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콘크리트 정글에서 살아남기 [영화]

글 입력 2022.03.2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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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듣기만 해도 설레는 이름이다.


타임스퀘어의 수많은 광고판이 눈이 시릴 정도로 반짝이는 그림이 되고, 브로드웨이에서 울려 퍼지는 뮤지컬의 넘버들이 심장 박동 수를 높인다. 정장을 차려입고 바쁘게 월 스트리트를 활보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증권업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처럼 따라가기 벅차지만, 그만큼 화려한 패션업계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센트럴 파크는 또 어떤가. 넓은 대지를 가득 채운 녹음과 잔잔히 빛나는 큰 호수. 둘레를 따라 달릴 때 폐를 가득 채우는 시원한 공기와 잔디 위에 펼쳐진 돗자리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보내는 여유는 내가 꿈꾸어 마지않는 삶이다.


‘JAY Z’와 “Alicia Keys’의 ‘Empire state of mine’이 떠오르기도 한다.

 

 

Concrete jungle where dreams are made of

There’s nothing you can’t do

Now you’re in New York

Three streets will make you feel brand new

Big lights will inspire you

 

 

꿈이 이루어지는 콘크리트 정글에서 당신은 못 할 것이 없다. 뉴욕에 있는 당신은 모든 것을 새롭게 느끼고, 불빛은 영감을 줄 것이다. 미디어 속에 나타나는 뉴욕의 모습은 언제나 활기차고 열정적이어서,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빛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늘이 존재하는 것처럼 성공한 사람 주위에는 방황하는 사람이 있다. 쓰고 보니 참 당연한 말이다. 모든 사람이 한순간에 함께 성공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프란시스’는 너무나도 자명하게 방황하는 중이다.

 

 

 

<프란시스 하>


 

프란시스 하5.jpg

 

 

‘프란시스 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뉴욕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사람의 성장기’일 것이다.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 찬 뉴욕이라는 배경을 가진 영화답지 않게 프란시스의 삶은 흑과 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명암의 차이만이 경계를 구분 짓는다. 장소의 변화, 인물들의 색이 두드러지지 않는 곳에서 프란시스의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27살의 견습 무용수인 프란시스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소피와 함께 살고 있다. 각자의 침대가 있어도 한 침대에 기대어 희망만으로 가득 찬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린 세계를 접수할 거야

 

넌 출판계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고

 

너는 유명한 현대 무용가로 이름을 날릴 거고 

나는 너에 관한 비싼 책을 써서 출판할 거야

 

 

서로를 향해 스스럼없이 사랑한다고 말한다. 통화를 마칠 때, 출근할 때, 잠에 들 때에도 두 사람 사이의 인사는 언제나 사랑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같은 크기의 애정을 주고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너를 생각하는 만큼 너도 나를 생각해줬으면.’ 이 소망만 이루어진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란시스는 소피와 사는 집의 계약 기간이 끝난 후에도 다시 계약을 갱신하여 여전히 함께이고 싶어 한다. 남자친구의 동거 제안을 거절하고 헤어진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그런 프란시스에게 소피는 예전부터 살고 싶었던 동네로 다른 친구와 이사를 하려 한다는 의사를 전한다. 프란시스의 인생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 시작점이었다.


소피가 떠난 뒤, 프란시스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다. 한 두 번의 만남이 전부였던 레브, 벤지의 집에서 살다가, 충동적으로 파리에서 이틀간의 시간을 보내고, 모교에서 행사 보조직원으로 일하며 기숙사에 머무른다. 현대 무용가로 이름을 날리겠다는 포부와 달리 무용단에서도 해고당한다.

 

 

프란시스 하2.jpg

 

 

사실 프란시스는 뉴욕과 그리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뉴요커’의 모습이 아니라는 뜻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순환되는 세상에서 프란시스는 동떨어진 섬처럼 느리다. 뉴욕 거리에서 춤을 추며 뛰어다닐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또 다소 눈치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대화할 때면 흐름에 자연스레 스며들지 못하고, 사람들은 그녀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별종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제3자인 나조차도 주눅이 든다.


이런 상황에 지쳐가는 프란시스는 소피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자신이 없어도 소피의 세계는 완벽해 보인다. 남자친구의 직장 때문에 좋아했던 출판 일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훌쩍 떠나버리는 소피에 서운함도 느낀다. 한번 멀어져 버린 관계는 같은 침대에서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던 과거로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다.


속해 있던 무용단에서 서류 작업, 공연 감독 일의 제안이 들어온다. 사랑하는 춤과 돈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그녀가 감독한 공연이 시작되는 날, 소피도 찾아온다.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고 둘은 눈빛만으로 마음을 전한다. 소피는 ‘나는 집을 떠나는 거지 널 떠나는 게 아니야’라고 말했던 과거의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라고. 프란시스는 과거에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 말을 이제는 이해한다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표정에서 나타나는 그 마음은 나 또한 잘 알고 있는 것이어서 괜스레 먹먹해지기도 했다.

 

 

프란시스 하1.jpg

 

 

소피와의 관계도 회복하고, 정착할 보금자리도 구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우정, 사랑, 일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지만 살아가다 보니 그저 과거로 넘길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이 정도면 꽤 성공적인 ‘콘크리트 정글에서 살아남기’가 아닐까?

 

***

 

‘프란시스 하’는 지나간 인연을 떠올리게 한다. 학창 시절을 함께한, 그 시절 내 세상을 이루었던 친구들. 매해 주고받았던 생일 편지같이 사소하지만 즐거웠던 추억들이 하나 둘 씩 펼쳐진다. 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때에는 검은색 도화지에 흰색 젤 펜으로 편지를 쓰는 것이 유행이었다. 흰 종이에 검은 글자가 반전된 것뿐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예쁘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나도 그런 편지를 많이 썼고 또 많이 받았다.


프란시스에게 소피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평생을 함께할 것이라고 여겼던 친구들이 있다. 나의 15살 생일을 맞이해 그들 중 한 명이 주었던 편지에는 ‘미래에 네가 결혼할 남자를 보기 위해서라도 너랑 평생 친구이고 싶어’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나도 네가 누구와 결혼할지 너무 궁금해’라고 웃으며 메시지를 보냈던 것 같다.


23살이 된 우리는 더 이상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다. SNS에 올라오는 근황을 보며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할 뿐이다. 멀어지게 된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나에게도, 친구에게도 다른 인연이 생겼고 우리가 함께 공유하던 관심사가 달라졌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했다. 함께 보냈던 세월도 시간 앞에선 쉽게 흩어진다는 생각에 울적해지기도 한다.

 

***

 

아직 내 책꽂이 한편에는 검정색 편지가 남아있다. 진심을 꾹 눌러 담은 흰색 글자들이 여전하다. 프란시스와 소피는 각자의 길을 선택했지만, 영원히 서로를 사랑하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도 다시 겹쳐지지 않을 두 개의 길을 걷고 있다. 그래도 나는 너를 응원하고 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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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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