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방법 - 코코의 하루 북파우치

글 입력 2021.11.18 10:16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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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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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오던 어느 날 필자가 걱정 일기에 쓴 글

 


나는 늘 예민하고 불안하다. 딱히 이유는 없고,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적엔 영원하고 안정적인 것에 목을 매었다.

 

좋아하는 색깔의 펜이 닳는 게 싫어서 300원짜리 검정에 펜만 써서 필기를 했으며, 좋아하는 책이 망가지는 게 싫어서 책장에 고이 모셔놓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했던 대화들을 잊어버리는 게 싫어서 대화를 모두 녹음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것들은 모두 영원하지 못했다.

 

이렇게 사랑했기에 불안했고, 불안했기에 불행하며 10대 후반을 보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었다. 성인의 세상은 미성년자 때와는 차원이 다른 깊이와 너비였고,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통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에 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어차피 저것들은 전부 닳아 사라질 테니 정을 주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며 대충 사서 대충 쓰고 대충 버려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20대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비로소 깨달은 점이 있다. 바로 사라질 것이 두려워 사랑하지 않는 것은 회피에 불과하단 것이다. 따라서 마음먹었다. 더 이상 도망가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기로.

 

 

 

전자책과 종이책



스무 살 생일 이북 리더기를 선물로 받았다. 대부분의 스무 살들이 그렇듯, 당시 내 머릿속은 엄청난 허영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나는 건강 문제로 술 담배를 하지 않았기에 다른 것이 필요했고, 이때 내 눈에 띄었던 것이 바로 철학서였다. (이 무렵 쓴 글들을 다시 보면 어디론가 숨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독서라는 바람직한 취미를 가지게 되었고, 둘째는 이때 배운 것들을 두고두고 써먹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책과 구분되는 철학서만이 가진 특징이 있다. 바로 매우 두껍다는 것이다. 들고 다니는 것은 고사하고, 독서대 없이는 침대에 누워서 읽지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이북 리더기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 그것의 조악한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그 가벼움에 매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단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우선, 그것은 흑백으로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책 속에서 삽화가 큰 역할을 하는 미술 서나 잡지를 읽을 때 치명적이었다. 또한, 전자 잉크의 특성상 화면의 전환이 조금 느려서 그때그때 느낀 감상을 메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종이가 가진 물성을 너무 사랑했다. 젤펜으로 아트지 위에 필기할 때 슥슥 미끄러지던 느낌도, 회색 만화지와 연필이 만날 때 생기는 사각거리는 마찰감도 모두 사랑했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들은 종이 책과 함께 해온 20여 년간의 추억과 결합되어 다른 것들은 절대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것이 되었고, 나는 그것을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었다.

 

 

 

코코의 하루 북파우치



그래서 결국 다시 종이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코의 하루 북 파우치를 사용해 볼 기회를 얻었다.

 

코코의 하루 북파우치는 크라프트 포장지 속에 손 편지, 스크런치, 자투리 천으로 만든 책갈피와 함께 왔다. 그것들은 모두 개성이 강해서 원래부터 한 세트라기보다는 팬시점에서 신경 써서 골라온 것만 같았다.

 

이런 사람 냄새나는 패키징은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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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코의 하루 북파우치에 들어간 강수연 시인의 [Lo-fi].

마치 남색 오버핏 코트를 입은 것 같다.

 

 

코코의 하루 북파우치는 '자연', '예술', '동물', '프리미엄' 등 다양한 콘셉트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내 것은 '동물'인 것 같다. 하마, 코끼리, 토끼, 돼지와 같은 동물들이 총총 박혀있다.

 

미니멀한 표정이 참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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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파우치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

바보같이 생긴 코끼리와 둥글고 다정한 서체의 라벨.

 

 

종이로 다시 돌아온 후,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그중 가장 크게 체감되는 것은 종이는 따뜻하다는 것이다. 플라스틱이나 유리는 따뜻한 날에나 추운 날에나 늘 차갑지만, 종이는 그렇지 않다. 거기에 이 파우치까지 더해지니 올겨울은 무지무지 포근할 것 같다.

 

실은 아직 겪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내 마음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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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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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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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체
    • 귀엽네요 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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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기맘
    •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워지는 계절에  따뜻한  커피향이  필요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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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애
    • 사라질것이 두려워 하지 않은것은 회피에 불과하다는 글...
      매우 공감합니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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