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픈마인드, 그런 너도 괜찮다 - 장르만 로맨스 [영화]

로맨스 속 숨겨져 있던 인간존중을 보다
글 입력 2021.11.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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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온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유쾌하고 가벼운 영화를 만났다.

 

<장르만 로맨스>에선 류승룡, 오나라, 김희원, 이유영, 성유빈, 무진성 등이 출연하고 조은지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극한직업>, <7번방의 선물> 등에 출연하여 코미디 연기의 정수를 보여준 류승룡, <스카이캐슬>, <라켓소년단>에 출연하여 안방극장에서 스크린까지 접수한 오나라, 누아르 하면 떠오르는 배우 김희원, 사람을 끌어들이는 사랑스러운 매력의 소유자 이유영, 2011년부터 아역배우로 다져와 두터운 연기 내공이 있는 성유빈, 스크린 데뷔작에서 안정되고 짙은 감정연기를 보여주는 무진성이 출연한다. 믿고 보는 배우들과 서로 다른 매력의 소유자들을 모아놓은 신선한 캐스팅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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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만 로맨스>는 조은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조은지는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가진 20년 차 배우이자 단편 영화 '2박 3일'로 2017년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배우의 경력으로 출연배우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여 배우들의 유연한 연기와 케미가 빛날 수 있도록 했고 맛깔난 특유의 연출로 영화의 맛을 살리는데 한몫했다.

 

 

 

로맨스를 가장한 휴먼 드라마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로맨스를 가장한 코미디, 스릴러, 액션, 휴먼 드라마, 재난 영화, 누아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영화다." '영화가 좋다'인터뷰에서 류승룡이 밝힌 내용이다. 뭐 하나로 정할 수 없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한 것이다.

 

<장르만 로맨스>는 로맨스에서 현실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로맨스의 주체인 사람을 조명한다. 사람들의 현실을 통해 이혼, 재혼, 동성애 등 가볍지 않은 주제를 말하고 있다. 조은지 감독은 따뜻한 시선의 연출로 몰입감을 높였고, 배우들의 넘치는 케미와 연기력은 이를 호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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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다양한 장르가 혼재돼 있지만 굳이 따지자면 코미디가 가미된 휴머니즘 드라마다. 배우들은 일상 속 현실적인 모습과 생활 밀착형 연기를 보여줬고 러닝타임 내내 잔잔하게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눈 깜작할 새 영화가 끝나고는 마음속에 묵직한 무언가가 남았다.


 

 

평범하지 않은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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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작가 '김현'은 한때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날렸지만, 과거의 영광에 부담을 안고 7년간 단 한 작품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게 새로운 인연이 찾아오고, 김현의 인생은 전환기를 맞는다. 김현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이 얽히고 김현과 주변인의 버라이어티 한 사생활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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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류승룡)은 바람을 피워 이혼했지만 아들로 인해 전 부인 미애(오나라)와 계속 친밀하게 지낸다. 고등학생인 아들 성경(성유빈)은 부모의 이혼으로 삐뚤어진다. 유진(무진성)은 천재 작가 김현을 짝사랑하고 있다. 김현의 30년 지기 친구이자 '오픈마인드' 출판사 대표 순모(김희원)와 김현의 전 부인 미애는 비밀 커플이다. 성경은 또래로부터 상처를 받은 뒤 이웃사촌인 주부 정원(이유영)과 지내며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평범하지 않은 로맨스로 얽힌 이들의 사생활이 밝혀지며 인물들은 성장하고 존중과 인정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로맨스 속 숨겨져있던 인간존중


 

많은 문화 콘텐츠들은 로맨스로 가득 찬 세상을 보여준다. 콘텐츠 속 로맨스들은 현실의 많은 부분을 생략한다. 이 현실엔 로맨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 로맨스라는 형태를 통해 관계와 사람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사랑"이 어떻게 되는지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주목하게 된다.

 

영화는 로맨스를 도구로 활용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집중시키기 위한 장치였다. 영화 후반 모든 사생활이 밝혀지고 로맨스는 엉망진창이 되거나 아무 일도 없던 듯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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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성경은 사귀던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임신한 사실을 듣고 순수성에 충격을 받아 고통스러워한다. 힘들어하던 와중 엉뚱 발랄한 이웃집 주부 정원을 만나 친구처럼 놀면서 이별의 아픔을 치유한다. 어른인 정원은 학생인 성경을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를 만나듯 대한다. 학교를 빼먹고 담배를 피우는 성경을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닌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 대하는 정원과 성경의 관계에서도 인간 존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30년 지기 친구가 전처와 비밀연애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김현은 화를 내는 대신 한마디를 건넨다. '잘해줘라. 고생만 시켰던 불쌍한 얘다.' 미애의 인생에 대한 인정이 있던 부분이다. 이젠 자신과 끝난 관계이며 미애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것과 함께, 커플에 대한 인정과 함께 축복이 담겨있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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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모는 고지식하고 상당히 계획적이다. 여자친구 미애와 여행을 갈 때 분 단위로 계획표를 짜간다. 숨 막히는 계획표에 미애는 맘에 들지 않는 눈치지만, 몇몇 일정은 빼먹을지언정 그의 계획에 함께한다. 그리고 한 번 더 여행 계획표를 보여주지 '그래 그런 너도 내가 인정한다.'라는 마음으로 또다시 그와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그중 영화의 메시지를 가장 많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다. 영화의 주축이 되는 김현과 그의 제자이자 동료인 작가 지망생 유진의 관계다.


 

 

그런 너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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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공동 집필을 위해 한 집에서 함께 지내며 작업을 했던 김현과 유진. 책이 출간되자 천재 작가의 복귀로 세간의 관심을 받는다. 그러던 와중 이 관계를 시기 질투한 동료 작가가 거짓으로 둘의 관계를 폭로한다. 김현을 진심으로 사랑하던 유진은 언론에 직접 나와 커밍아웃을 하며 진실을 밝히고 사라진다.

 

사건이 잠잠해진 후 북 콘서트에서 김현은 방송을 통해 '너는 모두에게 상처야'라는 말을 듣고 숨어버린 유진에게 이 말을 전한다.

 

 

색과 색이 섞였을 때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 색은 그대로 있다.

 


'있는 그대로의 너도 괜찮다'라고 전한다. 사회의 시선에 따라 너의 모습을 바꾸려 하지 않아도 좋다. 현은 유진이 그렇게 변하려 애쓰지 않아도 후배로, 동료 작가로, 제자로서 너를 인정한다고 말한다.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더 나아가 유진의 잘못임이 아님을 말한다.

 

빌리엘리어트에서도 빌리의 오랜 동네 친구 마이클은 여자 옷을 입기를 즐긴다. 빌리가 이런 마이클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땐 당황했지만 곧 마이클이 건네주는 원피스를 입으며 마이클을 인정한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날 좋아한다니, 좋은 일 아닌가?"

 

빌리와 마이클의 정체성은 다르지만, 빌리는 마이클을 친구로 좋아하고 있었기에 마이클을 존중한다. 마이클이 빌리에게 뽀뽀를 했을 때 빌리는 이를 마이클 만의 표현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이후 빌리는 떠나기 직전 마이클에게 똑같이 뽀뽀를 한다. 제일 좋아하는 친구에게 마이클 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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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은 빌리에게, 빌리는 마이클에게 서로의 감정을 강요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고 바꾸려 들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선을 지키며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서로의 존중이 있었기에 '친구'라는 관계는 깨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다.


현과 유진이 공동 집필을 위해 같은 집에서 지낼 때, 둘은 서로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유진은 현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할 뿐 현에게 무엇도 바라지 않았고 그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현도 유진에게 공동 집필하는 후배, 제자 이 이상을 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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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성적 취향의 주파수는 다르지만, 작가로서의 주파수는 잘 맞았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둘은 다른 의미로 가까워졌다. 현은 집필을 위한 목적 있는 동거였으나 유진이란 사람을 잘 알게 되자, 좋은 친구이자 좋은 동료 작가임을 인정함으로써 유진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유진의 날카로운 재능 있는 필력은 김현에게 영감을 주어 글을 다시 쓰게 만들었다. 7년의 슬럼프를 극복하게 해준 유진은 특별한 의미였다.


김현은 북 콘서트에서 미처 다 전하지 못했던 말을 마음에 품고 '리우아니아'에 찾아간다. 유진의 집에서 공동 집필을 할 때 그가 들려줬던 만우절 날에만 열리는 공화국이다. 그들은 그곳의 축제에서 만난다. 너는 아무에게도 상처가 아니고, 너의 색깔을 바꾸지 않아도 좋다. 동료 작가로, 후배로, 제자로서 유진 너는 꽤 괜찮은 녀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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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가진 모든 부분을 좋아하고 인정하기는 힘들다. 전체 중 한 부분이 맘에 안 들 수 있다. 그러나 맘에 안 드는 작은 부분보다 맘에 드는 커다란 부분이 있다면 그 관계는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

 

김현도 그랬을 것이다. 유진의 성적 취향은 받아들일 순 없지만 그 부분보다 유진의 성격, 작가적 능력 등 그것을 상쇄시킬만한 좋은 점을 많이 갖고 있으니 유진을 인정하고 그에게 작가적 애정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고유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처럼 동성애도 다른 특성 중 하나로 생각한다면 어떨까. 김현과 유진처럼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세상은 좀 더 웃음이 많아지지 않을까.


유진에겐 짝사랑의 끝이 비극은 아닐 것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인 아버지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 김현이란 사람은 자신을 유진 그 자체로, 인격체로 존중했다. 김현의 책 <빈 공간>으로 힘들었던 시절 위로를 받았으며,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동성애를 가진 '유진'이란 사람을 인정한 김현. 유진은 김현의 존재 자체로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오픈마인드


 

김현은 유진 덕분에 두려움을 극복해 내어 작가의 커리어를 다시 시작했고, 유진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친구를 얻었다. 미애는 재혼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고 성경은 아픔을 딛고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 모두 인정과 존중의 결과다.

 

영화 속 일상적인 인물들은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큰 성취 뒤에 두려움을 안고 사는 모습, 수월한 관계만 관계만 하며 살 수 없는 현실. 영화 속 인물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열린 마음, 오픈마인드로 해결해나간다. 로맨스를 가장하여 오픈마인드를 말하고 있는 이 따뜻한 영화로 세상을 인정과 존중으로 채운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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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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