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라앉은 정서 속에 남은 것은 -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예능]

추앙과 해방 그리고 구자경을 뺀다면?
글 입력 2022.06.0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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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지 2달 동안 내 일상의 소소한 낙은 1시간 남짓 걸리는 퇴근 시간동안 드라마를 보는 것이었다. 본래 난 드라마와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방영 시간’이란 시간적 제약이 주는 갑갑함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TV방영 드라마를 안 봤는데, 다행히 OTT 서비스 덕에 TV 드라마와 친해지는 중이다.

 

<우리들의 블루스>와 <나의 해방일지>는 주말 밤 연달아 방영해서 일주일의 마침표를 찍는 느낌으로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다. 일부러 하루 분량은 월요일로 미루기도 한다. 지난한 퇴근 시간에 넷플릭스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두 드라마는 OTT 오리지널 드라마를 칭찬한 게 민망할 정도로 완성도도 높고 매력적인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번 글의 주인공은 5월의 마지막 주말에 끝맺음한 <나의 해방일지>다. 박해영 작가의 전작인 <나의 아저씨>를 감명 깊게 본 적이 있고, 나 <멜로가 체질>에서 감초 같은 역할로 시선을 끈 손석구가 출연한다고 해 매회 놓치지 않고 봤다. 여러모로 이 드라마가 화제의 중심에 있는 건, 손석구 역의 ‘구 씨’ 덕이 클 것이다.

 

<나의 해방일지>는 매력적인 드라마다. 등장인물 각자의 사연이 흥미롭고 묵직하다. 현실의 무게를 추로 달아 가늠하듯, 사회나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잘 포착했었다. 적어도 중반부까지는 말이다. <나의 해방일지>를 인생 드라마로 꼽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난 이 드라마를 작가의 전작인 <나의 아저씨>만큼 감명 깊게 보진 못했다. 드라마를 손에 쥐고 모래를 씻어내듯 행군다면 ‘구 씨’라는 인물만 남지 않을까 싶은 정도로 말이다.

 

 

 

추앙과 해방



드라마 초반부, ‘추앙’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부터 고개를 갸우뚱했다. 미정이 구 씨에게 ‘나를 추앙해라’라고 말하는데, 추앙은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가 아니지 않은가. 이 드라마에서 추앙은 사랑이나 애정과는 다른 ‘응원’의 개념으로 쓰인다. 제목인 해방을 위한 전제조건과도 같다. 그렇다면 추앙과 해방을 풀어나가는 주체는 미정과 구 씨일 것이다.

 

난 추앙이란 말이 나왔을 때, <나의 아저씨> 속 이선균과 아이유의 관계 정도이겠거니 생각했다.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존중하는 그런 관계. 근데 드라마는 스스로 ‘추앙’과 ‘사랑’의 균형을 잃고 마구 내달린다. 그것도 구 씨라는 캐릭터를 아주 매력적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그래서 그냥 추앙은 사랑의 동의어이겠거니, 생각했다.

 

문제는 미정과 구씨가 극도로 평면적이라 ‘추앙을 통한 해방’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 구 씨라는 캐릭터가 가진 결점은 미정의 대사로 보완된다. 미정과 구 씨는 철저히 ‘스타일’로 관계가 묘사된다. 왜 스타일이란 표현을 썼는가 하면, 박해영 작가의 대본이 현실의 말보단 소설의 문법을 빌리기 때문이다. 그게 매력이지만 유난히 미정과 구 씨의 대화는 문어적인 대화가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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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과 구 씨라는 인물 자체가 무기력하고 우울감에 휩싸여있기 때문에 문어적으로 표현하는 게 효과적일 순 있다. 미정이란 인물은 놀라우리만큼 구 씨에게 자신이 어떤 인물인지 솔직히 말하기도 해서 복잡미묘한 대사들도 이해가 됐다. 이것도 전반부까진 유효했다. 추앙이란 말이 툭하니 나오고, 감정의 스파크도 없이 두 인물이 가까워진 게 그나마 이해될 수 있던 것도 문어적 표현 때문이었으니까.

 

근데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내내 두 인물은 본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시청자들은 말들에 파묻혀 끊임없이 추론하고, 두 인물의 감정을 헤아려야 한다. 산포 시의 밤거리가 구 씨의 오피스텔로 바뀌었을 뿐, 두 인물의 대화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미정과 구 씨가 변화할만한 커다란 계기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이쯤 되니 추앙은 심리상담인 것인가…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차라리 후반부를 두 인물의 행복한 행적을 짧게나마 보여줬다면, 진부하더라도 해방을 위한 과정이 납득이 되었을 텐데. <나의 해방일지>는 정서를 유지하기 위해 두 인물을 소비해버렸다.

 

 

 

드라마를 이끌어 간 건 구 씨도 아니고...



메인 주인공은 미정과 구 씨다. 근데 드라마를 천천히 뜯어보면, 극의 주요한 흐름 속에는 이민기 역의 염창희가 있다. 극의 모든 사건에는 창희가 있다. 구 씨를 형으로 생각하고, 기정의 연애사에도 간섭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세 남매 중 시청자가 물리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껴안고 있는 인물이다.

 

산포라는 배경도 창희가 있을 때 좀 더 다채로운 공간이 된다. 고향 친구들이 있고, 고지식한 아버지와의 이중적인 감정도 있으며 죽음을 목격한 공간임과 동시에 죽도록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곳이다. 미정과 구 씨의 관계가 ‘감정’으로 묘사된다면, 창희는 ‘사건’과 ‘상황’으로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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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둥둥 떠다니듯 은유가 가득한 대사들 속에서 창희의 대사만이 명확하게 콕콕 꽂힌다. 지지부진한 비유와 묘사보다 현장성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창희의 말들에서 ‘해방’의 실체감이 잘 느껴진다.

 

미정의 그것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밸런스의 문제다. 창희의 말들은 구어적이면서 문어적이다. 반면 미정은 정체 모를 감정의 양상을 은유로 표현한다. 그것도 정적인 상황을 관망하고, 추앙이란 키워드로 압축된 구 씨를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창희의 서사에도 개연성의 문제가 있다. 본 드라마는 개연성을 앞서 말한 ‘스타일’로 묻어가려고 하는데, 현아와의 러브라인을 제게 납득시켜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신다면 한 번만 설명해주셨으면. 거기다가 현아라는 인물은 드라마 서사를 위해 이용만 당하기만 했다. 어떤 완결성도, 끝맺음도 없이드라마가 끝까지 유지하려고 하는 ‘우울감’의 정서를 위해서 말이다.

 

 

 

드라마의 문법



이 드라마의 매력이자 문제점은 감정의 표현 방식이다. 세 남매가 내뱉는 대사들은 모두 각기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기정은 구질구질하고, 창희는 구차하며 미정은 감성적이다. 드라마가 주목하는 건 미정이다. 우울함과 무기력의 감성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미정과 구 씨를 전면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스타일’로만 소비되는 탓에 서사의 완결성에 구멍이 송송 나버렸다. 오히려 공을 들인 캐릭터는 창의 뿐이고.

 

<나의 해방일지>의 전반부는 판타지스러운 면이 있었다. 구 씨라는 신비스러운 인물과 산포가 가지는 목가적인 이미지 속에서 각 인물들의 고민이 부각됐다. 서울과 산포의 대비 속 인물들의 대사는 나름의 무게를 가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장면을 위해 소비되는 대사가 많아지면서 산포와 서울의 경계, 즉 판타지의 선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의 아저씨>와 비교할 수밖에 없다. <나의 아저씨>의 말들은 적어도 드라마의 언어에서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사용됐다. <나의 해방일지>는 대본집을 소설로 만들려고 한 것인지 모든 말들이 장황하고 길다. 드라마에서 인물과 인물이 진정으로 ‘대화’하는 장면이 잘 떠오르질 않는다. 기정이 하소연하거나 창희가 열불을 내며 일방적으로 말하거나. 애초에 구 씨와 미정은 대화를 했었던가.

 

말의 맛을 느끼게 하는 건 드라마에서 중요한 요소다. 상황과 설정은 배우가 연기해야 하지만,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사 속에서 서사가 쌓이는 법이다. <나의 해방일지>는 그러지 못했다. 정서를 만들기 위한 대사를 만들고, 대사를 쓰기 위해 장면을 만든다. 그러다 보니 인물들의 서사가 휘발성이 강할 수밖에. 드라마는 드라마의 문법이, 소설에는 소설만의 문법이 존재하는 것일 텐데 그 경계가 모호해지다 보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금 더 회차가 길었다면 차근차근 쌓아갈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원하는 맛은 다 있습니다



그래도 이 드라마의 인기가 비단 구 씨 때문만은 아니다. <나의 아저씨>가 가지고 있던 우울하고 무기력한 정서와 어렴풋한 희망에 대한 기대가 <나의 해방일지>에는 더욱 짙게 깔려있다. 박해영 작가의 전작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나의 해방일지>는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는 드라마다.

 

그러나 과연 드라마가 제시한 인물과 소재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는지는 의문이다. 해방클럽, 해방일지, 산포라는 공간과 추앙. 모두 <나의 해방일지>를 이루는 요소들인데, 개념만 존재할 뿐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가 없다. 향을 맡는다는 느낌으로 본다면 이만한 드라마가 없을 것 같긴 한데, <우리들의 블루스>가 내뿜는 생명력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공허해 보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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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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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읽는몽구스
    • <나의 해방일지>를 보는 내내 어딘가 편치않았고 엔딩은 더더욱 편치 않았는데, 종영 후에 쏟아지는 '추앙' 속에 이 리뷰를 발견했어요! 이 '편치않음'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만 편치않았던 것일까 궁금했는데 이 리뷰를 읽고 나니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네요. <나의 해방일지> 속 인물들은 끝없이 실존을 고민하는데, 정작 그 인물들이 '살아 움직였는가'에 있어서는 저 역시 의문부호를 남기지 않을 수 없었어요. 작가가 인물을 '장치'로서 '소비'했다는 평에 저도 전적으로 공감하고요. 꽤나 건조하게(그래서 날카롭게) 현실을 묘사하나, 그 속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의 관계 자체는 실체 없는 판타지 같은 - 그래서 각자의 '해방'을 갈구했던 인물들이 '추앙'을 통해 '환대'라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 결국 '스타일'의 개념어들만 공허하게 남은 건 아닌가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많은 대중에게 공명한 '해방', '추앙', '환대'의 화두를 던진 작가의 탁월함은 부인할 수가 없지만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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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볼이
    • 시작은 좋았어요. 근데 점점 짜집기한 예고에 기대하고 한주를 기다리면 또 계속 걷돌기만 하는 진행...그러다 남은 2회...시간은 없고 다 보여주긴 해야하는데...있어보이는 결말이여야하고..결국 매력남 구씨만 많은 여성들 맘속에 새긴듯!
      박해영 작가님~ 다음에 한번은! 아주 가볍게 우리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을 소재로 해서 시청자들이 많이 의미 해석하지 않고도 공감할 수 있는 작품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결말이 분명한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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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는황씨
    • 철학적인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주인공들은 어떤 정서, 어떤 처해진 상황을 상징하는 인물들이고 그러다보니 현실적인 개연성이 낮게 느껴질 수도 있죠. 저도 구씨와 미정의 사랑 같은 게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일까 의심이 들기도 하고 좀 판타지 같다는 느낌도 가졌어요. 그런데 저한테는 그런 철학적인 면들, 의미심장한 대사와 장면들이 와닿았어요. 개연성 있는 사랑을 묘사해도 그저 하나의 가상적인 사랑이지 않을까요?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그런 사랑은 많죠. 하지만 구씨와 미정이 하는 대사들, 그들이 처한 상황과 정서들은 보편적인 것으로 와닿았어요. 그들처럼 삶이 의미없게 느껴질 수가 있겠고, 탈출구를 찾을 수 있겠고, 누군가를 추앙하기로 결심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철학은 삶과 맞닿아 있죠. 현실에서 있을 법한 상황들만 묘사한다고 현실적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현실을
      좀 증류해서 엑기스로 만든 다음에 그 엑기스들을 연결시키고 전개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갈 수도 있죠. 저한테는 대사랑 장면들이 응축해 전달하는 그 추상적인 현실성들이 때때로 황홀했어요. 결국 보는 사람마다의 감상 차이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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