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이유 - 조각집 [음악]

글 입력 2022.01.14 13: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지난 12월, 가수 아이유가 자작곡으로 채워진 <조각집>을 발매했다. <조각집>은 그간 콘서트 및 팬 미팅에서 선보였던 미발매 자작곡들로 채워진 앨범이다. 이번 앨범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그녀의 20대 안에 군데군데 존재했던 조각들을 한데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앨범을 새로 발매하게 되면 이전 앨범의 활동이 마무리된 시점부터 준비한 곡들로 채워지기 때문에 - 간혹 이전에 써놓은 곡들도 추가되긴 하지만 - 트렌드라던가 또는 자신이 새로이 느끼는 감정들로 빼곡히 채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조각집>은 과거 자신의 흔적을 끄집어내 현재 내놓은 것이기 때문에, 각 조각마다 담긴 생각과 감정이 사뭇 다름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아이유는 처음으로 프로듀싱 했던 <챗셔> 이후 꾸준히 앨범 소개 글을 본인이 작성하는 거로 유명하다. 그 때문에 몇몇 글은 입소문을 타며 꽤 유명해지기도 했다. 이번 앨범 역시 그녀가 직접 작성한 글로 구성되어 있다. 전작들과의 차이점을 꼽자면 전곡이 자작곡인 만큼 그 어떤 곡보다 자세히 설명되어 있고, 과거의 조각이 세상에 나오게 된 계기, 곡을 만들게 된 배경, 녹음할 때의 에피소드, 조각이 존재했던 시간 등 타인이라면 절대 쓸 수 없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오늘은 음악보다는 소개 글에 집중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2001086172_h4ax5quE_5BED81ACEAB8B0EBB380ED99985D01.28454831.1.jpg



 

드라마


 

 

스무 살에 썼던 곡이다. 실연을 하고 며칠 동안 사랑에 대해 몹시 비관하던 내 친구를 잠시나마 웃게 해주고 싶어서 만들었다. ··· '드라마'라는 곡의 존재를 잊지 않고 10년 동안이나 굳세게 정식 발매를 요청해 준 나의 팬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처음이라 잘 해내 보이고 싶어 피가 끓었던 '내 손을 잡아'와, 어느새 제법 미끈한 여유가 생겼던 '금요일에 만나요' 사이에 '드라마'가 있다. 내세우고픈 욕심은 없었으나 내 마음에는 꼭 들게 맞아서 꽤나 소중하게 간직했던 이 곡이, 어쩌면 이번 소품집의 이유이자 주제이기도 하겠다.

 

- <조각집> 앨범 소개 글 중 일부(이하 동일)

 

 

미발매 자작곡 중 가장 좋아했던 곡이다. 실제로 <조각집>이 발매되기 한참 전부터 ‘아이유 콘서트 앵앵콜’을 검색하면 늘 빠지지 않고 연도별로 자리했던 곡이 바로 ‘드라마였다. 마치 동요처럼 단조로운 사운드에 통통 튀는 목소리, 따라 하기 쉬운 멜로디까지 삼합이 맞아떨어져서였을까, 한 번 듣고서는 며칠을 흥얼거렸었다.

 

아이유는 가장 최근에 했던 콘서트에서 이 곡을 부르기 전 이런 말을 했었다. ‘지금은 이런 곡을 쓰려고 노력해도 안 되더라고요. 그때 쓸 수 있는 감성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이 말을 듣고는 어릴 적 했던 철없는 행동이 떠올랐다. 지금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을 했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 시절이었기에 할 수 있었던 무모한 행동이 있는 것처럼, 창작물을 만들 때 요구되는 감성과 상상력도 그 시절이어야만 가능한 것들이 있는 것 같았다.

 

 

 

정거장


 

 

스물다섯에 쓰기 시작해서 완성은 스물여섯에 했다. 원래 붙어서 태어난 음악인 듯, 가사와 멜로디가 동시에 떠오르는 곡들이 있는데 나에겐 오랜만에 이 곡이 그랬다. ··· 그러다가 1년 후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이라는 인물을 만났고, 자연스럽게 그 인물에 대입해 2절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언제라는 확실한 계획은 없었지만 언젠가는 꼭 발매하고 싶은 곡이었다. 스토리텔러로서보다도 탑 라이너로서, 어느 곡보다 이 곡에 나라는 창작자의 가장 중심적인 감성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지은과 지안의 사이 '정거장'이 있다.

정거장 하나만큼의 거리가 둘을 이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을 만나서였을까, ‘정거장’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기약 없는 기다림을 담은 곡이다. 노래는 반주 없이 그녀의 온전한 목소리만 가득 실은 채 시작한다. 늘 노래를 들을 땐 가사를 유심히 보는 습관이 있는데, 그녀 특유의 서정적인 가사 덕분에 머릿속에는 실제 정거장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구체적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이 곡은 유일하게 가이드 보컬을 섞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즉, 과거의 목소리와 현재의 목소리가 함께 담겨 있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사이를 정거장이 이었다면, 지은과 지안 사이에 있는 정거장이 스물다섯의 조각과 스물여섯의 조각을 이었다.

 

 

 

겨울잠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나가는 일과, 그런 세상에 남겨지는 일에 대해 유독 여러 생각이 많았던 스물일곱에 스케치를 시작해서 몇 번의 커다란 헤어짐을 더 겪은 스물아홉이 돼서야 비로소 완성한 곡이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혹은 반려동물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서 맞이하는 첫 1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써 내려갈 플롯이 명확해서 글을 쓰기에는 어렵지 않은 트랙이었지만 그에 비해 완성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내 세상에 큰 상실이 찾아왔음에도 바깥엔 지체 없이 꽃도 피고, 별도 뜨고, 시도 태어난다. 그 반복되는 계절들 사이에 '겨울잠'이 있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이제는 정말로 무너지지 않는다. 거짓말이 아니란 걸 그들은 알아주겠지.

 

 

아마 이 곡이 팬들의 눈물 버튼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어땠을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은 그녀의 스물일곱에 자리한 조각은 우리에게 ‘겨울잠’으로 다가왔다. 사계에 맞춘 플롯과 계절마다 특색을 살린 비유, 서정적인 가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등 가히 모든 게 완벽히 어우러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정도였다. 직캠으로나마 완곡이 존재했던 다른 곡들과 달리 이 곡은 팬 미팅에서 몇 소절 짧게 부른 게 다였다. 그 때문에 가장 신선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앞서 말한 완벽한 어우러짐 덕분에 나의 최애 곡은 ‘드라마’에서 ‘겨울잠’으로 바뀌게 되었다.

 

무심한 바깥은 작은 내 세상 따위의 상실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상실에 잡아 먹히든, 겨울잠에 파묻혀 일어나지 못하든, 바깥은 제 할 일을 한다. 그런 바깥이 미워서라도 무너지지 말아야 함을 그녀는 이제 안다.

 

 

 



 
스물네 살, 집에도 못 가고 산골에서 며칠간 드라마 촬영을 하다가 윗집 사는 친구가 너무나 보고 싶어서 끄적였던 곡이다. 당시 촬영 중이던 사극 드라마에 십분 몰입해 멀리 있는 님에게 보내는, 닿을지 어떨지 모르는 연서를 보낸다는 설정으로 한 줄 한 줄 애틋하게 가사를 썼던 기억이 난다. ··· 가수 생활 14년 동안 유일하게 음악 활동을 쉬었던 해에 유일하게 팬들에게 들려줬던 곡이다. '챗셔'와 '팔레트' 사이 느릿느릿 조용하게 흘러가고픈 '너'가 있다.
 

 

아이유가 유인나를 생각하면서 쓴 곡으로 더 유명하다. 드라마 <보보경심> 촬영 당시 지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오랜 기간 친구를 보지 못하게 된 그리운 마음을 담은 곡이다. 이 그리운 마음에는 보고 싶은 감정만이 들어간 게 아니다. 내가 너를 떠올리는 지금 너도 나를 떠올려주면 좋겠고, 어여쁜 널 얼른 보고 싶고, 캄캄한 밤하늘 아래 쓸쓸한 기분으로 나는 유일하게 너를 떠올린다는 마음이 있다.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지만 가장 친한 친구이자 1호 팬이자 연예인이자 자신의 뮤즈인 유인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온전히 담겨있다.

 

부러웠다.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 스물넷의 조각이. 나에게도 소중한 친구가 더러 있지만, 이 곡을 들으며 내가 친구들을 생각하는 온전한 마음이 어떠한지, 동시에 친구들은 나에게 어떤 마음인지에 대한 확신이 희미해졌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러이 떠다니는 밤이다.

 

 

 

러브레터


 

 
노부부 중 먼저 세상을 떠나는 쪽이 남게 되는 다른 한쪽에게 남기는 마지막 연애편지라는 설정으로 가사를 썼다. ··· 마지막 문단에 '어디보다 그대 안에 나 머물러 있다오'라는 가사는 내 정규 5집 앨범 의 마지막 트랙 '에필로그'의 씨앗이 되어준 문장이다. 오랫동안 날 알아 왔고, 알고, 더 알려고 해준 나의 고마운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소설과 편지 사이,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을 눌러 쓴 '러브레터'로, 이 소품집을 닫는다.
 

 

2020년 데뷔 12주년을 기념하여 출연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공개한 곡으로 가수 정승환에게 줬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노부부 중 한쪽이 남기는 연서’라는 컨셉에 맞게 ‘-다오’ 체를 사용한 문장이 가사로 사용된다. 그 덕에 티브이에서 접한 옛날의 시대적 배경이 자연스레 연상되었다.

 

이 곡에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노부부가 썼다는 설정에 맞게 조금 투박한 느낌을 주고자 제목을 ‘러브래터’라는 오타를 낼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고 한다. 만약 제목에 이러한 장치가 들어갔다면, 나처럼 비하인드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정말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자작곡이 공개된 시점으로 보아 스물여덟에 완성했을 거로 추측한다. 그리고 1년 뒤 발매된 정규 5집에 수록된 ‘에필로그’의 씨앗이 된 게 이 곡이라는 대목으로 확실해졌다. 스물여덟의 조각이 있었기에 스물아홉의 조각이 더욱이 제빛을 발했다는 걸.

 

 

 

이미 그려진, 앞으로 그려질 조각들



사람은 과거에 살면 안 된다고 한다. 이미 흘러간 물을 담기 위해 역류하는 물살을 가로지르며 걸어봤자 만신창이만 될 뿐이다. ‘아까 담을걸’, ‘그때 이랬어야 했는데’ 등의 후회만 품에 가득 안은 채 현실로 복귀했을 땐, 내가 미련을 놓기 위해 뒤를 걸어갈 동안 사람들은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걸 발견한다. 그리고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두 배의 고생과 노력이 동반된다.

 

나는 항상 그랬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의 대답은 늘 오케이였다. 그래야만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으니까. 내 발목을 잡고 있던 게 사라질 거란 기대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러다 보니 늘 한발 늦었다.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사실 나는 이미 그려진 나의 조각들이 그리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작년에도 아이유의 음악에 관련된 글을 기고했었는데, 당시 ‘팔레트’라는 곡을 소개하면서 올해 나도 스물다섯이 되었으니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었다. 동시에 속으로는 의미 있는 숫자인 만큼 의미 있게 보내야지, 라는 소망도 있었다. 현실은 정말 힘든 1년이었지만.

 

내 세상에 상실이 찾아와도 바깥은 제 할 일을 한다는 걸 그녀는 안다. 그리고 과거에 발이 묶여 제자리에 있더라도 바깥은 묵묵히 시간을 굴린다는 걸 이젠 나도 안다. 자기혐오에 찌든 나는 과거를 악화시키기만 했지만, 분명 그 속 군데군데 자리한 조각들이 마냥 그렇지 않음을 이젠 안다. 그러니 그려진 조각들은 그대로 두고, 앞으로 그려질 조각들을 위한 삶을 사는 방법밖에.

 

 

 

지은정_컬쳐리스트.jpg

 

 

[지은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96512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E-Mail: artinsight@naver.com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Copyright ⓒ 2013-2022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