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몰입하라 그리고 되어보라! [미술/전시]

메소드 연기배우, 이형구 조각가
글 입력 2022.04.0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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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4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건 마치 감옥에 갇혀 있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 제이미 폭스

 

 

제이미 폭스는 영화 〈레이〉에서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레전드 소울 가수, 레이 찰스를 연기했다. 그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기 위해 눈을 뜰 수 없게끔 하는 장치를 이용한 상태로 촬영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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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드 니로는 영화 〈분노의 주먹〉에서 현역 복서를 연기하기 위해 근육질 몸매로 단련했고, 은퇴 후의 복서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25kg를 증량했다. 또한, 영화 〈택시 드라이버〉를 촬영하기 전엔 실제로 3주 동안 뉴욕 시내에서 택시 운전사로 일하였다.

 

 

"세상에나! 오스카상을 수상했는데도 불구하고 택시 기사로 일하는 걸 보니 아직도 배우로서의 수입이 시원찮은 가 보군요?"

 

- 로버트 드 니로를 알아본 승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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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 밝혔을 때조차) 아무도 나를 믿지 않았다. 피터 파커가 학교에 가서 '내가 스파이더맨이야'라고 말했을 때와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넌 아냐'라고 했을 것"

 

- 톰 홀랜드

 

 

톰 홀랜드는 피터 파커를 연기하기 위해 피터 파커가 다니는 가상의 미드타운 과학고등학교와 유사한 브롱크스 과학 고등학교를 실제로 3일간 다녔다.

 

 

 

메소드 연기파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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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은 극 중 캐릭터를 더욱 사실적으로 연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 인물이 '되려고' 노력한다. 장기간 그 인물에 대한 조사는 물론, 실제로 비슷한 생활을 하고, 살을 찌우고 빼는 등 육체적인 변화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가령 맡은 배역이 간호사라고 한다면, 실제 간호사의 발걸음부터 억양까지 최대한 모방하여, 간호사가 되다시피 연기한다.

 

이 처럼 극중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극사실주의적으로 연기하는 스타일을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메소드 연기를 하는 듯한 조각가가 한 명 있다. 작가 이형구는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거쳐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조소 전공으로 석사를 마쳤다. 조각가라곤 하지만, 그는 그의 작품에 있어서 사이비 과학자가 되기도 하며, 고고학자, 관상학자, 뿐만 아니라 때로는 말이나 물고기, 곤충과 같은 비인간적 생명체가 되기도 한다.

 

 

 

사이비 과학자 이형구, 콤플렉스 보완 장치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수많은 인파 속애서 손잡이를 잡고 있는 제 손을 보니까 너무 작아 보이는 거예요.”

 

- 부산시립미술관 이형구 작가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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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초기작 〈The Objectuals〉 시리즈는 유학 시절, 뉴욕에서 타인종과의 신체적 차이를 경험한 것에서 시작됐다. 그는 신체 부위를 자신이 원하는 크기나 형태로 변형하고자 일종의 과학 실험을 하였는데, 그는 물을 채우고 팔을 넣어, 빛의 굴절 현상으로 팔이 확대되어 보이는 장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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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는, 투명 헬멧에 광학필름과 렌즈를 부착해, 흔히 사회에서 선호하는 미의 기준 (눈과 입이 큰) 에 부합하도록 하는 인체 변형 장치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만든 인체 변형 장치들을 실제로 쓰고 밖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작품을 보다시피, 일종의 콤플렉스 보완 장치를 쓴 결과물들은 그리 예뻐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 〈The Objectuals〉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과장되고 왜곡된 인간의 모습은, 인간의 ‘인체 변형의 욕망’뿐만 아니라,  포스트 휴먼의 ‘신체성 담론’을 시사하기도 한다.

 

 

 

관상학자 이형구, 관상과 운명의 재조합


 

그는 관상이라는 비과학적인 ‘페이스 리딩’을 통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거나 예측해나가는 것이 이상하고, 싫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뜻을 담은 〈Face Trace〉 시리즈는 〈The Objectuals〉 시리즈의 5년 후 작품이다. 두 작품은 주어진 것(정해진 것)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욕구, 또는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작가는 〈Face Trace〉 시리즈 작업 동안 작업실에 박혀, 관상학과 성형학에 대한 공부를 총정리하였다. 그의 작업실은  조각가의 작업실이라 하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갖가지 종류의 귀와 코, 치아의 샘플들이 있어, 차라리 과학 실험실이라 해야 믿을 만했다고 한다.

 

 

“성형으로 관상을 바꾸고, 관상을 바꾸면 인생도 달라지고 이런 것일까?” 

 

- 부산시립미술관 이형구 작가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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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12개의 각기 다른 인종과 성별의 골격들을 모아, 거기다가 자신의 얼굴 부분을 결합했다. 그렇게 나온 12개의 얼굴들은 전부 다른 관상을 보이지만, 전부 작가 이형구의 얼굴을 바탕으로 한 얼굴이다.

 

즉, 고정된 얼굴을 해체하고 재조합함으로써 12개의 ‘새로운 이형구’가 탄생하였는데, 이것은 주어진 운명에 대한 거부와 자신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고고학자 이형구, 박물관에 전시된 만화 캐릭터 화석



그는 초기작 〈The Objectuals〉 시리즈에서 인체를 변형, 왜곡, 과장함으로써 나온 모습을 보고, '이렇게 생긴 생명체의 골격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마치 만화 속 캐릭터와 같다고 생각했고,  그리하여 그는 가상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지니는 골격을 재현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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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직접 설치한 과학 실험실 안에서 마치 과학자나 의사처럼 분장을 하고 만화 캐릭터들의 실체를 추적했다.


벅스 바니(Bugs Bunny)의 해부학적 뼈대를 만들기 위해, 실제 토끼를 해부하고, 해부학 서적들을 탐독했으며, 또한 벅스 버니와 토끼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대조해가며 실재와 가상의 교집합을 탐구했다.


이렇듯 무작정 가상 캐릭터의 골격을 만든 것이 아니라 역추적 연구를 하고, 이에 더해, 네 발 달린 동물이 두 발로 직립할 수 있도록 척추구조에 변화를 주는 연구 과정까지 거쳐, 그는 정교하고 세밀한 애니메이션 동물 캐릭터들의 골격을 재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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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자연사 박물관에서 실제 공룡 뼈와 제 가짜 뼈가 함께 전시를 하는 것, 이게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어요?”

 

- 부산시립미술관 이형구 작가 인터뷰 中

 

 

작가의 상상력에 해부학적 연구를 더한 〈ANIMATUS〉 시리즈, 당장이라도 전시장을 뛰어다닐 듯한 이 자 작품은 실제로 2008년 스위스 바젤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비인간 이형구, 탈 인간 중심적 관점



더 나아가 그는 비인간적인 것에까지 몰입하게 되는데,  〈Eye Trace〉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다른 시각에서 오는 다른 지각, 즉, 관점의 변화와 그 차이에 대해 알고 싶었다.

 

가령 세상이 개에게는 흑백으로 보이고, 사슴에겐 적색과 녹색이 없이 보이는 것처럼, 작가는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가는 그들이 '되어보기'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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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러 생물이 지닌 물리적 조건을 탐구하여 그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인체 조율 장치를 만들었다. Mirro CanopyCreeper, Fish Eye Gear〉는 사실상 시각을 중심으로 잠자리, 벌레, 물고기가 되어보는 장치들이지만, 그것으로 동반되는 걷는 방법이라던지, 지각 그리고 감각과정을 그는 몸소 느끼고 탐구할 수 있었다.

 

 

“아! 시선은 움직임을 동반하게 하는구나!”

 

- 부산시립미술관 이형구 작가 인터뷰 中

 

 

〈Eye Trace〉시리즈  4년 뒤, 그는 〈Measure〉 시리즈에서 말의 시각에 따라 변하는 지각의 과정을 탐구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말처럼 움직이기 위해, 말의 감각을 자신의 몸에 조율하고, 말과 기수가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마장마술 경기의 동선을 오랜 기간 연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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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 튜브로 된 말 뒷다리 형태의 기구를 장착한 채 스스로를 말처럼 조련하고, 훈련시키는 과정을 담은 이 영상 작품은 우아해 보이면서도, 진지한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는 작품이다.

 

 

 

000작가 이형구, '몸'


 

그는 인터뷰를 통해 “특정 작가로 규정되는 것이 두렵고, 싫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 지금까지의 그의 작품들을 보면 그는 단순한 조각가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사이비 과학자도 관상학자도, 물고기도 아니다.


물론 그가 작업에 있어 실제로 메소드 방법을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배우가 극 중 캐릭터에 극도로 감정 이입하여 극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주듯, 자신의 예술 세계에 극도로 몰입해 여러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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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리즈별로 그는 여러 역할을 연기하는 듯 보이지만, 그의 작품은 모두 하나의 소재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몸’. 그에게 ‘몸’은 재현의 대상이자, 소재이며 매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얼굴과 신체를 변형하고, 동물의 몸을 역추적할 뿐만 아니라, 가상의 육체까지 탐구하고 구현해냈다.


그리고 그는 이제 몸 속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2019년부터 최근까지 선보이고 있는 〈Chemical〉 시리즈는 몸 내부 풍경을 기괴하면서도 마치 작은 우주처럼 신비롭게 표현하고 있다. 이 시리즈에서 사용된 여러 재료들은 모두 우리 인체와 그 질감을 연상시키며, 그것들의 결합마저 인체 작업과 유사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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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몰입의 과정, 그러한 과정 속에서 그는 자신이 바라는 바와 같이, '000 작가'로 규정되지 않을 수 있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지점에 위치한 작가를 소개하는 한국현대미술작가 조명전을 개최해오고 있다. 2022년 네 번째로 개최되는《한국현대미술작가조명 IV- 이형구》전시는, 앞서 소개한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가 그동안 수집해온 인체 모형, 오브제, 해부학 서적 등 모든 아카이브를 함께 전시한다. 본 전시는 2022년 3월 29일부터, 2022년 8월 7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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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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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  
  • 김승현
    •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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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리 김
    • 오랜만에 미술관 가보고 싶네요
    • 0 0
  •  
  • 체리의 남자
    • 작품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는 좋은글에 감사드립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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