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지탱하는 사소함 [사람]

음악, 사진, 계절감, 나른함, 그리고 꽃.
글 입력 2022.05.2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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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모종의 이유로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를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생의 한 귀퉁이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기회에 나를 지탱하는 것들을 되새겨 볼까 한다.

 




 

음악 듣는 것을 취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삶과 음악은 밀접하다. 단지 소리를 차단하거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니다. 가사가 있는 음악에는 짧지만, 이야기와 세계관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여러 음악으로 이루어진 앨범은 어떨까. 같은 세계관 혹은 주제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앨범을 흐름대로 따라가며 들으면 여러 편의 단편 소설을 차례로 읽는 듯한 느낌도 든다.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설명만 보면 노래와 시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음악에는 수동성이 있다. 보통 콘텐츠를 소비할 때는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읽어 나가야 한다. 반면, 음악은 선율이 흘러가는 대로 이야기의 흐름이 귀에 꽂힌다.

 

바쁘고 무언가를 직접 해야 하는 일상 속에서 ‘그냥 듣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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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행복했던 날을 어떻게 기억할까. 일기가 될 수도, SNS에 올리는 게시물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사진에 감정을 담아 기억한다. 글로 기록하는 것보다 더 선명하고 생생한 분위기가 담긴다.

 

눈으로 보는 것과 카메라에 담기는 느낌이 다르기에 최대한 실제와 비슷하게 보정하려고 한다. 그렇게 사진을 감상하고 이리저리 보정하다 보면 그날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사진 한 장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이 묻어 나오는지, 감정을 담아 찍기 전까지는 몰랐다.


시작은 사소했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이 아쉬워서, 붙잡아놓고 싶어서 하나둘씩 찍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도 사람들은 길을 걷기에 바쁘다. 저마다의 목표가 있고 도착점이 있기 때문에 그럴 거다.

 

그 사이에서 날씨를 만끽하지 못하는 건 나에게 너무 슬픈 일이었다. 잠깐이지만 풍경을 똑바로 보고, 그 풍경을 프레임 안에 넣어 사진을 찍으면 순간이 영원히 남는다. 편하고 가볍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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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이 예민해서인지, 온도에 민감해서인지 둘 다 때문인지 계절감을 잘 느끼는 편이다.

 

계절이 바뀌면 따뜻한 햇볕, 나무와 흙, 축축한 물, 시원한 바람, 건조한 낙엽, 서늘하게 얼어붙는 공기에서 나는 향부터 다르게 느껴진다. 각 계절에 찍히는 사진의 분위기도 모두 다르다. 특히 가을과 겨울의 색감이 사진에 잘 드러나는데, 가을의 강한 주황빛 햇볕과 겨울의 하얀 배경이 대비되는 점이 매력적이다.


계절감을 느끼며 하릴없이 걷다 보면 잡생각이 씻겨나가고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계절이 흘러가듯이 나의 시간도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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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살고 싶다. 느지막이 일어나 창문을 열고 햇볕을 받으며 차를 마시는 것이 즐겁다. 나른함과 게으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일상에 여유를 가지는 일은 삶을 지탱하는 근본이다.

 

학생 때도, 지금도 일주일에 하루는 꼭 쉬는 날이 있어야 한다. 온전히 쉴 수 있는 하루는 자칫 지칠 수 있는 일상의 탈출구가 된다. 아무 용건 없이 카페에 가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늘어져 있는 시간이 좋다.


한산하고 어두운 분위기도 좋다. ‘쉬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분위기가 소중하다. 나른함이란 단어에 걸맞게 졸린 듯 졸리지 않은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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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스스로 주는 선물 중에 가장 기분 좋은 선물이다. 계절마다 볼 수 있는 종류가 다르기에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원하는 꽃을 고르고, 포장을 해서 집에 들어온다. 적당한 꽃병을 선택한 후에 크기에 맞게 손질해준다. 매일 물을 갈고 줄기 끝을 자르며 상태는 어떤지 확인한다. 나를 위한 선물을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손질하는 것은 나를 매일 들여다보고 다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예쁘고 생명력을 가진 물체와 함께 지내는 것은 기분이 좋다. 잠에서 깼을 때 꽃이 보이면 그냥 기분이 좋다. 손질하려고 금세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게 되는 것은 덤이다. 심지어 타인에게 선물해줄 때도 기분이 좋다. 내가 느낀 감정을 선물하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내 삶을 지탱하는 것들은 모두 사소하다. 일상과 가깝고, 늘 반복하는 행동과 느끼는 감정이다. 나를 지탱하는 한 귀퉁이가 무너진다면 다른 귀퉁이를 더 튼튼하게 세우면 된다. 또 다른 귀퉁이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 때가 온다면 미래의 내가 이 글을 떠올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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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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