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나 너는 너, 모아나는 모아나 [영화]

글 입력 2021.10.3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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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영화 <모아나(Moana)>(2017)를 좋아한다. 시원한 바다 배경, 흥미진진한 서사도 <모아나>를 좋아하는 이유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모아나의 여정이 영화를 관람하는 무수한 개인의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모두가 인생에서 숙적을 물리치기 위해 바다를 건너는 긴 여정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아나가 여행 속에서 겪는 굵직한 고민과 방황의 양상은 애니메이션 장르의 영화를 넘어, 현실에 발을 딛고 선 우리의 그것과도 많은 부분 맞닿아 있다.

 

 

 

'프린세스'가 아닌 그냥 '모아나'


 

'디즈니 프린세스 시리즈'는 1937년 영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시작으로, 1세계 백인 남성의 시선에서 전통적인 남녀의 상을 강조하며 체제 순응적인 보수적 이데올로기의 가치를 지향해 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원화된 사회의 욕구를 반영하여 과거에 비해 이데올로기적 수용의 범위를 넓혀 가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였지만, 제 1세계적인 가치들, 즉 백인·자본·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숨겨 확대, 재생산한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다. 이러한 디즈니의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대중들의 관심을 얻지 못했고, 2017년, 디즈니는 <모아나>를 개봉하며 시리즈의 전작들과의 차이를 만들며 분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먼저 <모아나>의 주인공 모아나는 이제까지 디즈니가 창조했던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을 깨뜨린 모습을 하고 있다. <모아나>는 폴리네시아인이라는 제3세계의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제1세계의 시선을 투영해 캐릭터를 창출해냈던 이전의 시도와는 달리, 폴리네시아인의 전형적인 신체적 특징을 과장하거나 서구화하지 않고 되도록 충실히 담아내고자 했다. 이는 디즈니가 이제까지 내세워왔던 백인중심, 자본주의, 남성중심의 가치들로는 새로운 시대의 변화와 요구를 수용할 수 없으며 대중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자기반성의 결과이다.

 

이렇듯 주인공의 외양부터 기존의 프린세스들과 차이를 확연히 드러낸 <모아나>는 영화의 서사 구조에서도 그 전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영화 <모아나>는 디즈니가 지향해온 영웅 서사의 흐름 안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특별한 것은 그 과정에서 주인공 영웅이 ‘여성’이라는 것이고, 그 역할을 누구에게 양보하거나 기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모아나는 영웅으로서 자신이 부여 받은 사명을 해결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성찰하며 본인이 가진 ‘주체성’에 관해 반복적으로 의문을 던진다.


디즈니 프린세스 시리즈 중 초기작들에 해당하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등의 여성 주인공들은 아름답고, 상냥하고 순종적인 것을 여자다움으로 규정 받는다. 이후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고 지위가 높아진 1990년대 전후,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포카혼타스> 속의 프린세스들은 이전의 소극적인 주인공들처럼 왕자가 나타나 자신을 선택할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 시기의 디즈니 프린세스들에게는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움직이는 능동성과 적극성이 추가된다. 그러나 이들이 욕망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에게 부여된 주체성은 한결같이 ‘남성과의 사랑’이다. 결국 이들은 남성들에게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모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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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 <모아나>의 모아나는 이들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 마우이가 모아나에게 정체를 묻자, 마우이에게 “I am not a princecss. I am a daughter of chief.(난 공주가 아니야. 난 족장의 딸이다.)”와 같이 답하는 대사로부터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공주로 태어나거나, 혹은 나중에 공주와 비슷한 지위에 올라 ‘디즈니 프린세스’라는 이름을 얻게 된 기존의 프린세스들과는 달리, 모아나는 자신의 목소리로 ‘나는 공주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프랑스의 문학 이론가이자 철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여성은 자신이 한 말과 주위에서 그에 관해 표현하는 언어를 통해 자신을 인식하는 계기를 갖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누구인가’에 관해 알고 있고, 또 직접 자신의 입을 통해 말하는 모아나의 모습은 여타 프린세스 시리즈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영화의 초반부에서부터, 디즈니는 모아나의 말을 통해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모아나의 여정은‘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의식적(Self-consciousness) 질문에서 시작하는 자아 형성의 과정이며, ‘주체성’을 갖기 위한 여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자신에 대한 자각과 함께 귀환한다. 아울러 그녀의 주체성은 개인적 소명의 성취에만 머물지 않고, 부족의 존망이라는 사회적 소명의 영역까지 관여하고 있다.

 

 


변화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에 주목하다



디즈니는 일찍부터 '디즈니 프린세스 시리즈'에서 등장인물의 캐릭터성을 부각하고 스토리를 전개하기 위해 '공주의 노래(Disney Number)'를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이때 공주의 노래는 작품의 내용 및 주제를 드러내는 도구로 기능하기도 한다. <모아나>에서 모아나의 자기 의식적 질문과 주체성의 획득은 그녀의 세 번째 노래, ‘I Am Moana (Song of the Ancestors)’에 잘 드러난다. 다음은 노래의 일부 가사이다.

 

 

Who am I? (난 누구지?)

I am a girl who loves my island / And the girl who loves the sea, it calls me

(난 내 섬을 사랑하는 소녀야 / 바다를 사랑하는 소녀기도 하지, 바다는 날 부르고 있어)

I am the daughter of the village chief / We are descended from voyagers who found their way across the world / They call me

(난 마을 족장의 딸이야 / 우린 세상을 가로질러 자신만의 길을 찾은 항해사들의 후손이지 / 그들이 나를 불러)

I've delivered us to where we are / I have journeyed farther

(나는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었어 / 멀리 여행해왔지)

I am everything I've learned and more / Still it calls me

(나는 내가 배운 모든 것, 그 이상이야 / 여전히 날 부르고 있어)

And the call isn't out there at all / It's inside me

(그 소리는 밖에서 들리는 게 아니야 / 내 안에서 들려)

It's like the tide / Always falling and rising

(파도처럼 떨어졌다가도 언제나 다시 솟아올라)

I will carry you here in my heart / You'll remind me

(할머니를-이 노래는 할머니께 답하는 노래이다-언제나 가슴에 담겠어요 / 당신은 절 일깨워주시죠)

That come what may / I know the way

(무엇이 닥쳐오든 상관 없어 / 나는 길을 알고 있어)

I am Moana!

(나는 모아나!)

 

 

‘I am Moana’ 이전의 노래 ‘How far I’ll go’가 모아나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며 진정한 자신을 찾으려 노력하는 노래라고 한다면, 이 곡은 모아나가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찾는 순간의 노래이다. 모아나는 노래를 포함한 영화의 전반에서 디즈니의 그 어떤 여자 주인공들도 묻지 않았던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모아나>의 또 다른 등장인물 마우이는 때로는 모아나와 스승과 제자로, 때로는 동료로 관계를 맺을 뿐 그들 사이에 상투적인 로맨스는 등장하지 않는다. 테피티의 심장을 되돌려 놓은 후 그녀는 자신 안의 모험가와 족장이라는 이중의 꿈을 발견하고, 고향으로 귀환해 족장이 되어 바다로 나간다. 이전의 프린세스 캐릭터들이 작품의 개연성과는 관련 없이 남성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고, 그를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찾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크리스테바는 자신의 이론에서 의미가 생성되고, 주체가 구성되는 과정은 전복의 가능성을 가진 열린 구조라고 이야기한다. 즉, 크리스테바에게 주체란 ‘과정 중의 주체’이자 그것이 고착화된 구조가 되지 않도록, 즉 과정 중에 놓여있도록 끊임없이 주 질서에 개입하는 ‘반항하는 주체’인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모아나는 영화의 전반에서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것을 좋아하고 또 하고자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며 그것을 말로 표현한다. 모아나는 그녀 자신을 ‘자신의 섬을 사랑하는 소녀’, ‘족장의 딸’, ‘자신이 배운 모든 것 그 이상’,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모아나’ 그 자체라고 확실히 인지한다.

 

기존의 ‘주체’ 개념이 모두 남성 중심의 서사를 통해 축적되어 왔다면, 모아나는 자신의 역할을 온전히 자신이 수행함으로써 기존의 주체 개념을 전복한다. 또한 본인 스스로에게 계속 해서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주체성을 단정적이고 고정적인 것으로 한정 짓지 않는다. 때문에 ‘족장의 딸’이라는 지위적 주체성만이 아닌, ‘섬을 사랑하는 소녀’, ‘자신이 배운 모든 것 이상’, 그리고 자신은 ‘모아나’ 그 자체라는 변동적이고 변화하는 주체성을 지니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바다에 나가지 않고 족장이 되어 섬을 이끄는’ 숙명에 반항하며, 자신의 내면이 무엇을 원하는지 다른 사람의 개입을 받지 않고 깨닫는다.

 

이렇듯 모아나는 날 때부터 자신에게 겨눠진 관성에 반항하고 여정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보며 스스로의 존재에 관하여 ‘재의미화’한다. 모아나의 행동은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으며,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이는 곧 기존 사회의 권력과 질서의 경계를 새롭게 만드는 정치적·문화적 실천이 된다. 즉, 작품 <모아나>는 그간 디즈니가 지향해온 이데올로기와는 확연히 다른 국면을 보여주는 작품이자, 앞으로 프린세스 시리즈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한다.

 

 

 

I am Mo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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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는 기존의 주체 개념을 전복하며, 본인 스스로에게 거듭하여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주체성을 단정적이고 고정적인 것으로 한정 짓지 않는다. 때문에 ‘족장의 딸’이라는 지위적 주체성만이 아닌, ‘섬을 사랑하는 소녀’, ‘자신이 배운 모든 것 이상’, 그리고 자신은 ‘모아나’ 그 자체라는 변동적이고 변화하는 주체성을 지니게 된다. 크리스테바는 의미가 생성되고, 주체가 구성되는 과정은 전복의 가능성을 가진 열린 구조라고 이야기한다. 즉, 모아나는 크리스테바가 주장한 ‘과정 중의 주체’이자 그것이 고착화된 구조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주 질서에 개입하는 ‘반항하는 주체’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 <모아나>의 제목 <모아나>는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전달한 제목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짐에 따라, 디즈니는 프린세스 시리즈에서 그 가치를 충실하게 반영해왔다. 하지만 거대한 시간의 변화와 상관 없이 달라지지 않는 영원한 것이 있다면, '나'는 '나'라는 것이다. 수많은 변화를 만들고 그를 겪어내는 인생의 과정 속에서, 내가 다른 무엇도 아닌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실이다. 영화 <모아나>를 통해, 과정 속의 주체, 그리고 반항하는 주체인 자신을 돌아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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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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