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죽음 후에 남겨진 이들을 위한 기록 - 도서 ‘그녀를 그리다’

누군가가 그리울 때는 이 시를 펼쳐보세요
글 입력 2022.06.0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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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가깝던 존재를 잃어버렸다. 그 존재는 둘도 없는 오랜 친구이자, 사랑하던 연인이자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던 아내이다. 그 슬픔을 어찌 한 편의 시로,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그 한 권의 책에 담긴 슬픔의 무게가 너무나 클 것 같아 사실 처음에는 이 책을 접하기 두려웠던 것 같다.


‘그녀를 그리다’를 처음 접할 때 가졌던 그 우려는 결코 기우가 아니었다. 무심코 사람 많은 카페에서 이 책을 꺼냈던 나는 얼마 안가 책장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주책 맞게 엉엉 우는 모습을 카페 안의 모르는 이들에게 보일 수는 없었다. 결국 밖에서 펼쳐 볼 수 없었기에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내게 이 책은 일주일가량 일종의 자장가가 되어 주었다.


나는 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건 비단 나의 죽음 뿐 만이 아니라 내게 가깝고 소중한 존재들에 대한 죽음에까지 이르른다. 그렇기에 아직 나는 상실을 경험해 본적은 없지만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일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사실 그 생각들이 때로는 너무나 아프고 두려워 회피 한 적도 많았다. 그런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고 그가 없는 삶을 기록한 저자의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따스한 위로가 되어 다가왔다.

 

 

 

그가 남기고 간 흔적



저자는 아내의 흔적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편에 걸쳐 추억한다. 그것은 때로 이불 장 속의 압축팩이기도 하고, 설거지거리에 비쳐 드는 햇살이기도 하며 쑥갓과 찔레, 능소화이기도 하다. 아내가 있던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았고,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그 사소한 흔적들은 아내가 떠난 후 때로는 따듯한 위안이 되기도, 또 때로는 묵직한 슬픔을 불러내기도 한다.

 

 

그 흔적들에 마음이 따듯해지다가도

때론 겨울 바람이 불어온 것처럼

마음이 움츠러들기도 한다.

 

- 그녀를 그리다 ‘겨울 바람의 꼬리’ 中

 

 

떠난 이가 남긴 흔적, 그것은 어쩌면 그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불러낼 수 있는 유일한 구원줄이 되어 주기도 하지만, 그 기억 속 추억을 다시는 재현할 수 없다는 사실에 끝없는 절망을 불러 내기도 한다.

 

저자가 아내의 손길이 닿은 김치를, 찔레를 자신의 손으로 정리할 때의 마음을 나는 결코 쉽게 헤아릴 수 없다. 언젠가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 장면을 상상하면 여지 없이 눈물부터 나고 보는 것이다.

 

 

그냥 거기 둘 걸, 

정리하지 말 걸,

자꾸만 후회가 되었습니다.

 

- 그녀를 그리다 ‘꾸역꾸역’ 中

 

 

여기 있는 당신의 찔레는 

창가까지 올라와 집안을 들여다 보고 있어.

그리고 찔레는 가시까지 있잖아.

그래서 정리하고 싶었어.

그래도 미안해, 미안해.

 

- 그녀를 그리다 ‘그래도 미안해’ 中

 

 

저자는 아내가 담가놓은 김치를 꺼내 먹으면서 꾸역꾸역 먹는다는 의미를 깨달았고, 아내와 함께 화단에 심은 찔레 가지를 잘라내면서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언뜻 보면 그는 아내의 흔적을 정리하는 것을 후회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리의 과정은 필요하다. 남겨진 이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흘러가야 한다. 그렇기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를 정리하지 않으면 물길은 다시 흐를 수 없다. 그리하여 아내의 흔적을 느리지만 찬찬히 정리해 나가는 저자의 강인한 마음가짐이 내게 너무나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이다.

 

 

 

남겨진 이들의 몫



어찌보면 죽음은 당사자에게도 가혹하지만, 그들 곁에 남겨진 이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소중한 이들이 숨쉬고 살아가지 않는 세상은 더 이상 그들이 있던 이전의 세상과 같은 수 없다. 같은 것을 듣고 보아도 그것을 소중한 이와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사무치게 다가와 더 이상 일상의 모든 것들에 의미를 둘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앞서가던 당신을 잃어버린 나는

길조차 잃어버려 자꾸만 마트 안을 헤매고 있습니다.

 

- 그녀를 그리다 ‘마트에서 길을 잃다’ 中

 

 

나는 다시 땅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김을 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 그녀를 그리다 ‘쑥갓’ 中

 

 

저자는 아내를 잃고 나서 하루아침에 어린 아이가 된 듯한 자신을 발견한다. 일상 속에서 너무나 쉽게 하던 일들이 새삼 벅차게 다가오고, 어제까지 익숙했던 세상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쩌면 그가 쌓아온 일상은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너무나 당연했던 그의 존재가 사라진 후, 혼자 남겨진 세상은 결코 녹록치 않은 곳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남겨진 이들이 감당해야할 몫이다.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는 일상에서 다시 초심의 마음으로 돌아가 의미를 찾아내고, 익숙해지는 일. 슬픔이라는 감정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한없이 울다가도 그 슬픔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며 다시금 일상으로 복귀하는 일.

 

저자는 어쩌면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며 작은 위로를 건낸다.

 

 

그 시간들도 그렇게 지나가고 

살다 보니 살아졌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 그녀를 그리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 中

 

 

시간이 그만큼 흐르는 동안

내 삶 속 당신의 흔적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중략)


이제 그냥 멀리 있는 친구,

잘 지내려니 생각하며 살려고 한다.


- 그녀를 그리다 '그녀를 그리다, 마지막' 中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존재의 죽음에 어떻게 무뎌지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은, 시간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어찌되었던 남겨진 이들의 삶은 흘러갈 것이고,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이전 같을 수 없겠지만 새로운 추억과 일상을 쌓아갈 것이다. 그것들이 이전의 추억들을 꺼내 볼 때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회피해오기만 했던 ‘죽음’이라는 존재를 조금쯤은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인간은 죽음을 이길 수 없다. 언젠가 나도 그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물론 슬픔에 무너지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이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슬픔이 언젠가는 희미해질 것임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나는,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살아갈 것이다.

 

 

 

컬처리스트 명함 (1).jpg

 

 

[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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