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게 딱 맞는 디즈니, 엔칸토(Encanto) [영화]

“비대칭이고 완벽하지도 않지만... 아름다워!”
글 입력 2022.02.0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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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칸토는 2021년 11월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다. 마법의 힘을 가진 마드리갈 가족이 마을을 꾸려나가는 서사를 다룬다.

 

예고편의 이미지는 다채롭고 활기차다. 한국에서는 그리 인기 있지 않았던 터라 큰 기대 없이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공감하거나 감탄할만한 장면이 많았고, 마지막에는 코까지 훌쩍이며 크레딧을 봤다. 곱씹을수록 마음에 쏙 드는 이 영화는 현재 나의 최애 디즈니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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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칸토는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한다. 콜롬비아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남미 국가이다. 스페인어를 3년 정도 배워온 나는 간간이 스페인어가 들릴 때마다 괜히 반가웠다. 속으로 ‘나 저거 알아’ 하는 작은 아는 체를 하기도 했다.


엔칸토(Encanto)는 마법 혹은 주문이라는 의미의 스페인어이다. 밝고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진 단어라고 생각해 원래 좋아하던 말이다. 제목처럼 영화 엔칸토에는 긍정적인 느낌의 장면이 가득하다. 마을에는 귀여운 아이들이 조잘거리며 뛰어다니고, 거리에는 따스한 해가 내린다.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장면도 많았다.


모두 콧노래를 부르고 아무 데서나 춤을 추는 게 어울리는 마을이다. 그래서 엔칸토의 사운드트랙은 매번 어색하지 않았다. 다른 디즈니 뮤지컬 영화는 항상 느닷없이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면 엔칸토의 노래는 분위기와 어우러져 그저 자연스러웠다. 이렇게나 활기차고 포근한 마을에는 늘 음악이 흐르는 게 당연해 보였다.


엔칸토의 사운드트랙 작업은 라틴계 아메리칸 린 마누엘 미란다가 맡았다. 그는 모아나의 음악 작업에도 참여했던 작사/작곡가이다. 모아나의 메인 사운드트랙 ‘How Far I’ll Go’의 분위기와 구성은 기존 디즈니 프린세스 영화의 곡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현대 미국물’을 잔뜩 먹은 곡 분위기가 남미의 섬마을이라는 모아나의 배경과 어울리지 않아 아쉬웠다.


하지만 이번 엔칸토의 사운드트랙에는 남미의 쾌활한 분위기와 라틴 장르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있다. 특히 이게 디즈니 사운드트랙이 맞나 싶을 정도로 특이한 장르를 여럿 사용해 듣는 재미가 있었다. 영화의 시작에 등장하는 ‘The Family Madrigal’은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 작품에 활기를 더 한다. ‘Surface Pressure’는 힙합에 가까운 장르로, 루이사의 낮은 목소리가 매력적으로 잘 어울린다. 다음으로 나올 곡의 분위기를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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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색감과 새로운 음악들 덕에 지루할 틈 없이 영화를 봤다. 그렇게 영화관에 다녀온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 며칠 전 엔칸토가 다시 보고 싶어져 디즈니플러스를 켰다. “나 요즘 용기가 필요했나 봐.” 영화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엔칸토에는 다양한 성장 서사가 있다. 마드리갈 가족은 마을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족의 마법의 힘은 할머니 대부터 시작되었다. 그 힘을 이어받은 자녀와 손주들은 책임을 당연하게 여기고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기대하는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 힘이 센 루이사는 종일 마을의 짐을 옮기고, 이사벨라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며 마을을 화사하게 꾸민다. 그리고 마법의 힘을 받지 못한 미라벨은 집안에 다른 방식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 구박에도 굴하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러나 그들은 서서히 슬픔에 빠지고 까칠해진다. 원하지 않는 행동을 반복하며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즈음 집안의 근간이 흔들리는 어떤 사건으로 루이사의 힘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루이사는 가뿐히 들던 피아노조차 들기 버겁다며 좌절한다. 그리고 사실 하루에 산과 건물을 몇 개씩 옮기는 건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이사벨라는 늘 드레스를 입고 분홍과 보랏빛의 꽃만 피워내곤 했다. 그런데 미라벨과 다투던 와중 의도치 않게 선인장을 하나 만들어내는데, 그 행위로 처음 해방감을 느끼고 여러 식물을 자라게 한다. 온 마을을 돌며 꽃이 아니라 줄기와 잎이 무성한 초록의 것들을 만들어내는 이사벨라는 그 어느 때 보다 행복해 보인다. 어딘가에서 형형색색의 가루가 터져 나와 이사벨라의 옷과 얼굴이 온통 지저분해진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제야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며 소리 내어 웃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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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배경의 영화이지만, 한국의 시청자, 특히 여성 시청자라면 공감할만한 부분이 많다. 힘든 내색을 못 하고 버거운 일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처리하는 루이사는 집안에 한 명씩 있는 외강내유 딸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고 착각하며 ‘정형화된 아름다움’만 고집하던 이사벨라의 모습도 사회가 감탄할법한 미(美)를 추구하는 게 익숙해진 여성들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나도 이 두 가지 위치에 전부 해당한다. 그래야 한다고 직접 말하는 이가 없어도 가족이나 사회가 주는 간접적인 압박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행위를 전부 타파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순응하며 살고 있던 내 모습이 보여 슬펐다.


그래서 이사벨라가 처음 선인장을 피워내고, 넝쿨을 타고 마을을 날아다닐 때 눈물이 그렇게 났나 보다. 이 영화를 본 어린 여자아이들도 그 장면에서 감탄사를 내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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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마법 능력이 없어 죄책감을 느끼던 미라벨은 알고 보니 집안을 다시 살릴 수 있는 열쇠였다. 다른 가족들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마법을 부리는 주인공이었던 거다. 열심히 안경을 추켜올리며 탐험하고, 여러 감정을 표현하며 홀로 성장한 미라벨이 정말 대견했다.


마드리갈 가족의 세 손주는 이렇게 성장했다. 비로소 자신에게 솔직한 삶을 살 준비를 끝냈다. 그들의 새 도전은 아마 생소하고 어려울 테지만, 오로지 자신을 위한 발돋움이기에 넘어지더라도 금방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세 명의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에게 품는 이런 기대는 나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세상은 나에게 많은 걸 기대한다. 쓸모있는 한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나의 모양을 새로이 주물러 빚어낸다. 나의 행복과 꿈을 위한 노력이지만, 이따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맞는지 헷갈린다.


루이사처럼 능력을 과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사벨라처럼 나의 진짜 재능을 억누르고 있는 건 아닌지, 미라벨처럼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책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를 향한 미안함을 곁들여 고민한다.


하지만 나는 잘하고 있다. 세 사람이 깨달음을 얻고 이전과 달라졌다고 해도 과거의 행적이 모두 거짓말이나 무의미한 게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빙빙 돌아가는 어려운 길이더라도 결국 까다로운 나의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성장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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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분 좋은 영화였다. 비로소 그 어떤 것도 거슬리지 않는 현대식의 디즈니가 등장했다고 말하고 싶다. 내게는 딱 맞는 이 영화, 엔칸토를 모두 한 번씩 시청해주면 좋겠다. 나와는 또 다른 이유로 마음에 쏙 드는 영화가 될 거라 믿는다.

 


♪ 엔칸토 OST ‘What Else Can I Do?’

 

“It’s not symmetrical or perfect, but it’s beautiful.”

“비대칭이고 완벽하지도 않지만... 아름다워!”

 

이사벨라가 처음으로 꽃이 아닌 식물을 만들어낸 순간의 대사


 

P.S. 영화관에서 엔칸토를 봤을 때 본 영화가 시작되기 전 단편 애니메이션 한 편이 재생되었다. 특히 좋아하는 동물인 라쿤이 등장해 처음부터 마음이 사르르 녹은 상태로 엔칸토를 볼 수 있었다. 해당 단편의 제목은 ‘Far from the Tree’이며 현재 디즈니플러스에서 따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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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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