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악의 하루 끝에서 발견한 '나' [영화]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
글 입력 2022.01.1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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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가 본 적 없는 사람에게도 “뉴욕” 이라는 도시가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 있다. 뉴욕은 재즈와 쇼핑, 세련된 사람들, 패션, 바쁘게 움직이는 자동차들,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은 설렘을 연상시킨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또한 두드러지는 특징들을 연상시킨다. 우디 앨런의 영화들은 방대한 대사량을 자랑한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었던 우디 앨런은 비꼬기의 고수다. 우디 앨런은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삶의 여러 모순과 위선, 사랑을 신랄하게 비꼰다. 우디 앨런 영화 속 캐릭터들은 우디 앨런의 자화상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데, 그의 영화 대부분에 불륜과 바람, 사랑의 권태가 주제로 등장한다는 사실에 우디 앨런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웃음을 자아낸다.


우디 앨런은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났고, 자신을 뉴욕을 사랑하는 뉴요커라 칭한다. 그만큼 우디 앨런의 영화에는 1978년 작 [인테리어], 1979년 작[맨해튼], 1986년 작품으로 그에게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준 [한나와 그 자매들] 등 아주 다양한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듯, 뉴욕이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뉴욕과 뉴욕에 살아가는 중산층 가정을 사랑하는 우디 앨런과 뉴욕이 다시 만났다. 제목부터 어딘가 낭만적인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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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우디 앨런은 이토록 뉴욕을 사랑하는 것인가. 수 많은 영화에서 뉴요커들을 주인공으로 다양한 대화들을 나누게 했는데 아직도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할 이야기가 더 남아있는 것일까. 우디 앨런은 그 이유를 납득이라도 시키려는 듯 관객을 뉴욕으로 초대한다. 관객들은 비 내리는 뉴욕의 어느 날, 주인공 개츠비의 ‘운수 나쁜 날’에 동행한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주인공 개츠비는 자신에게 좋은 것만 해 주고 싶어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뉴욕의 중상류계층 가정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접한 다양한 음악과 뉴욕의 문화생활 덕분인지, 개츠비는 재즈를 좋아하고 피아노도 연주할 줄 알며, 낭만을 사랑하지만 다소 뜬구름 잡는듯 한 이야기를 자주 하는 청년으로 성장한다. 뉴욕을 떠나 지방에 있는 도시의 학구적인 대학에 진학한 개츠비는 지역 부자 집안의 딸인 금발의 예쁜 여자친구 애슐리와 사귀며 소위 정해진 정상 궤도의 삶을 살아간다.


영화 초반부, 개츠비는 자신의 삶을 간단히 소개하는 내레이션에서 애슐리는 예쁘고 착하며, 자신과 어울리는 집안의 딸이고 자신은 애슐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애슐리와 미래에 언젠가 결혼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 개츠비와 애슐리의 대화들에서는 그 어떤 설렘이나 스파크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연인의 대화라기에는 각자의 얘기만 하는 듯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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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츠비와 애슐리는 이에 대한 문제점을 느끼지 못한다. 애슐리의 기사 취재를 위해 함께 뉴욕으로 떠나게 되자, 개츠비는 뉴욕에서 애슐리와 보낼 낭만적인 하루에 대한 꿈에 부풀어 완벽한 하루를 위한 이런저런 계획을 말하지만, 애슐리는 자신의 기사에 대한 걱정들로 한가득이다. 삐걱대는듯한 대화는 잠시 무시하고, 애슐리와 개츠비는 각자의 방식대로 최고의 하루를 꿈꾸며 뉴욕으로 떠난다. 뉴욕은 낭만과 기회의 도시이기 때문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심어 준다.


재즈 연주곡이 흘러나오는 곳에서 로맨틱한 저녁을 먹고, 유람선을 타려던 개츠비의 야심 찬 계획은 몽땅, 완전히 틀어진다. 낭만의 도시 뉴욕에서 말이다. 신문 기사를 위해 영화감독과 한 시간 동안만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던 애슐리는, 영화를 함께 관람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사라져 버린 감독을 찾느라 예정에도 없던 관계자들의 다음 일정에 함께하게 된다.


애슐리가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뉴욕의 거리를 돌아다니던 개츠비는 고등학생 시절 친구를 만난다. 자리를 뜨려고 하던 개츠비는 애슐리에게서 점심 약속을 예정대로 진행하기 어렵다는 연락을 받고, 정처 없이 거리를 걸어 다니다 학교 과제로 영화를 촬영 중이던 동창들을 만난다. 삶은 우연의 연속이다. 우연에 떠밀려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우리는 누군가의 곁에, 어딘가에 도착해 있다. 우연이 만들어낸 순간들은 우리의 삶을 조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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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니 데이 인 뉴욕] 속 개츠비와 애슐리의 하루에도 수많은 우연이 작용한다. 개츠비는 영화 촬영장에서 자신이 고등학생 때 사귀었던 전 여자친구의 여동생인 을 우연히 다시 마주한다.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묻기도 잠시, 개츠비는 챈과 키스하는 장면을 찍어내야 한다. 지나온 시간만큼 훌쩍 자라버린 챈은 어릴 때의 수줍었던 모습과는 반대로 개츠비의 말에 쏘아붙이기도 하고, 생각치 못환 관점에서의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며 개츠비의 하루에 그동안 겪었던 것과는 다른 방향에서의 바람을 불어 넣어준다. 챈은 개츠비와 낭만에 대한 비슷한 생각을 가진다. 챈과 개츠비는 비오는 날 시계탑 아래에서 키스하기와 같은 로맨스의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다.

 

비 오는 뉴욕에서의 하루, 개츠비와 애슐리는 낭만적 계획 대신 각자 떨어져 다른 일을 겪으며 전에는 문제라 느끼지 못했던 서로의 차이점에 대해 문득문득 생각하게 된다. 저녁 시간, 녹초가 되어 호텔로 돌아온 애슐리와 개츠비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사랑하는 완벽한 연인을 연기해보려 하지만, 다음 날 애슐리와 함께 시골 마을로 돌아가기 전, 함께 탄 마차에서 혼자 뛰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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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의 하루는 개츠비가 ‘자신’이라는 사람을 발견하게 했다. 수동적인 사람이었던 개츠비는 우연에 떠밀려 살아왔다. 우연을 붙잡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도, 우연이 만들어낸 순간 속에서 자신을 찾는 방법도 몰랐던 개츠비는 변화를 받아들인다. 개츠비는 뉴욕에 조금 더 머무르며, 뉴욕이 펼치는 많은 기회 속에 자신을 던지고 자신을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개츠비는 마침내 애슐리와 자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한다. 마차에서 내리며 개츠비는 애슐리에게 말한다. “우린 너무 달라. 너는 맑은 날의 뉴욕을 좋아하고, 나는 비 오는 날의 뉴욕을 좋아해. 그러니 넌 계획대로 돌아가. 난 뉴욕에 남을래.” 개츠비의 이 대사는 영화의 모든 대사 중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른 점을 좋아한다. 그 작고 사소한 요소들이 모여 관계를 형성하기도, 다른 길을 찾아 나아가게 하기도 한다. “너는 맑은 날의 뉴욕을 좋아하고, 나는 비 오는 날의 뉴욕을 좋아해”라는 대사는 내가 지금것 다녀온 여행지와, 함께 갔던 이들을 다시 곱씹어보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상대방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어디로 가야 할 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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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슐리를 떠나보내고 뉴욕의 거리를 걷던 개츠비는, 시계탑 밑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챈을 만난다. 두 사람이 나눴던 뉴욕 시계탑 밑에서의 키스 이야기를, 사랑을 막 시작한 남녀는 환상 속이 아닌 현실에서 실현한다. 개츠비는 뉴욕에서 또 수많은 우연을 마주치고, 사랑하며 자신을 발견해 나갈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당장 뉴욕 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한 손에는 우산을 든 채로, 뉴욕의 길거리를 정처없이 걷다가 배가 고파지면 재즈가 흐르는 레스토랑에 들어가고, 저녁에는 괜히 시계탑 밑을 서성거리며 내 우연을 시험해보고 싶게 만드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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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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