 생활이고 습관인 언어다. 하지만 서래에게는 아직 한국어란 공부가 필요한 언어다.

 

서래는 ‘예쁘다’는 말을 심장으로 듣고 싶어 한다. 자신이 공기처럼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의심의 장막 없이 사랑의 언어를 듣기를 원한다.

 

그런 요구가 떨어졌을 때 재깍 중국어로 예쁘다는 소리가 나오는 해준은 또 얼마나 서래를 생각했겠는가. 언젠가 서래의 심장에 ‘예쁘다’는 말을 들려주기 위해 그 말을 미리 공부해뒀다는 것일테니.


돌이켜보면, 해준은 항상 서래의 심장 가까운 곳에 말하고 싶어 했다. 서래는 ‘부검’이나 ‘방수’ 같은 말을 아주 이해 못하지는 않는다. 시간을 좀 들여서 사전만 찾아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해준은 서래에게 항상 쉬운 말로 하려 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말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곧장 풀어 설명한다.

 

그런 해준이 최초로 풀어서 설명하지 않은 때가 ‘붕괴’를 선언하는 때였다.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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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용을 숨길 수는 있어도 선택하는 단어나 표현 방법에서 어쩔 수 없이 많은 것이 드러난다. 그건 어쩔 수 없이 뛰는 심장이나 죽일 수 없는 눈빛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를 통해, 은밀하게 사랑의 정보를 읽을 수 있다.

 

영화 내내 금자와 제니, 해준과 서래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이 드러나지만 그것을 다 제외하고도, 그들이 최대한 상대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각자의 언어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우리는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사려 깊은, 사랑의 의사소통을 또 한 번 볼 수 있을까. 자칭 ‘로맨틱 코미디’ 감독이라는 박찬욱 감독의 다음 ‘로코’가 열렬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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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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