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짜 나의 모습은 어디에? - 친밀한 이방인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7.0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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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의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은 거짓말로 자신의 인생을 꾸민 여자 '이유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거짓말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보다 나은, 자신이 꿈꾸는 대상의 인생을 훔치기도 했다. 이유미가 마지막으로 훔쳤던 인생의 실제 주인(?)이 그 사실을 알고, 이유미의 일기장을 추적하며 소설은 전개된다.


일기장을 통해 '이유미, 이안나, 이유상, 엠..'이 되어야 했던 그 여자의 삶을 따라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녀의 아니 어쩌면 그의 일기장을 다 읽어도 속내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이유미가 대체 왜 거짓말을 했을까 시종일관 궁금하게 만들지만, 그 이유는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일기장의 내용마저도 100% 진실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쿠팡 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에서는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텍스트로 표현되는 모든 것은 필터링을 거친 결과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다 볼 수 없기 때문에, 눈으로 보는 과정에서 한 번 필터링을 거치게 되고, 그걸 해석하고 글로 쓰는 과정에서는 여러 번의 필터링을 거치게 된다.

 

따라서, 스스로가 자신을 보고 쓰는 일기도 진실이 될 수 없다. 오로지 읽는 사람이 나 자신뿐이라 하더라도, 내가 나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나에게 타자가 된다. 즉, 일기 속에 스스로가 기록한 것도 타자화된 삶이다. 온전한 나의 인생이 아닌 것이다. 내가 나를 그렇게 생각해서 일기에 쓴다면 그게 되는 것이다. 설사 그게 거짓이라도.

 

그렇기 때문에 소설 속 이유미의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모호하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이유미의 행적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죽하면 저렇게까지 할까, 연민의 감정이 들기도 하고, 거짓되게 살아가는 이유미의 이야기를 보며 묘하게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교차되어 나오는 이 소설의 화자도 일기장을 읽으며 자신의 인생을 설명하지만, 독자인 우리는 여전히 그녀의 삶을 알 수 없다. 화자의 이름도 나왔는지 아닌지 가물가물하다. 이 소설에서 완벽하게 알 수 있는 누군가의 삶은 없다. 누군가에 의해 전해지는 이야기, '타자화된 인생'만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 정한아, <친밀한 이방인>

 

 

우리는 거짓말을 왜 하는가. 인간은 모두 살아가면서 거짓말을 한다. 이유미가 거짓말을 하는 과정을 찬찬히 읽어 보면, 불만족스러운 자신의 삶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다가가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을 만들어보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수많은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다. 어느 순간 내가 보는 내 삶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 자신마저도 사실은 이방인이나 마찬가지다. 즉, '친밀한 이방인'이다.

 

내가 나를 바라볼 때 나는 곧 타자가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타인이 원하는 나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실상은 '사회가 원하는' 개인의 모습이다. 이유미가 거짓된 인생을 살아가게 된 그 시작점은 부모님에게 대학을 합격했다는 사소한(?) 거짓말이었다. 명문대에 진학하고 졸업하는 인생은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삶이다. 스스로가 '명문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다 하더라도, 이는 결국 사회의 질서와 분위기에서 발현된 것이다.

 

이유미는 거짓된 인생을 살아가며 '따뜻하고, 친절하고, 자상했으며, 화려하지만 겸손하고 여성스러웠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할 때 이유미는 떠날 채비를 했고, 곁에 있던 남성들은 모두 그녀에게 실망했다. 그리고 이유미는 생각한다, 그들이 이유미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 실망을 했을지, 아니면 원하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점'에 실망을 한 것인지.


그리고 모든 것을 잃고 지하의 세계에서 겨우 삶을 연명하던 이유미는 자신의 성별마저 바꾸어버린다. 짧게 머리를 자르고, 발걸음을 바꾸고 목소리를 바꾼 뒤, 이름도 '이유상'으로 바꾼다. 이유상이라는 이름의 남자로 살아가는 것도 잠시, 그는 사람들로부터 홀연히 사라진다.

 

이유미는 어쩌면 모든 족쇄를 벗어던진 삶을 꽤 만족스럽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회가 원하는 여성성도, 그리고 사회가 바라보는 어떠한 남자의 모습도 아닌, 진짜 본인을 찾아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친밀한 이방인이 아닌, 친밀한 '나'를 찾고 있을 것이다. 이유미의 결말은 이유미와 별다를 바 없이 거짓으로 점철된 우리가 그 거짓을 한꺼풀 벗고,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이다.


드라마 <안나> 속 유미는 원작과는 조금 다르게 그려진다. 드라마 속 이유미는 거짓된 삶에서 벗어나 어떻게 온전한 자신을 찾아갈 지 궁금하다. (아직 마지막화를 보지 않았다.) 소설 <친밀한 이방인>과 드라마 <안나>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두 작품 모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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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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