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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한국 창작 뮤지컬의 힘을 보여주며 올해로 네 번째 시즌을 맞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19세기 유럽 나폴레옹 전쟁 당시, 전쟁터에서 죽지 않는 군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군의관으로 전쟁에 참전한 신체 접합술의 귀재 앙리 뒤프레가 함께 생명 창조 연구를 진행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담아낸 뮤지컬이다.
작품은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설이나 영화의 스토리와는 조금 다르다. 특히 1인 2역이라는 파격적인 캐릭터 설정과 압도적인 무대 그리고 웅장하고 힘 있는 넘버들은 숨 가쁘게 관객들을 서사로 몰아가며 다양한 볼거리로 관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킨다.
더불어 신이 되어 생명 창조의 역사를 쓰고자 했던 한 남자와 그의 피조물로 태어났으나 버림받아야 했던 괴물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깊이 통찰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인데, 초연부터 작품의 진두지휘를 맡아 온 왕용범 연출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켄슈타인을 소재로 한 기존의 작품들이 코미디나 호러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자신이 원작에서 발견한 건 '따뜻한 휴먼 드라마'였다고 밝힌 바 있다.
![1[꾸미기]KakaoTalk_20220205_150642289_0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202/20220205165117_zcclgivn.jpg)
신이여 축복을 아니면 차라리 내게 저주를 퍼부어라
신과 맞서 싸운 나는 프랑켄슈타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삶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바로 '저주받은 아이'일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온 우주나 다름없었을 엄마의 죽음을 목격하며 엄마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 행동이 매우 기괴하고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저주받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를 잃은 슬픔을 건강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채 성인이 된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죽음이 그저 잠시의 방전일 뿐이라 여기며 생명 창조 연구에 매달린다. 그가 그토록 연구에 집착적으로 매달렸던 이유는 엄마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한 어린 시절에 대한 자책이자, 연구를 통해 스스로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부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렇게 신과 맞서 싸우면서까지 만들어내고 싶었던 자신의 피조물과 마주했을 때 그는 결국, 다시 신을 찾고 만다. 인간의 무책임한 욕심으로 탄생한 생명이 어떻게 성장하고, 행복하고, 사랑하고, 죽게 될지 그에겐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종국에는 오히려 신의 심판을 갈구하게 되기도 한다.
이 묘한 모순을 지켜보면서 나는 '사로잡힌 자의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인간은 내가 옳다고 우기고 집착하는 것에 사로잡히게 되면 끝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어야만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게 된다.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인 것이다. 아,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1[꾸미기]KakaoTalk_20220205_150642289_0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202/20220205170215_ogzmefyp.jpg)
나의 창조주시여 뭐라 말 좀 해봐요
왜 난 모두에게 괴물이라 불려야 하나
한편,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로 태어난 일명 '괴물'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존재의 슬픔'이라고 생각된다. 생명으로 태어났으나 세상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종류의 생명이었기에 괴물로 불리며 겪어야 했던 슬픔과 절망 그리고 외로움이 괴물이라는 캐릭터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사실 관객들이 괴물이라는 캐릭터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그 상황이나 감정에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우리가 괴물의 모습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친구이자 동료인 앙리 뒤프레를 투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존재인 괴물과 과거의 존재인 앙리 뒤프레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두려움과 애처로움의 양가적 감정을 모두 느끼게 한다는 건 제작진이 얼마나 촘촘한 개연성과 매끄러운 극의 진행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괴물은 사람을 본떠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때로 사람 같은 순수함과 애정, 배려와 측은지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버리고 부정한 창조주에게 '혼자 남은 외로움'을 선사함으로써 가장 사람 같은 방식과 방법으로 복수를 해낸다.
이렇듯 사람이 아닌 존재가 오히려 더욱더 사람 같은 존재로 느껴지는 혼란 속에서 공연을 관람하며 나는 '과연 누가 사람이고, 누가 괴물인가?' 하는 질문에서 끝내 자유로울 수 없었다.
![1[꾸미기]KakaoTalk_20220205_150642289_0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202/20220205170927_rlgmgdni.jpg)
산다는 거 거 참 우습네
산다는 거 구역질이 나
산다는 거 짐승과 내가 뭐가 달라
의외로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의 서사는 바로 '까뜨린느'였다. 그녀는 격투장의 하녀이자, 인간에게 상처받은 괴물을 유일하게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고 보듬어주는 존재다. 극 중 어느 캐릭터보다 과거와 현재가 암울하고 처절한 까뜨린느가 괴물을 보듬는 유일한 존재라는 점이 매우 안타깝고 씁쓸했다.
또한 모종의 이유로 자신이 보살피던 괴물을 배신하며 자유를 갈망하는 까뜨린느의 모습은 동일 배우가 1인 2역으로 연기하는 줄리아 캐릭터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렇게 절묘하게 돋보이는 캐릭터의 이중성을 발견할 때마다 마치 몰래 숨겨둔 보물을 찾는 것 같아 기쁘고 즐거웠다.
끝으로 단지 살고 싶을 뿐이라던 그녀의 절규를 똑똑히 기억한다. 살아오며 그 누구보다 인간의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많이 경험했던 까뜨린느.
그녀는 말한다.
"나는 사람이 제일 무서워"
괴물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그녀의 말이 아주 오래도록 머릿속에 맴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