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롤라 런, 운명은 절대적인가 선택 가능한 것인가? [영화]

과거/현재/미래를 달리는 영화 <롤라 런>
글 입력 2021.11.2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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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안에 돈을 가져가지 못하면 연인은 죽는다.

롤라는 달리고 또 달리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참담하다.

그래서 롤라는 다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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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 런>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세 번의 시공간을 반복하되, 앙상블의 활용과 샷에서 보여 지는 미세한 차이점을 이용해 운명의 절대성과 가변성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영화이다.


여기서의 운명이란 한 명의 인간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해 미리 모든 구성이 마쳐진 하나의 덩어리, 혹은 이미 완성된 기성품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영화에서 보여진 운명은 이미 과거와 현재, 미래로 구성된 매우 일직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사건이 순환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인물의 생애를 요약해 빠르게 배속시킨다거나 현재의 결과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회귀하는 주인공을 보면 그저 과거/현재/미래로 이루어진 일직선을 ‘달려가거나’ 혹은 ‘되돌아가거나’ 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에는 운명을 주체적으로 바꾸려 하는 사람때에 따라 운명이 바뀌게 되는 사람,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의 유형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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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운명에 대해 본인의 주체성으로 맞서는 주인공 롤라는 시간을 넘나드는 초능력을 가진 것만 같아 보이는 인물이다. 남자친구 마니가 보스에게 10만 마르크를 무사히 전달하기 위해 실패한 결과를 다시 되돌아간다(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롤라가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 이유는 그녀가 이전의 실패들을 기억하고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단에서 장난을 칠 준비를 하고 있던 소년과 개를 훌쩍 뛰어넘고, 유모차를 끌고 있던 여인을 사뿐하게 피하며, 결국 강도짓을 했던 연인을 말리기 위해 다음번에 더 빨리 달려가기도 한다. 이미 일어났던 과거의, 한 때는 달리고 있던 현재에 들이닥친 미래였던, 그러니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이기도 한 실수들에 대해 성공할 때까지 ‘다시’ 시도하곤 한다.


하지만 이때 롤라가 거슬러간 것이 ‘동일’하다고 보는 것은 확신할 수 없다. 20분이란 한정적인 ‘시간’이 동일하고 그녀가 마주친 사람들, 달려갔던 거리, 길의 동선마저도 모두 똑같지만 그 ‘공간’은 조금씩 다르게 비춰지기 때문이다. 지하철과 차들이 다니는 대로변을 지날 때는 카메라로 다가오는 지하철과 저 멀리서 달려오는 롤라의 롱샷이 보여 졌다면, 그 다음에는 지하철이 롤라의 뒤편으로 지나가기도 하고, 또 그 다음엔 롤라가 지하철 옆에 딱 붙어 달리기도 한다.

 

광장을 달릴 때도 마찬가지다. 바닥 무늬를 대각선으로 가로 질러 갔었다면, 선을 따라 직선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아예 카메라가 바닥에 붙어 광장 전체를 보여주며 무늬는 보이지 않기도 하다. 그 외에도 은행이 있는 시내 거리를 통과하거나 철제 다리를 건너는 장면 등 카메라의 앵글과 샷 사이즈, 무빙을 통해 동일 공간을 다르게 담아내곤 한다.

 

흔히 얘기하는 ‘평행우주론’으로 보았을 때 이것이 새로이 만들어진 또 다른 우주인지, 아니면 그저 시간을 극복한 초월적 기류의 의미심장함인지는 알 수 없다. 롤라가 달리기를 시작하던 애니메이션까지를 현실 공간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 또한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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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따라 운명이 바뀌는 사람들도 있다. 순식간에 사진슬라이드로 그들의 남은 생애가 표현 되어진 ‘유모차를 밀고 있는 여자’, ‘자전거를 훔쳐 파는 남자’, ‘은행의 단발머리 여자’와 롤라의 아빠, 마니 등이 그렇다. 그들의 운명은 필연적이면서도 가변적이다. 시간을 되돌아가더라도 롤라와 마주쳤던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그 후의 운명은 매번 달라진다.

 

과연 지체장애인이 되어 자살을 기도했던 여자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남몰래 이상성욕을 즐기던 커플의 여자가 동일인물일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위의 인물들은 그 시간에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필연성을 보이면서도 손쉽게 미래가 바뀌는 가변성을 보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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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쌍한 마이어씨가 있다. 그는 아무리 시간이 뒤바뀌어도 ‘절대적으로’ 조폭들의 차를 친다. 매번 사고가 났던 자리를 다행히 피한 것처럼 보였지만 다른 장소에서라도 반드시 그들을 만나 차를 친다. 충돌 시킨 곳이 차의 앞 범퍼이건 뒤 트렁크이건 정면충돌이건 상관없다. 절대로, 차를 친다.


아마 그가 태어나자마자 하느님이건 옥황상제건 하는 사람들에게 부여받았을 수식어도 ‘절대로 조폭의 차를 칠 자’라고 적혀있을 것만 같을 정도이다. (불쌍한)마이어씨는 어떤 경우에도 운명이 절대적으로 발휘되는 속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운명은 절대적인 것인가 선택 가능한 것인가? 대답에 대한 고민은 롤라가 카지노에서 룰렛으로 돈을 따는 장면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다. 딜러가 회전하는 판에 정확하게 공을 맞추는 능력이 없는 이상 룰렛 게임은 ‘운’이고, 이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롤라가 특유의 괴성을 지르자 놀랍게도 공은 오른쪽 20번에 안착한다. 그렇다면 롤라의 괴성은 정말로 룰렛의 결과에 영향을 준 것일까? 들어서자마자 도박에 성공한 것은 예견되어있었던 롤라의 절대적 운명일까 아니면 롤라가 주체적으로 만들어낸 노력의 결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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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 런>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일직선을 세 번 되풀이하며 운명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영화적 시점으로 시공간을 표현하고 여러 부류의 앙상블과 교차편집, 테크노 음악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결정과 우리가 당하는 모든 충돌은 이미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절대적으로’ 일어나는 타고난 운명인 것인지, 아니면 매 순간의 선택에 따라 나의 일직선을 되풀이하여 변형 가능한 ‘가변적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야기한다.

 

 

[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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