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동양화와 친해지는 법 - 동양화 도슨트 [도서]

글 입력 2022.02.2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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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익숙하지만 국악은 낯설고, 서양 미술은 좋아하지만 동양 미술은 잘 모르겠다고 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동양적인 것, 한국적인 것이 서구화의 구호에 치여 관심 밖으로 밀려난 탓이 크겠지만, 특히 동양 미술은 쉽고 친절한 입문서가 많지 않은 이유도 있을 거예요.

 

- 김영숙, 《1페이지 미술 365》저자

 


책 뒤편에 적혀 있는 이 말을 보고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자 한 자를 적고 있는 순간에도 세상은 쉴새 없이 바뀌고 있으며, 우리는 그를 쫓기 바쁘다. 동시에 우리는 구시대적인 것을 뒤로하고 새로운 것에 유독 눈을 반짝인다.


그렇다면 왜 서양의 것은 새로워 보이고, 우리의 것은 옛것처럼 보일까? 이 물음에는 여러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전에 일단 우리는 우리의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흥미를 느끼기도 전에 그저 옛것으로 치부하고 멀리하니, 그 속에 빛나고 멋있는 것들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법하다. 어쩌면 우리가 수없이 접하는 서양화들만큼 동양화를 자주 볼 수 있었다면 동양화도 마냥 어려운 존재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양화 도슨트>는 우리가 동양화와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해주는 책이다. 그 때문에 동양화를 구성하는 큰 주제들로 흐름을 잡았으며,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동양화’ 파트를 넣어 그림의 감상 포인트를 콕콕 집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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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균, <책가도 병풍>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민화’ 파트이다. 지난 학기 전공 수업에서 만난 이후로 한동안 책가도에 빠져 있었는데, 역시 이번에도 내 시선을 단숨에 끌었다.


말이 나온 김에 책가도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려 한다. 책거리(冊巨里)는 먹을거리, 볼거리 등의 ‘거리(巨里)’에서 온 말로 지금의 서가인 책가가 그려진 책가도(冊架圖)와 책가가 없는 책거리로 나눌 수 있다.


이는 책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책정치까지 펼쳤던 한국 문화를 대변하며, 한국인의 바람과 염원으로 가득 찬 그림이다. 책거리에는 책과 더불어 도자기, 청동기, 문방구, 화병 등 청나라로부터 수입한 다양한 물품 또한 함께 등장하기에 당시 조선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책가도가 유행하던 조선 말은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나고 동서 문명이 충돌하던 시기이다. 특히 서학의 유입으로 신분제도가 무너져 돈으로 양반 호적을 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이처럼 외국 문물에 대한 개방적 분위기에 따라 중국 서적의 수입이 급격히 늘었으며, 이때 중국으로부터 책가도가 유입되어 자비대령화원들에 의해 우리나라의 특성에 맞게 번안된다. 문자와 책을 즐긴다는 것은 양반의 필수 덕목이었기에 책거리는 돈을 주고 양반이 된 이들이 가장 탐한 미술 중 하나였다는 점도 책거리의 발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조는 책에서도 언급되었듯, 일월오봉도 대신 책가도를 어좌 뒤에 둘 정도로 책 그림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특히 책가도와 책거리는 정조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왕도 정치와 가까웠다. 따라서 정조는 중국 문인들의 문집에 영향을 받은 참신한 문체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서양학, 패관잡기, 명말청초의 문집을 배격하며 순정한 고문의 문풍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책가도를 상징으로 활용한 문체반정(文體反正)을 펼친 그는 고전적 문장을 통해 인성을 수련하며 유교가 말하는 군자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뜻이 있는 문인들만이 임금과 함께 왕도 정치를 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민화 파트에 이어 나오는 ‘그림의 소재가 상징하는 것들’ 파트 또한 흥미로웠다. 화면을 화려하게 수놓은 꽃이나 과일 같은 것들을 그저 미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 안에 선조들의 크고 작은 소망이 가득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바라는 것들은 비슷하구나’ 싶어 괜히 그림과 더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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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정, <나비와 모란>, 《현원합벽첩》, 연도미상, 종이에 색, 22.4 x 18.3 cm, 서울대학교 박물관

 

 

예를 들면, 화조화에 등장하는 참새나 까치는 기쁨과 반가운 소식이라는 의미를, 모란은 부귀영화를 뜻한다고 한다. 또한, 당시 사람들의 가장 큰 염원이었던 장수를 위해 바위와 대나무, 매화 등을 그려 틈틈이 보며 소원이 이뤄지길 바랐다고 한다.


물론 책에 나온 것처럼 동양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에 대한 의미나 시대 배경을 알고 있다면 그림을 더 잘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걸 달달 외워야지!’, ‘꼭 이걸 알아야 그림을 볼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여전히 데면데면한 사이를 유지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선 마음이 가는 주제의 그림부터 편안히 살펴보기를 바란다. 어느새 동양화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고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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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이현경 (2007). 책가도와 책거리의 시점(視點)에 따른 공간 해석. 민속학연구, (20), 143-167.

윤철규, 『조선 회화를 빛낸 그림들』, 컬처북스, 2015.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책거리(冊巨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문체반정’

럭셔리, 디자인하우스, '모두가 탐낸 조선의 럭셔리 책가도'

연합뉴스, 임화섭, '19세기 궁중화가 이택균 '책가도 병풍' 서울시 유형문화재 지정', 2020.08.06.

네이버 블로그, ohyh45,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의 작품세계 Ⅰ - 화훼, 화조, 초충, 영모도', 2010.09.15.

 

 

[유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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