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전시]

글 입력 2022.05.1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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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아스테카 :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에 다녀왔다. 영어식 표기인 아즈텍(Aztec)이라는 말로도 널리 알려진 아스테카(Azteca)는 마야, 잉카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의 3대 문명 중 하나다. 국내에는 대규모 인신공양과 식인 등 잔혹한 풍습을 가진 국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전시는 이런 시각이 올바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들의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유럽 정복자들에 의해 왜곡 및 과장되어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본 전시는 메소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이자, 매혹적인 문명을 일구어낸 아스테카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하여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독되어 온 아스테카 문명을 문화 상대주의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메소 아메리카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 나같이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도 차근차근 따라갈 수 있도록 친절하게 구성되어 있다.

 

 

 

1부 :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1부에서는 25t 무게의 석상 '태양의 돌'을 재현한 전시품을 중심으로 아스테카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소개한다. 본격적으로 전시를 관람하기에 앞서,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아스테카 문명을 이해하는 토대가 되는 태양 신화를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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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승리하려면 강력하고 활력이 넘쳐야 한다.

북쪽과 남쪽의 수많은 별과 싸워야 하고, 빛의 화살로 별과 어둠을 모두 쫓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태양을 먹여 살려야만 한다.

 

알폰소 카소, 『태양의 민족』, 1953년

 


신화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다섯 번째로 만들어진 '움직임의 태양'(Nahui-ollin)의 세계다. 이전에 네 개의 세계가 있었지만, 52년을 주기를 몇 번인가 되풀이하는 동안 돌풍이나 홍수 등으로 파괴되었다. 세계가 네 번째로 멸망한 후 신들은 누가 다음 태양이 될지 결정하는 회의를 열었다. 늙은 불의 신 '우에우에테오틀'이 불을 피웠고, 가난한 신 '나나우아친'과 부유한 신 '테쿠시스테카틀'이 차례로 뛰어들어 각각 태양과(토나티우)과 달이 되었다.

 

그러나 태양과 달은 하늘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이에 바람의 신 에카틀(케타코아틀)이 모든 신들의 배를 가르고 심장을 꺼내 비로소 태양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후 아스테카 사람들은 신들의 희생에 감사하고, 태양이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 제사를 올렸다. 이들에게 인신공양은 '태양을 먹여 살'리는 종교적인 행위다.

 

 

그날 밤 수호신 우이칠로포츠틀리께서 꿈에 나타나 말씀하셨다.

"돌 위에 쓰러진 적의 심장에서 자라난 멋진 선인장 위에 아름다운 독수리가 있는 곳을 찾으라. 그곳을 테노츠티틀란이라 하라."


디에고 두란, 『누에바에스파냐 원주민의 역사』, 1581년

 

 

이어서 전시는 메소 아메리카의 역사를 개괄하며 아스테카 문명의 시작을 짚어준다. 테노츠티틀란(Tenochtitlan)은 아즈텍 제국의 수도로, 현재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에 위치하고 있다. 멕시코 중앙 고원으로 이동한 아스테카(메시아)인들은 선인장 위에 앉은 독수리가 뱀을 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곳에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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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국기 중앙에 있는 국장이 바로 이 전설에 등장하는 선인장과 독수리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독수리는 '하늘에서 가장 전능한 동물로 태양의 움직임과 관련'있는 동물로, 수호신의 예언과 더불어 떠돌이 생활을 하던 아즈텍 민족이 중앙 고원의 새로운 지배가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우리나라에 단군 신화가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러한 건국 신화가 흥미로운 것은 자신들의 통치를 당연시하기 위해, 기존의 문화와 융합하는 방식으로 쓰인다는 점이다. 멕시코 중앙 고원에는 멸망한 고대 도시가 존재했는데, 여기에는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 케찰코아틀 신전 등 웅장한 유적이 여럿 남아있었다. 도시를 발견한 아즈텍인들은 나와틀어로 신들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테오티우아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테오티우아칸인의 문명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신화 속에 녹여냈다. 이처럼 아스테카인은 자신들보다 앞선 메소 아메리카의 문명을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문명을 만들어나갔다. 이를 고려했을 때 아스테카 태양 신화에 나오는 네 개의 태양은 단지 천체가 아니라 문명의 흥망성쇠를 은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부 : 아스테카의 자연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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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는 원주민이 그림문자로 기록한 고문서를 바탕으로 아스테카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아즈텍의 문화와 경제, 문자, 사회 구조 등을 간단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스테카에는 다양한 민족과 40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도시국가들이 있었다고 한다.

 

기초 경제 단위는 가족으로 남자는 대개 농사와 가구 제작, 건축에 종사했으며 여성은 주로 요리나 실잣기, 베 짜기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직물은 시장에서 물건을 교환하거나 귀족에게 공물로 납부하는 데 쓰였다. 현대적 개념의 화폐가 없었기 때문에 아스테카 사람들은 대신 카카오 씨앗이나 직물, 도끼날 등을 지불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농업이나 수공업을 바탕으로 한 상업 위주 경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왕과 귀족만이 카카오로 만든 '쇼콜라틀'이라는 음료를 마시거나 노동을 도울 가축이 거의 없어 노예들이 짐을 지고 날랐다는 얘기가 있는 걸 보면 계급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아스테카가 통치한 지역은 해안가부터 만년설로 덮인 화산에 이르기까지 지형과 기후대가 매우 다양했는데, 아스테카인들은 다채로운 자연환경을 아주 잘 활용했다. 용설란의 섬유로 직물을 짜고, 수액은 발효시켜 알코올 음료인 풀케를 만들었으며, 열매는 과일처럼, 줄기는 채소처럼 섭취한 것이 그 예다.  이들은 동식물에도 영혼이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자연을 신성시했다. 그 일례로 옥수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 옥수수의 여러 성장 단계에 해당하는 고유한 신이 존재했다는 내용이 재밌었다.


세계의 여러 문명은 농경과 함께 정착생활을 하며 시작됐다. 재배 식물에는 밀, 쌀, 보리 등 다양한 곡물이 포함되는데 그중에서도 옥수수는 지력 소모가 심해 화학 비료 없이 장기적으로 생산하기 힘든 식물이라고 나온다. 이를 일찍 파악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옥수수와 호박, 콩을 함께 심는 '세 자매'라고 불리는 농법을 이용했다. 콩은 질소를 배출해 옥수수와 호박이 자라나는 데 도움을 주고, 옥수수는 콩의 지지대가 되며, 호박은 넓은 그늘로 토양에 자연 그늘을 드리워준다. 이렇게 하면 세 작물 간의 상호작용으로 생산력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아스테카 사람들의 3대 기본 식량이 콩과 호박, 옥수수였다고 하는 데 여기에는 이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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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전시 공간에는 이외에도 가락 바퀴나 도장, 그릇, 술잔, 화로 등 아스테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했던 다양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해골 모티브나 기하학적 무늬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지만, 그 용도는 무척 일상적이었다. 멕시코에 가본 적도 없거니와, 부끄럽게도 메소 아메리카의 역사를 잘 알지 못했던 나는 이러한 전시품을 보며 아스테카인이 단지 나와 다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3부 : 정복과 공물로 세운 아스테카


 

3부는 전쟁을 통해 영역을 확장해나간 아스테카의 정복 전쟁과 공물살펴본다. 갑옷이나 무기, 전사 계급과 관련된 조각 등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거대한 사이즈의 '독수리 전사'가 무척 눈에 띄었는데, 아스테카의 전사들은 계급마다 상징하는 옷을 입었다고 한다. 여기서도 아스테카 사람들이 동식물을 비롯한 자연을 신성시하고 상징으로 활용했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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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번영의 도시 테노치티틀란


 

4부에서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 중 하나였던 테노치티틀란의 번성기를 엿볼 수 있다. '독수리 머리'처럼 신전을 장식한 부조나 무척이나 섬세하게 조각된 돌 상자, 화려하게 채색된 토기 등 비교적 고급품처럼 보이는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목테수마 2세의 상자'는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무늬가 선명하게 남아있을 만큼 그 공예 수준이 매우 뛰어난데, 석기 없이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외에 '보르지아 고문서'에 담긴 아스테카 사람들의 우주관이나 천문학, 문자 체계, 의학 지식 등을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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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세상의 중심, 신성 구역과 템플로 마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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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에서는 아스테카의 신성 구역에서 일어난 제의와 그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 중앙에는 테노치티틀란의 신성 구역을 재현한 모형과 AR 기기가 있다. 바람이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들었다는 바람의 신 '에카틀' 신전이나, 해골 선반 '촘판틀리' 등이 눈앞에 생생히 재현된다.

 

그중에서도 나는 역시 거대한 계단식 피라미드 신전인 '템플로 마요르'가 가장 인상 깊었다. 크기도 크거니와 아래 사진처럼 비의 신 '틀랄록'과 태양과 전쟁의 신 '우아칠로포츠틀리'가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60m의 거대한 피라미드는 아스테카의 수호신인 '우아칠로포츠틀리'가 탄생한 코아테펙 산을 상징적으로 재현한 건축물이다. 이 신화 또한 전시장 안에서 글과 영상으로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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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사제들이 제의에 사용했던 다양한 공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각 신과 관련된 예술품은 물론 동물과 인간의 뼈 또한 봉헌물에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인간 제물은 주로 전쟁 포로 중에서 선출됐다고 한다. 희생 제의라고 하면 몸서리 처질 수도 있지만, 아스테카 사람들에게 인신공양은 잔혹하기만 한 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시는 '죽음과 해골 = 생명과 사랑'이라며 해골 선반 촘판틀리가 적들을 위협하고, 경고하는 공포의 목적이 아니라 신을 위한 신성한 의식이었다고 말한다.


현대 멕시코에서도 해골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조상 공경과 부활에 대한 약속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영화 '코코'를 보면 알 수 있듯, 멕시코 문화권에서 해골은 낫을 든 사신 따위가 아니라 머리에 꽃을 얹고 즐겁게 추는 모습으로 더 자주 등장한다. 이를 원효대사 해골물 설화처럼 이미 해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문화권의 시선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세계사를 통틀어봤을 때 인신공양은 아스테카나 메소 아메리카에만 한정된 풍습이 아니다. 한때는 유럽에서도 인간 제물을 바쳤다. 우리나라 역시 신분제 사회에서 순장을 행하지 않았던가.

 

장의사 케이틀린 도티가 쓴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죽은 영아들을 굽고 그들의 뼈를 간다는 혐의를 받은 중세 마녀들에 대한 논문을 썼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나는 글자 그대로 영아들을 굽고 뼈를 갈고 있다. 마법을 쓴다는 혐의를 받은 여자들의 비극은, 실은 그들이 아기들의 뼈를 갈아 오밤중에 악마의 축제로 날아가는 데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쨌든 그 혐의로 부당하게 죽었다. 산 채로 기둥에 묶여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반면 나는 아기들의 뼈를 갈았으나, 잘 보살펴주고 염려해 줘서 고맙다고, 가엾은 부모들이 내게 감사까지 하는 일이 많았다.

 


그들이 근세기까지 인신공양을 했다는 것은 진실이지만, 해골과 뼈, 죽음이 주는 공포스러운 이미지에 갇혀 생각하지만 말고 어떠한 맥락으로 시행되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들에게 과연 죽음이 불행하고 불길하기만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스테카 사람들이 희생 제의를 단지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기 위한 부정적인 행위로만 여겼다면,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가치관이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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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부로 구성된 전시는 '우리는 그동안 아스테카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라는 물음을 던지며 마무리된다. 국내에 만연한 아스테카 문명을 향한 오해를 풀고, 본 모습에 한 걸음 다가가자고 적극적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전시를 보는 내내 일반 대중에게 다소 낯설고 복잡할 수 있는 아스테카 문명을 보다 쉽고, 오해의 여지 없이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이 눈에 들어왔다. 전시가 안내하는 대로 아스테카 문명을 차근차근 받아들이니, 포스터에서는 조금 무섭다고도 느꼈던 '믹틀란테쿠틀리' 조각상 또한 해학적으로 보였다.


오디오 가이드를 참조하면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될 듯하고, 매주 수요일마다 도슨트도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처음 개최되는 아스테카 특별전이자, 독일 린덴 박물관과 네덜란드 국립 세계 박물관과 협력해 최근 연구 성과를 담아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올해는 멕시코와 대한민국이 수교한 지 60년이 되는 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아스테카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가보는 건 어떨까.

 

《아스테카 :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 특별 전시실에서 오는 8월 28일까지 전시된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과 함께 예매할 경우 7,000원이라는 금액으로 관람가능하다.

 

 

[임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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