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헬프 미 시스터 - 불편함을 삼키며

글 입력 2022.03.3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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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너무나도 좋아졌다.

 

역병에 걸려도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내딛지 않고 약을 처방받을 수 있고, 유튜브에서는 ‘동성 커플 vlog’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성범죄자 신상이 투명하게 밝혀지고 Z세대와 그 이후에 출생한 청소년들은 각종 플랫폼을 통해 본인의 자아를 드러낸다. 10년, 2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하루하루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편리함이 단축한 시간과 과거와 비교하여 ‘좋아졌다’는 착각의 공간에는 또 다른 불편함이 비집고 눌러앉았다. 플랫폼 노동자 문제, 여성문제, 청소년 문제 등.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와 새롭게 생겨난 문제들이다. 우리는 편리하지만 불편한, 이질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도서 <헬프 미 시스터>에는 편히 삼킬 수 없는 ‘현재’를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내가 될 수도 있는,



평범한 회식자리였다. 하지만 그날의 끝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주인공 수경은 거래처와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회사에도, 수경 본인에게도 가치 있는 사건이었다. 회사는 이익을 얻고, 수경은 자아 효능감을 높이는 그런. 하지만 친근함의 탈을 쓴 수경의 동료는 축하하는 자리에서 칭찬 대신 졸피뎀을 먹였다. 사건 후에는 ‘미안하다’는 허물만 남겼다.


수경의 삶은 무너졌다. 피해자의 화살은 가해자 한 사람이 아닌 가해자의 여집합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향했다. 그들을 미워하고 그들이 건네는 음식을 의심했다. 정상적인 생활은 사치였다. 타인과 자신을 단절시켰다. 그렇게 집이 유일한 생활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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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가족 구성원에게도 퍼져 나갔다. 남편 우재, 엄마 여숙, 아빠 양천식, 엄마 친구 딸 보라 그리고 조카 준후의 여자친구 은지까지. 가해자 한 사람은 수경네 가족이 세상과 단절되게 만들었다. 그들은 무거운 짐짝처럼 심해로, 심해로 가라앉았다.


평범한 하루가 될 수 있었다.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성별의 차이로 인해 수경은 한 순간에 평범함을 도둑맞았다. 작가는 수경을 ‘친근함’을 무기로 내세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닌 사회, 제도 그리고 국가를 위한 외침이다.


그런데 책에선 가해자는 어디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어,



수경은 깨닫는다.


‘이러다가 다 죽어’


사람과의 교류가 불필요한 배송일을 시작한다.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되는, 고객과 유대감을 형성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 피해자인 수경에게 제격이었다. 하지만 수경에게 해결해야 할 일이 더 있었다.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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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사업자’로 둔갑한 배송일은 수경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 ‘우리 회사를 위해 일해. 하지만 권리는 보장 못 해줘’. 고객과 노동자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버린 플랫폼은 책임은 회피하고 이득만 챙겼다. 고객-플랫폼-노동자 또는 플랫폼-고객-노동자 순서의 완벽한 피라미드 구조였다.


그 후 ‘헬프 미 시스터’라는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플랫폼에서 엄마 여숙과 일을 했다. 여자만 있다는 사실에 안도가 된 수경이지만, 노동력풀이 넓은 플랫폼 안에서 살아남기는 힘들었다.

 

 

 

보호가 필요한 순간,


 

피해자 수경에 대한 보호도 필요하지만, 청소년인 은지도 보호가 필요하다. 오히려 과잉보호가 필요할 정도다.


수경의 조카 준후 여자친구 은지는 15살이다. 꽃다운 나이라는 표현이 식상해 보이지만 정말 그런 나이다. 하지만 은지는 독립하기 위해 ‘틴챗’이라는 플랫폼에서 본인 사진을 판다. 청소년 간의 정보공유를 위해 만들어진 플랫폼을 어른들이 잠식한 것이다.


‘주인님’ 호칭을 원하는 어른들. 그리고 살기 위해 응하는 은지 그리고 수많은 청소년. 결국 은지의 개인정보는 유출되고, 청소년이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다. 하지만 은지는 ‘나 살려주세요’라며 손을 뻗을 수 있는 어른이 없다. 방패도 없다. 그저 웃으며, 웃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보라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움직이는 인물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여성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수경을 보호하기 위해.


작가는 사회의 불편한 지점을 줄줄이 엮어 독자에게 던진다.


‘이 썩은 동아줄을 잡아볼래요?’


일부분만 썩은 줄 알았던 독자는 책을 읽어나가며 모든 줄이 연쇄적으로 썩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불편함을 삼키면서 종이를 넘긴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수경과 그의 가족과 지인. 그들의 연대는 끊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다시 힘차게 살아갈 의지를 되살린다. 비록 그 불꽃의 세기가 약하더라도, 미세하더라도 작은 불씨를 크게 키워나갈 것이다.


도서 <헬프 미 시스터>는 불편한 책이다.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지 않은 일이라서,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일이라서, 부정하고 싶지만 할 수 없어서.


우리 주변에 있는 수경, 우재, 은지, 보라, 여숙, 양천식, 준후를 위한 책. 도서 <헬프 미 시스터>다.

 

 

[신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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