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연극의 경계를 탐구하다 - 연극 '겹괴기담'

글 입력 2022.10.2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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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남지 않는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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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기본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감상하는 예술이다. 관객은 연극을 보며 눈앞에 등장한 인물의 외양과 성격을 파악하고, 그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여정에 동참한다. 이야기가 전개되며 인물이 겪는 갈등에 마음을 졸이는가 하면 그가 처한 상황의 변화에 공감하기도 한다. 그렇게 연극 한 편을 감상하고 나면 관객의 마음속에는 한 편의 이야기과 그 이야기로부터 읽어낸 메시지가 남는다. 

 

반면 무대와 관객, 배우가 존재하지만 연극을 끝까지 보고 난 뒤에 인물을 파악하기도 줄거리를 요약하기도 힘든 연극이 있다면 그것을 망설임 없이 '연극'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연극이 곧 한 편의 이야기인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어려운 질문이다. 연극의 경계는 무엇이고, 어디까지를 연극이라 할 수 있는지 묻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험극이 탄생했다. <겹괴기담>도 그중 하나로, 연극의 경계를 탐구하고자 한다. 

 

<겹괴기담>은 실험극으로 이름이 알려진 작가이자 연출 마이클 커비의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1982년 동랑레퍼토리극단에 의해 초연된 이후 40년 만에 늘푸른연극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다시 무대에 오른다. 한국예술종학학교 연극원 초대 원장과 아시테지 한국본부 이사장을 역임한 김우옥 연출이 초연 때와 마찬가지로 연출을 맡아서 주목받은 바 있다. 구조주의 연극으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서사의 비중이 적고 연극의 구조 자체를 강조한다는 특징이 있다. 극장 로비에 <겹괴기담> 무대 구조의 미니어처 버전과 공연에서 사용되는 소품을 전시해둔 공간이 있어서 연극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상상해볼 수 있다. 

 

연극은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이야기가 함께 전개된다. 하지만 다 보고 난 다음 그 이야기가 남는 연극은 아니다. 어떤 이야기였다고 줄거리를 요약하기도 어렵다. 연극을 보는 관객은 주인공의 용기에 감명받는다거나, 그에게 이입해 응원하는 마음도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극이 그럴 만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겹괴기담>은 이야기가 아니라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삶 단편 단편을 맥락을 모른 채 지켜본다는 느낌을 준다.

 

 

 

독특한 무대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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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괴기담>은 연극을 이끌어가는 큰 동력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뒤로 물러나 있기에, 오히려 연극의 다른 요소가 부각되는 효과가 있다. 관객은 이야기가 아니라 무대 구조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두 구역으로 나누어진 객석은 한번 입장하면 극장 밖으로 나가지 않는 한 반대편으로 갈 수가 없는 구조다. 특히 객석 조명이 꺼지면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반대편 객석이 아예 보이지 않아 무대에만 집중할 수 있다.

 

무대는 양쪽 객석 사이에 있으며, 객석에서 무대를 보고 앉았을 때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할 때 가로로 다섯 개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각 공간은 뒤가 비쳐 보이는 스크린과 같은 장막으로 나누어져 있다. 자신이 앉은 객석에서 가장 가까운 무대 구역은 반대편 관객석 입장에서는 가장 먼 무대 구역이 된다. 다섯 개의 구역 중 배우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관객이 연극을 보는 느낌은 사뭇 달라진다. 바로 앞 구역에서 아무런 장막 없이 구현되는 장면이 평범하게 연극을 보는 느낌에 가깝다면, 가장 먼 구역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백색소음을 위해 켜 둔 텔레비전을 멀리서 보거나 흐릿한 기억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듯하다.

 

이러한 무대 구조의 특징을 잘 살린 부분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는 여러 가지 장면이 각각 다른 무대 구역에서 음악과 함께 불규칙하게 보여진다. 한 장면이 지속되는 시간은 등장인물이 대사 한 마디 할 정도로 짧다. 한 장면이 끝나면 바로 암전이 되고 다른 무대 구역에서 다른 장면이 보여진다. 영화의 몽타주 기법이나 일종의 비디오 아트를 연상시키는 연출이다. 덕분에 관객은 이곳이 연극 무대이며 연극을 보고 있다는 걸 잊는다. 이는 특수효과나 영상 없이도 조명과 공간 구성에 따라 연극이 얼마나 한정된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프롤로그가 끝나면 달라 보이지만 같은 구조를 가진 두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이야기는 몇몇 장면의 나열이다. 첫 장면은 무대의 양 끝 구역, 즉 양쪽 객석에서 가장 가까운 무대 구역에서 구현된다. 양극단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내용이 전개되면서 점점 무대의 중앙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다 어느 시점을 지나면 두 이야기는 서로 교차되어 반대편 관객석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이쪽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저쪽을 향해 가고, 저쪽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쪽을 향해 온다.

 

 

 

이야기를 발견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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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진 밤, 위험에 처한 주인공 앞에 수상한 조력자가 나타나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주인공이 조력자를 따라나선다. 주인공은 조력자를 따라 외딴곳의 저택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끼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조력자를 계속 따른다. 저택에 도착해 정체불명의 적대자를 마주하고, 주인공에게는 몇 가지 금기 사항이 주어진다. 본래 같은 편이었던 조력자와 적대자는 주인공을 계기로 갈등하고, 조력자는 적대자의 경고를 무시한 채 주인공을 탈출시키려 한다.

 

두 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괴기담의 구조를 띤다. 다 보고 나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인지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이야기 자체가 어렵지 않게 다가오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이처럼 구조주의 연극은 의도적으로 서사를 약화하고 구조를 앞세운다. 여기에 복선이나 관객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무대 위 두 편의 이야기는 분명 구조 면에서 유사하지만 서로 다른 시공간인 것처럼 따로 전개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음새 없이 나열되는 장면들을 볼 뿐인데, 나를 포함한 많은 관객은 자연스럽게 연극이 다 보여주지 않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구체적인 뒷이야기를 상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발을 다치고 다른 이야기 속 주인공이 길에서 한쪽 신발이 벗겨진 인형을 발견하는 것을 보며 두 이야기에 연결고리가 있나 생각해보는 식이다. 또한 아무 정보 없이 보게 되는 프롤로그와 달리, 본 이야기가 끝난 뒤 이어지는 에필로그에서 관객은 각 장면이 나열되는 규칙이나 순서를 찾으려 한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는 작품, 의도적으로 이음새를 제거한 작품에서 자꾸만 무언가를 읽어내려는 관객은 해당 작품을 오독하는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연극이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만날 때, 연극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또 발견하려는 존재라는 것을 이 작품을 보며 또 한 번 실감한다. 연극이 의도한 것 너머로 생각을 확장하는 일, '의미 없음'에서 의미를 읽어내려는 시도가 연극이라는 예술을 탄생시키고 또 발전시켜왔다. 그러므로 이 연극을 본 관객의 감상이 모여 '그 다음'을 탄생시킬 것이다. 다른 어느 작품보다도 <겹괴기담>을 본 관객의 감상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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