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불멸의 예술

조각 안에 담긴 권진규의 영혼
글 입력 2022.06.2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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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건 절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만물은 시간을 거스를 수 없이 변하고 어느새 소멸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은 ‘카(ka)’라 하는 생명의 힘을 믿었다. 육체가 사라져도 영혼만큼은 영원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필자도 예술 작품에 ‘카(ka)’가 있다고 믿는다. 작가가 죽어서도 작가의 숨, 손길, 치열한 사유는 작품 안에 그대로 남아 그의 영혼이 작품에 고이 담겨 있다.

 

권진규의 작품에 '카(ka)'가 있었다. 그는 “모델의 내적 세계가 투영되려면  인간적으로 모르는 외부 모델을 쓸 수 없으며 모델+작가=작품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작품을 제작하면서 본인은 물론이고 물체의 본질에도 다가가야 함을 뜻한다. 작가와 모델 두 가지 세계의 내면에 침잠하여 제작한 권진규의 조각품엔 어떤 영혼이 담겼으며, 이 영혼이 왜 불멸한 것인지 소개한다.

 

 


수행자 권진규, 응축된 정신성


  

1922년 함흥에서 태어난 권진규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흙을 만지기 좋아했고 손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무사시노 미술학교에서 일본 조각계의 지도적인 인물이었던 시미즈에게 조각을 배웠고, 시미즈는 부르델의 제자였기 때문에 권진규 또한 부르델에 깊이 매료되어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부르델은 석고 틀에서 흙을 제거할 때 생기는 선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두었는데, 권진규 역시 매끈한 표면 처리보다 투박한 흙의 느낌을 작품에서 구현했다.

 

여성 흉상이 권진규의 대표작으로 유명하나, 그는 동물상, 여성 두상, 여성상, 자소상, 부조를 비롯해 불상, 탈, 가면, 기물, 잡상, 유화, 드로잉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제작했다. 그는 일관되게 눈에 보이는 사물 너머 존재하는 본질을 추구했고, 이를 위해 동양과 서양의 고대 유산을 참조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자신만의 강건하고 응축된 형태를  통해 영원성을 구현했다.


 
‘진흙을 씌워서 나의 노실에 화장하면 그 어느 것은 회개 승화하여 천사처럼 나타나는 실존을 나는 어루만진다.’
 


권진규가 <조선일보>에 기재한 시의 한 구절이다. ‘노실의  천사’는 권진규가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이상, 즉 승화된 존재 순수한 정신적인 실체로 볼 수 있다고 서울 시립미술관은 언급했다.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이상이 무엇일지 생각하며 전시장을 들어섰다. 전시 초입에 불상 하나가 서 있었다. 종교 공간에 온 듯한 분위기가 풍겨왔다. 전시는 권진규가 평생을 불교와 함께해 왔다는 점에 착안하여  시기별로 ‘입산’, ‘수행’, ‘피안’으로 전개했다. 권진규가 자신만의 예술적 세계를 구현하는 과정을 세속적 삶에서 떠나 고독한 미술의 세계로 입문하여 평생을 수행하듯 작업에 임한 수행자로 바라본 것이다.

 

 

 

가사를 입은 자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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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를 입은 자소상>, 1969-70

테라코타, 49x23x30cm, 고려대학교박물관



권진규는 테라코타, 나무, 석고, 건칠 등 다양한 재료로 자신의 모습을 다수 제작했다. 특히 <가사를 입은 자소상>(1969-70)은 자신을 승려로 형상화한 모습으로 테라코타로 제작한 작품이다. 테라코타는 흙을 반죽하여 형태를 만든 뒤, 속을 파고, 다듬은 후 가마에 구워 만드는 소조 기법이다. 잘 변하지 않는 흙으로 구워낸 권진규의 조각은 어떤 성질과도 섞이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다. 그뿐만 아니라 표면이 투박하지만 요란함 없이 단정한 인상을 주는 조각은 표정 자체에서도 어떤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살짝 위로 들어 지난 내적 갈등, 고통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초월한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권진규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선택은 그저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를 향해 바라보는 평화로운 모습의 자소상과 정신성을 중요하게 여겼던 그를 미루어 보면 더욱더 깊은 몰입에 다다르기 위해 한층 더 고귀한 곳으로 간 선택이 아닐지 생각한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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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1970

건칠, 130x120x31cm, 개인 소장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1970) 작품과 권진규가 닮아 보인다. 그리스도는 그를 못마땅히 여긴 이들로부터 견딤이 있었다. 권진규도 냉담한 대중 평가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만 고뇌에 잠긴 조각상의 모습은 외부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에 존재하는 영혼과의 대화에 집중한 권진규의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보통 표면을 매끈하게 마무리하는 기존의 건칠과 달리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작품은 삼베의 매우 거친 느낌이 살아있다. 거친 표면은 그가 삶에 대한  숱한 고민들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삶과 예술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의심을 삼키고, 다시 일어서서 그가 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노실의 천사’를 묵묵히 조각했을지 수행자로서의 권진규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영혼 불멸의 예술


 

1965년 권진규는 서울의 신문회관에서 제1회 개인전을 가졌지만 뛰어난 감식가를 제외하고는 화랑계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럼에도 동경의 니혼바시 화랑에서 제2회 개인전을 개최했고 일본 미술계에서는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해외전시, 동상 제작 등 바라던 바들이 계속 무산되면서 좌절한 그는 아틀리에 가마를 부수고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자주 했고, 결국 1973년 그는 아틀리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는 대중의 몰이해와 부딪히더라도 지속적으로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구축하려 했다. 전시에서 권진규의 드로잉 북이 다수 놓여 있었는데, 작품을 제작하기 전까지 그의 고뇌와  여러 레퍼런스를 참고한 시도를 살펴볼 수 있었다. 비록 권진규의 육체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영혼은 작품 속에 살아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자기 신념을 지켜내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한 그의 혼이 작품에 남았다. 아울러 나를 비롯해 그의 작품과 교감한 사람들은 그의 삶에 대해 묵상하고 그의 영혼을 가슴속 깊이 새겼다. 누군가의 정신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다는 것은 또 다른 사유를 만들어 내는 양분이 된다. 덕분에 살아가는 방식 여러 가지 중 한 가지를 배우고, 더 넓은 식견으로 세상을 바라볼 기회를 가졌다. 이렇듯 삶이 중첩되고 대물림된다면, 권진규의 영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강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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