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방 안엔 서향書香이 가득해요 [도서/문학]

선물 받은 책들에 한껏 의미부여하기
글 입력 2021.11.1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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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생일을 맞았다. 요즘 유독 책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해서인지 우연히도 책을 많이 받았다.

 

종류도 다양했다. 읽고 싶다 했던 소설, 좋아하는 작가의 시집, 자기가 재밌게 읽었다던 소설, 넌 이렇게 되었다면 좋겠다는 자기계발서… 도서관이 되기 직전의 방안에서 괜히 쌓인 책들을 매만지고 있는 이유는, 그 책들이 꼭 이걸 준 사람들의 마음 한 조각 같아서였다.

 

 

 

꾹꾹 눌러쓴 편지 대신 꾹꾹 눌러 보낸 기프티콘


 

선물하기가 참 쉬운 세상이다. 어플에서 뭘 몇 번 꾹꾹 누르면 결제가 되고 선물이 보내진다. 보내는 종류도 몇 안 된다. 가볍게 감사를 전할 땐 아메리카노 한 잔, 지인에겐 아메리카노에 케이크, 생일인 친구엔 인기 순위에 있는 것 중 무난한 거 아무거나.

 

그렇게 골라잡기로 선물을 보내다 보면 주문 내역이 한가득하다. 뭔가를 퍼줘서 그런지 괜스레 공허하다. 어렸을 때 문구점에서 보기에 예쁜-내가 갖고 싶기도 한데 정작 사면 쓸모없는- 것들을 골라 담아서 꾹꾹 눌러쓴 편지를 줬던 것과는 또 다른 감상이다. 무엇이 달라서일까.

 

 

 

선물은 어려워


 

가끔 고뇌의 길을 택할 때가 있다. 잘 챙겨주고 싶은 사람들. 그냥 쓰면 휘발될 바코드들은 충분히 받을 테고, 이왕 주는 거 내 선물이 기억에 남았으면 싶을 때가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흘려듣지도 못한다. 선물을 정하기 전까진 매일 혼자만의 싸움을 벌인다.

 

괜히 욕심부렸나 싶지만 시작한 건 멈추질 못한다. 아무 생각 없이 뱉었을 말이 힌트처럼 들린다. 어찌어찌 머리를 쥐어 짜내서 주고 나면 생색내고 싶어진다. 네가 이렇게 말했었잖아, 그래서 이걸 샀어. 너 그때 이거 없다 했지? 그래서 샀어.

 


 

책과 종이와 활자에 스며든 서향


 

그래서 책 선물이 유독 애틋하게 느껴진다. 책은 고뇌의, 고뇌의 길을 거쳐서 내게 온다.

 

일단 첫 번째 시련-선물 정하기-에서 책을 고르고 나면, 또다시 시작이다. 무슨 책을 줘야 하지? 당장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같은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관계도 태반인데, 책 취향을 알기란 더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책을 주기로 한 본인도 꽤 독서를 하는 사람일지라, 대충 서점 베스트셀러를 주고 치우기에는 자존심이 상할 테다. 그러다 보면 두 번째 시련에서 더 깊은 고뇌에 빠져든다.

 

더욱이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건 향의 문제 때문이다. 향수처럼 책에도 특유의 향이 있다고 믿는데, 향수를 뿌리면 그게 뭔 계열인지 눈치채듯 책을 몇 구절 훑으면 그게 무슨 부류인지 느낌이 온다. 그걸 서향書香, 이라고 이름을 붙여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서향을 추측해야만 한다. 그리고 내 서향과 그 사람의 서향이 섞여들어 오묘한 향을 낼 때가 있는데, 그럼 한껏 서로의 향이 스민 책을 선물로 내밀게 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책 선물을 했던 게 재작년의 일이다. 곧게 뻗은 글을 쓰는 친구에게 꼭 너같다며 김소월 시인의 시집을 선물했다. 친구는 시 선집을 내게, 나는 다시 사진 에세이를, 그 친구는 다시 내게... 서로의 향을 실컷 나눠왔다.

 

서점을 돌아다니며 서가에서 한참이고 서 있다가 책을 몇 번이고 뺐다 넣었다를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 친구의 향을 풍기는 책을 발견한다. 아마 친구가 그랬겠지. 그래서 책엔 분명 향이 있다고 믿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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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고맙습니다


 

늘 건실하게 살아가는 친구는 내게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를 줬다. 나도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소설을 읽는 게 취미인 둘은 재밌게 읽은, 혹은 재밌게 읽을 소설 <향수>와 <방금 떠나온 세계>를 내게 건네줬다. 지겹도록 나의 시 타령을 들었을지도 모를 이들은 시집 <은는이가>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들이밀었다.

 

타령을 멈춰보려는 노력일지도 모르겠으나 시 타령에 흥만 더 불어 넣어줬다. 모든 책에서 하나같이 그 사람들의 향이 느껴진다. 짐 둘 곳 없는 작은 방에 뻔뻔히 한 켠을 차지한 책들은 이제 향까지 풍긴다.

 

당분간은 활자를 읽을 시간이 없어서 고이 모셔뒀지만, 눈앞에 두고 읽을 날만 기다리며 또 기대하며 나날을 버틴다. 마음을 선물해준 사람들에게 글 끝을 빌려 애정을 전한다.


 

[김가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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