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안녕, 안녕. 괴물에게 돌아오지 않는 까뜨린느의 인사. [공연]

괴물 편
글 입력 2022.03.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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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니

감상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름 없는 한 괴물의 이야기.


 

지난 리뷰에서 배우 정택운이 연기한 앙리를 다뤘다면, 오늘은 그의 열연을 볼 수 있는 괴물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려 한다. 정택운 배우가 보여준 이름 없는 한 괴물의 이야기는 마치 심장에 차가운 얼음 조각이 박힌 듯 먹먹하고 처절한 슬픔을 전한다.

 

프랑켄슈타인. 이 이름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를 만든 창조주의 이름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성을 괴물의 것으로 오인하곤 한다. 사실 괴물에게는 이름이 없다. 아무도 그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가운 철 침대에서 태어나 눈을 뜨자마자 피 냄새를 맡는다. 마냥 두렵고 낯선 세계에서 추위에 바들바들 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다가와 나를 지켰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우는 것처럼, 괴물은 자기방어로 공격성을 표출했고 룽게는 운 나쁘게도 죽음을 맞이한다.

 

사고였다. 하지만 빅터가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괴물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빅터에게 목이 졸리고 피 냄새 속에서 세상을 맛봤다. 온통 새하얀 세상 속에서 본능적으로 도망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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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악인가? 아기인 것 같은데요.


 

괴물은 그저 순수한 아이였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백지 위에 붉은 피가 흩뿌려진다. 아무것도 모른 채 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그렇게 세상을 배웠다. 평범한 인간보다 강한 힘을 가졌기에 결투장에서 매일 밤 싸움에 끌려나간다.

 

택괴는 극도로 절제된 연기를 보여준다. 사슬에 묶여 호된 고문을 당해도 아픈 기색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니까. 아픈 건 당연하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으니까. 그랬기에 까뜨린느와의 만남은 더욱 특별했다. 괴물은 인간이 두렵고 낯설기에 경계심이 가득하지만, 처음으로 자신을 때리지 않는 인간을 마주하자 어찌할 줄 모른다.

 

‘왜 나를 때리지 않지? 이상해. 하지만 싫지 않아.’

 

까뜨린느는 괴물을 향한 호의로 상처를 닦아주고 괴물은 간지럼을 타며 웃는다. 정말 순수하게 아이가 ‘꺄르륵’하고 웃듯이. 나는 그 얼빠진 웃음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앞에서 조용히 고문을 견디던 괴물과 동일 인물이 맞나? 그 절제된 연기 이후에 보여준 웃음이기에 더욱 극대화된다.

 

“곰 맛있어!”를 외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까뜨린느가 말한, 인간이 없는 북극에 가고 싶다고 3번이나 외치며 좋아하는 모습에는 지켜주고 싶은 깨끗함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 흐뭇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배우 정택운의 괴물은 정말 순수한 아이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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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


  

까뜨린느에게 ‘안녕’ 손동작을 배운 괴물은 인사를 주고받으며 기뻐한다. 이때는 몰랐다. 이 동작이 내 마음을 처절하게 부숴버릴 줄은. 그녀와 함께 부르는 ‘그곳에는’ 넘버에서 그의 톤은 순수하고, 경계심 어린 소년의 목소리이다. 서늘함이란 찾아볼 수 없는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따스함을 건넨다.

 

까뜨린느와의 관계가 밝혀진 뒤, 괴물은 독방에 갇힌다. 까뜨린느는 하녀 신분을 풀어주겠다는 꼬드김에 넘어가 괴물의 식사에 약을 탄다. 괴물은 밥그릇 하나 오갈 만한 좁은 공간으로 손을 뻗는다. 그리고, 안녕. 그저 까뜨린느를 다시 만나 반가운 마음에 신나게 손 인사를 한다. 상황을 아는 관객들은 마음이 무너진다. 택괴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해맑은 모습이다. 그녀의 배신으로 결투에 패배했어도 그는 온몸이 무너진 채로 까뜨린느를 바라본다. 손 인사를 해보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 손동작의 의미는 뭘까. 괴물이 인간에게 받은 호의, 처음 느껴본 따뜻한 감정의 표현. 괴물에게는 쉽게 저버릴 수 없는 가치였음이 틀림없다.


죄책감에 허우적대던 까뜨린느는 자기혐오에 못 이겨 괴물에게 폭언을 퍼붓는다. 그제야 그의 손이 툭, 떨어진다. 멈춘 손동작을 바라보며 까뜨린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 누가 괴물인가? 정택운 배우의 연기 디테일에 소름이 돋았다. 손동작 하나로 수많은 감정을 담아내다니. 울고 싶어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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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혼자만의 슬픔.


 

괴물은 뒤틀린 몸으로 추운 바닥에 홀로 누워있다. 모두가 그를 버리고 떠난 자리. 이전의 넘버와는 차원이 다른 목소리가 갈라지며 새어 나온다. 살을 에는 듯한 조이고 아픈 목소리를 쥐어짜듯 노래한다. 혼자였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까뜨린느와의 추억으로 알아버린 따뜻한 마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의 끔찍한 고독에 울부짖는다. 사무치는 추위, 태어났을 때부터 느꼈던 그 추위를 결국 아무도 해소해주지 못했다. 그는 고독에 몸부림치며 숨을 몰아쉬고, 나는 그 흐느낌에 사로잡혔다.

 

허망함의 감정이 증오로 전환되는 지점이 경탄스럽다. 괴물은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고 그 감정을 알게 한 창조주,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증오하게 된다. 그의 고통스러운 긁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난 괴물’ 넘버에 등장한, 꿈에서 그를 안아준 누군가는 빅터였을까, 아니면 까뜨린느였을까? 둘 중 어느 쪽이라도 그를 버렸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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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에게 빅터는 어떤 존재였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괴물의 머릿속에는 앙리의 기억이 남아있다. 택괴는 ‘어젯밤부터 머릿속에서 말이 막 나와.’라는 식의 말을 털어놓는다. 원래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뇌에 남아있던 앙리의 잔재로 터득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빅터와의 기억도 남아있지 않았을까.

 

이 추측은 괴물이 길 잃은 어린아이를 만났을 때 더욱 확실해진다. 나는 괴물이 그 아이에게 어린 시절의 빅터를 투영했다고 확신한다. 그는 빅터를 ‘친구’라고 칭했다. 앙리의 잔재가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결코 말할 수 없는 호칭이다.

 

하지만 괴물은 앙리가 아니다. 설령 그의 몸으로 만들어졌다 해도 그와는 완전히 다른 생명체이다. 따라서 빅터를 만난 괴물은 준비 없이 자신을 만든 창조주에 대한 원망에 사로잡힌다. 빅터의 말을 한 음절씩 끊으며 곱씹는 말투로. 증오를 꾹꾹 눌러 담은 서늘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까뜨린느에게 배신당했을 때와는 또 다른, 차갑고 웅장한 목소리로 넘버를 부른다. 택괴는 ‘앙리’라는 이름을 극도로 싫어하는 듯 보였다. 감히 추측하건대, 그는 자신 안에 남은 앙리를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앙리가 없었다면 자신은 태어나지 않아도 되었고, 이 슬픈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빅터를 향한, 신념 어린 우정과 끔찍한 증오라는 모순적인 감정에 고통받지 않았겠지.

 

“아직, 아냐!”

 

어서 죽이라는 빅터의 말에 감정을 꾹 눌러 담으며 외친다. 그에게 앙리가 남아있었기에 괴물은 알 수 있었다. 빅터를 향한 최고의 복수는 친구를 또 한 번 죽게했다는, ‘외로움’이 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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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도달한 북극에서.


  

까뜨린느와 희망에 가득 차 이야기했던, 인간이 없는 곳. 괴물이 가장 가고 싶어했던 장소, 북극.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곳은 괴물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가 된다. 그는 빅터를 불러낸 뒤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다, 그에게 총을 쥐여준다. 빅터는 생명의 위협 속 주저하지 않고 괴물을 쏴버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괴물의 말.

 

빅터.

 

또렷하고 확실하게. 모든 관객의 시선이 집중된다. 괴물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를 빅터라고 칭한 적이 없었다. 늘 창조주라 부르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름’을 부른다.

 

마치 앙리를 떠오르게 하는 그 호칭으로.

 

“이해, 하겠어? 이것이, 나의, 복수야.”

 

정택운 배우의 표현력은 가히 총에 맞아본 사람 같았다. 실제로 총에 맞았을 때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 아는 사람처럼. 말을 힘겹게 이어가면서도 한 마디, 한 마디가 뇌리에 꽂힌다. 결국 북극에 홀로 남은 빅터는 후회 속에 빠져 울부짖는다. 누굴 위한 복수인가. 내 눈앞에서 펼쳐진 비극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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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프랑켄슈타인을 보내며.


  

내가 본 회차는 공연 관계자의 코로나 19 확진으로 인해 예상치 못하게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대처와 관련된 논란과는 별개로, 지금의 나는 그저 배우 정택운의 앙리, 괴물을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이번 공연에서 정택운 배우의 연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하나를 꼽자면, 바로 ‘웃음’이다. 그는 앙리 역을 하며 모든 것을 안 자의 처절한 웃음을 보여주었고, 괴물 역을 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자의 순수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보러 가길 잘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택앙, 택괴는 관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고 그만의 섬세한 연기와 캐릭터 해석, 넘버 소화력은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황홀함과 감동을 전했다. 배우 정택운의 앙리/괴물 역을 또 볼 수 있기를 고대하며, 뮤지컬 배우로서 정택운의 차기작을 기대하고 싶다.

 

 

출처

프랑켄슈타인(2021), 제작 뉴컨텐츠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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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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