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는 왜 공연에 미쳐 사는가 [공연]

글 입력 2021.12.0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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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는 원하는 뮤지컬이나 연극을 더 자유롭게 보러 다니리라 다짐했지만, 이런 결심을 비웃듯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독한 코로나바이러스의 범유행이었다. 강화된 방역지침에 따라 공연장에서는 절대적인 마스크 착용과 좌석 띄어 앉기가 시행되었고, 여러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업계 종사자들의 안타까운 피해 사례 또한 늘어났다. 그렇게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공연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공연을 보러 다녔다. 나에게 공연은 단순한 취미나 여가 활동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공연은 나의 목숨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생명줄과도 같았다. 그 정도로 간절했다. 공연은 나의 오래된 꿈이었고,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믿었던 무언가였다.

 

학과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았던 나는 대학을 휴학한 뒤 입시 학원에 등록하여 예술대학 입학을 준비했고, 공연 연출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공연계에서 꿈을 키우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기에, 학생 신분으로 아득바득 모은 돈을 모아 티켓을 사는 데 쏟아부었다. 그 노력을 잊지 못하기에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어렵게 공연 한 편을 보기 위해 극장에 들어서 무대 위의 예술에 압도당하는 순간, 나는 진정으로 살아 숨 쉬는 생명이 되어 영혼의 충만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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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을 소비하는 데 필요한 수고로움의 정도를 측정하여 분류한다면, 아마 공연 관람이 최상위권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음에 드는 공연이 생기면 몇 주, 길게는 몇 달 전부터 좋은 자리의 티켓을 구매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그러다 공연 당일이 되면 공연장까지 시간과 돈을 들여 이동하고, 공연을 보는 동안에는 엄격한 행동의 제약을 받으며(특히 코로나 시대에는 더욱) 조용히 객석을 지켜야만 한다.

 

요즘은 영화 한 편도 집에서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시대다. OTT 플랫폼의 접근성이 높아짐에 따라 좋은 콘텐츠를 편하게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옷도 대충 입고, 소파에 드러누워 과자 한 봉지를 시원하게 뜯은 후 남들 눈치 안 보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보는 재미는 각별하다.

 

마음에 안 드는 드라마는 회차를 넘길 수 있고, 취향에 맞지 않는 영화는 ‘줄에서 삭제’할 수도 있다. 화면 속 주인공에게 한껏 이입하며 감탄하다가, 인스타그램을 켜서 친구에게 “너도 이거 꼭 봐”라는 DM을 보내도 그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는다. 이처럼 현대적인 미디어 서비스는 소비자에게 최대한의 자유와 선택권을 보장한다.

 

공연은 다르다. 공연은 그 순간, 그 장소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예술이다. 그러니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는 공통의 책임이 부여된다. 다른 관객을 방해하거나, 배우에게 피해가 되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것, 공연이 마음에 들었다면 이를 만들어낸 예술가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자 하는 것 등이다. 이는 일종의 약속이다.

 

그렇다면 우리 관객은 왜 이토록 고단한 수고를 감수하고도 기어코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일까? 나는 왜 공연에 미쳐 사는가? 내 앞에서 살아 숨 쉬는 배우의 열정 때문에? 극장에서 펼쳐지는 환상적 경험 때문에? 무대 미술, 음악, 연기, 연출이 아우러져 감각을 깨우는 듯한 종합 예술의 아름다움 때문에?

 

아직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언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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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공연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취향에 맞지 않는 공연도 굳이 찾아보고 나의 관점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나는 입맛에 맞추어 공연을 관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공연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대극장 뮤지컬부터 소극장 연극까지 고루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공연에 담긴 상업적 가치뿐만이 아닌, 작품 그 자체의 예술성을 보아야 한다. 나는 공연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한 작품이 끼치는 선한 영향력의 척도를 파악하는 것을 즐긴다. 이것은 나의 기준이다. 각자의 기준을 잡고 여러 공연을 본다면, 그렇게 시야를 넓히고 경험을 쌓는다면 자신의 힘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의 경지를 넓힐 수 있다.

 

나의 궁극적 목표는 공연을 만드는 것이다. 나의 영혼이 담긴 공연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관객을 감화시키고 싶다. 삶에 지친 사람이 극장에서 치유 받을 수 있는 공연, 미처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소리를 대신 내줄 수 있는 공연,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공연을 원한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도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을 공연에서 발견한다. 그러니 어찌 보면 이 글은 공연을 향한 러브레터에 가깝다. 이렇게 풀어놓으니 글에서 지독한 덕후의 향기가 풍기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이런 표현이 아니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살아서 행복하냐’라고 묻는다면, 조금 망설일 것 같긴 하다. 공연을 본다는 것, 나아가 공연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른다. 나는 오래도록 불안했고, 슬픔에 잠식되어왔으며 아직도 행복에 가까워지는 법을 모른 채 산다. 그러니 공연을 향한 일방적인 사랑에 더 매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순간의 기쁨을 모아 인생의 즐거움이 꽃피기를 기다릴 뿐이다.

 

누구에게나 예술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찾아온다. 그 예술이 나의 관심 분야인 공연일 수도 있고, 그림이나 글, 음악, 춤일 수도 있다. 모든 예술은 사유하는 인간의 존재 이유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당신의 예술은 무엇인가? 공연이 나를 바꾸어 놓은 것처럼, 모든 이들이 자신만의 예술을 찾아내어 변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얼마 남지 않은 2021년의 겨울, 앞으로도 예술이 나의 존재를 얼마나 빛나게 할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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