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의 행위 양식을 파헤치다 - 놀이하는 인간 호모루덴스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3.1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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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로 '놀이'에 해당하는 '파이디아' '디아고게' '아곤'을 설명하고 세 가지 의미에 적용가능한 현대의 놀이 양식을 소개하겠다.

 

놀이라는 뜻의 라틴어 루드스(ludus)에는 여러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모두 놀이의 개념에 대한 여러 가지 층위를 구성하고 있다. 단, 문화 속의 제도로 정착된 것은 놀이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파이디아의 어원은 ‘어린아이의, 어린아이에 속하는’이다. 포괄적인 놀이 현상을 가리키지 못하고 어린아이들의 유치한 놀이를 지시하는 것으로 국한된다. 가볍고, 경쾌하고, 하찮은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긴장을 완화하고, 강장제처럼 정신적 휴식을 가지는 차원에서 즐거운 것이다. 더 높은 형태의 놀이는 경쟁적 경기인 아곤, 오락 및 취미를 뜻하는 디아고게로 표현되었다. 다음은 플라톤의 <법률>을 인용한 내용이다.

 

실용성도 진실도 유사함도 없으면서 그 효과에서 아직 해로움도 없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카리스의 기준, 그리고 그것이 제공하는 즐거움에 따라 판단될 수 있다. 이렇다 할 선도 악도 포함되지 않은 그런 즐거움이 바로 파이디아이다.

 

과정 지향적 게임의 형태로 나타나며 보통 즉흥적이고 정해진 룰에 따라 자유롭게 진행이 되고 상상력과 창의력이 닿는 만큼 콘텐츠가 된다. 미리 규정된 게임의 틀보단,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규칙을 만들어내 간다. 게임의 궁극적인 끝, 결론이 없어서 승패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아곤과 차이가 있다. 물론, 퀘스트 성공, 레벨 업 정도의 목표는 존재한다.

 

현대의 파이디아적 놀이는 우리 민족 전통놀이를 예시를 들 수 있다. 널빤지의 양 끝에서 한 사람씩 뛰어오르는 널뛰기, 손을 잡아 원을 만들며 도는 강강술래 등이 있다. 한편, 메타버스를 통한 시뮬레이션 게임도 그 예로 들 수 있다. 최근 ‘동물의 숲 포켓 캠프’가 한국판으로 출시되었는데 캠핑장을 꾸미는 게임이라는 주제 아래에 동물 주민들과 교류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선거운동에 활용된 사례도 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동물의 숲에 ‘바이든 섬’을 개장해 선거캠프를 방문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게임 마인크래프트에서 정해진 목표 없이 자유롭게 건축, 사냥, 농사, 채집, PVP, 회로 설계, 직접 게임 제작 등을 수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이디아적 놀이이다. 최대 도시를 건설할 수도 있고, 바다 위에 화산을 만들어 폭발하게 할 수도 있다. VR 게임을 통해 경주, 연애, 액션, 퍼즐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뮬레이션 게임은 경쟁보단 재현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파이디아적 놀이라고 할 수 있다.

 

디아고게는 정신적인 휴식, 빈둥거림, 여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다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디아고게 개념에 대한 인용이다.

 

여가는 우주의 원칙이며 그 자체로 텔로스였다.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장 선량한 사람이고 그들의 열망이 고상할 때 행복은 최고가 된다. 따라서 디아고게를 얻고, 또 특정한 것들을 배우기 위해 자기 자신을 교육해야 한다.

 

즉, 디아고게는 자유민이 여가에 행하는 배움을 위한 배움이다. 이러한 점에서 디아고게는 자유민에게 어울리는 지적, 미학적 몰두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디아고게는 최종 완성의 개념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같은 불완전한 자는 디아고게를 즐길 수 없다는 점에서 파이디아와는 구분된다. 디아고게적 놀이의 현대적 예시는 다음과 같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롱 문화’가 부활했다. 밀리니엘 세대 사이에 ‘소셜 살롱’이 인기이다. 워라벨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여가가 증가한 것이 배경이다. ‘글쓰기’와 ‘독서’가 주된 활동이고, 공통된 취향을 바탕으로 지적인 대화를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유료 커뮤니티 ‘문토’를 뽑을 수 있다. 요리 모임 ‘생각하는 주방’의 리더는 마하키친의 신소영 셰프가 맡는 등 각 주제에 맞는 멤버로 모임이 진행된다. 브랜드 소셜 살롱 ‘B my B’는 ‘BTS(콘텐츠)’, 부산(도시), 빈대떡(음식) 등 다양한 일상적 주제 아래에 토크쇼 형식으로 참가자의 인사이트를 공유한다.

 

또 다른 사례인 전기 가오리는 서양 철학 관련 문헌을 번역하며 출판물에 대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학문 공동체이다. 철학을 둘러싼 격차 없이 전달하기 위해 철학을 쉽게 해석한 출판물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철학 구몬’이라는 애칭이 있으며 공부 모임, 팟캐스트 등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약 1,700명이 후원하고 있다. 이처럼 현대의 디아고개적 놀이 근본적으로 ‘자아 찾기’와 연결된다. 따라서 특정 분야의 관심사가 같은 타인과 교류하고, 전문가와 접촉하며 끊임없이 자아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 속에서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직업적인 인사이트를 여가 속에서 얻고, 의미 있는 네트워킹을 형성하고자 한다. 취미를 단순 여가를 보내는 용도를 넘어 수익 창출이 되는 전문화 되는 수준까지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아곤은 경기 혹은 경연 영역의 놀이하기를 말한다. 옥스퍼드 판 그리스 어-영어 대 사전에 의하면 (1) 올림픽 같은 전국적인 게임에 모인 사람들 (2) 그러한 게임에서 현상을 노리고 벌이지는 경기, 여기서 발전하여 (3) 투쟁, 심판, 위험의 뜻을 갖게 되었고, (4) 싸움과 법적 소송이라는 뜻으로 확대된다. 아곤은 놀이의 형태적 특성을 띠고 있고, 전 세계 어디서나 발견되는 보편적 인간 특성이다. 드라마 공연, 현상 경기, 의례, 축제와 관련이 있다. 놀이의 주체와 객체 사이의 남 보다 뛰어 나려는 경쟁적 충동이 강하게 드러난다. 일정한 규칙 안에서 갈리는 승패가 명확하며, 승리를 한 자는 성취감과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아곤적인 놀이 안에서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꾸준한 관심과 의지를 바탕으로 한 연습이 필요하다. 도전 정신과 우수함을 추구하는 태도 또한 중요하다. 경쟁을 유도하는 시스템을 갖춘 현대의 아곤적 놀이 예시는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쇼미더머니’, ‘고등 래퍼’, ‘언프리티랩스타’는 힙합 오디션으로 랩 분야에서 순위를 겨룬다. 최종 우승자에게 개인 음원 발매 및 콘서트 등의 기회를 부여한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트롯신’, ‘나는 트로트 가수다’ 등 트로트 오디션 열풍도 식지 않고 있다. ‘K팝 스타’, ‘나는 가수다’, ‘슈퍼스타 k’등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끊이지 않고 생겨나고 있다. 영화 시상식도 경쟁 속에서 순위를 매긴다는 점에서 빼놓을 수 없다. 최근 배우 윤여정은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한국 배우 최초로 수상했다. 작품상 4개 부문을 석권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성과를 이뤄냈다.

 

스포츠는 경기를 통해 가장 뛰어난 운동선수를 가려낸다는 점에서 경쟁적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신체적 능력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스스로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경기 규칙을 준수하며 팀의 목표 달성을 위해 협력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과 책임감을 일궈낼 수 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MMA 경기 등이 있다. 그리스 올림픽 경기에서는 죽을 때까지 싸우는 아곤적 결투가 있는데, 영화 <헝거 게임>에서 진행하는 생존게임의 상황에 대응된다고 볼 수 있다. TV 프로그램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도 예시로 들 수 있다. 육상, 리듬체조, 양궁 등의 경기를 펼쳐 순위를 나눈다.

 

이렇듯,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 행위 양식을 파헤치며 '놀이하는 인간'의 개념을 만들어냈다. 어린아이와 같은 눈으로 일상을 놀이와 같이 살아가 보는 건 어떨까.

 

 

[윤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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