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듄: 예상치 못한 순간, 거대한 세계가 몰려온다 [영화]

글 입력 2021.11.0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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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이야기


 

코로나19 이후 온기를 잃었던 극장가가 최근 다시 사람들로 가득했다. 초대형 스크린이 있다는 아이맥스 상영관은 전일 매진, 혹시 취소표를 잡을지 모른다는 일념으로 극장에 대기 중인 사람들까지 가득했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엔 영화 <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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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하는 문화 콘텐츠는 못 참는 인간으로서,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야 화제의 영화를 알게 된 게 분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바로 가까운 영화관 중 가장 좋은 상영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영화를 예매하고 달려갔다.


<듄>에 이토록 끌린 것은 화제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감독인 드니 블뇌브가 영화 <컨택트>의 감독이기도 했다는 것을 안 순간이었다. 영화를 자주 보러 가던 2017년, <컨택트>는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영화였다. 영화의 원작 소설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찾아 읽으며 작가 테드 창이 건설한 세계에 한번, 이를 완벽히 구현한 감독 드니 블뇌브에게 두번 놀랐던 기억이 선명하다.


<컨택트>를 보며 느낀 것은, SF라는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의 농도와 범위였다. 그전까지 SF 영화 하면 미래 도시, 디스토피아, 멸망, 전투와 비슷한 단어만을 떠올렸다. <컨택트> 또한 이러한 키워드를 품고 있지만 더 큰 차원의 사랑과 비애, 예술적 순간이 담겨있었다. 거기서 <듄>은 한발 더 나아갔다. 더 깊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숨 막힐 정도로 농도가 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뿐만 아니다. <듄>을 직접 발음해 보라. 제목의 미학이 느껴지는 영화다. 둔탁하지만 속은 비어있는 것만 같은 음절. 낯선 발음으로 누군가의 이름인지, 사물 인지, 대체 무엇을 지칭하고 있는지 호기심이 생긴다. 함께 <듄>으로 떠나보자.

 

 

 

거대한 세계의 서막


 

시작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듄>의 줄거리를 빌려왔다.


 

10191년,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인 폴(티모시 샬라메)은 시공을 초월한 존재이자 전 우주를 구원할 예지된 자의 운명을 타고났다. 그리고 어떤 계시처럼 매일 꿈에서 아라키스 행성에 있는 한 여인을 만난다. 모래언덕을 뜻하는 '듄'이라 불리는 아라키스는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이지만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인 신성한 환각제 스파이스의 유일한 생산지로 이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치열하다. 황제의 명령으로 폴과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죽음이 기다리는 아라키스로 향하는데… 위대한 자는 부름에 응답한다, 두려움에 맞서라, 이것은 위대한 시작이다!

 

- 네이버 영화

 


<듄>의 이야기는 거대하다. 이전에도 미래를 그린 이야기는 많았지만, 이토록 거대하고 웅장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영화는 오랜만이었다. 커다란 의미와 상징이 끈임없이 쏟아져서 감당이 안 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3시간에 가까운 긴 러닝타임 동안 팽팽한 긴장감이 지속되어 몸이 뻣뻣해지는 경험을 했다.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갑자기 마주했을 때의 충격 같은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10191년이라는 아득한 미래를 훔쳐본 느낌이었다. 어떻게 이토록 복잡하고 세밀한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지 경외감이 들었다. 그동안 판타지, SF 영화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논리적 결함을 찾곤 했는데,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않는 압도감과 무게감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듄>이 전하는 ‘거대함’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흔들어 놓았다. 지난주에 이어 나와 함께 2회차 관람에 나선 친구는 세계관을 이해하기 어려우니 미리 영화를 설명해 준 유튜브 영상을 보고 오길  권했다. 관람 전, 정보를 최소화해서 아무런 준비 없이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고맙지만 추천을 받아들이진 않았다.

 

하지만 탄탄한 세계관과 이야기가 관객에 의해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표적인 세계관 강자인 <해리 포터>의 팬들이 그러했듯, 사람들은 <듄>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활발히 이야기하면서 이야기를 재생산하고 있었다. 오래 기억될 영화임을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듄>의 소리: 음악과 언어의 역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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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컨택트>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영화 속 음악이 단순히 극의 배경이 아닌, 관객의 심리적 동요와 이야기 전개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듄>은 <컨택트>보다도 음악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음악 감독을 맡은 한스 짐머는 공격적이고 날선 음악, 말 한마디 없이 인물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하는 음악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그의 음악이 조성하는 분위기는 그 어떤 과격한 이미지보다도 공포와 불안을 느끼게 했다.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듯한 음악이었다. 가끔은 너무 탁월한 음악에 놀라기도, 기괴한 소리에 귀를 막고 싶기도 했다.


<듄>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소리는 ‘언어’다. 긴 러닝타임에 비해 인물들이 던지는 대사의 양은 많지 않다. 인물 간의 대화도 길게 이어지기 보다 많은 공백이 존재하고, 무언의 눈빛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장면이 많았다.

 

발화되는 말은 많지 않지만, 다양한 언어를 불러온 점이 신비감을 더했다. 인물들은 상황에 따라 영어, 불어, 중국어뿐만 아니라 프레멘의 언어, 외계의 언어와 수화를 활용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렇게 다양한 언어는 위급한 상황에서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매개체가 된다.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기 위해 탄생한 언어가 때로는 배제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외적인 언어의 형식이 다양했다면,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어땠을까? 은유적인 표현과 시의 한 구절을 빗댄 듯한 문학적 표현이 넘치는 영화였다. 오랜 세월 누군가의 입과 입을 건너 내려온 미신, 미래의 순간을 예언하는 듯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함축된 말들. 문학 작품을 눈으로 읽는 경험이었다.

 

 


<듄>의 이미지: 전시를 보듯, 영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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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은 심하게 잔인하거나 폭력적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점에서 우아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난폭한 전투를 그린 영화들보다도 더 큰 공포를 느끼게 한다. 이 공포는 위에서 말한 음악과 함께 영상의 이미지, 구도에서 온다.


<듄>의 영상은 딱 맞게 떨어지는 비례, 대칭적인 구도로 회화 작품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언뜻 균형과 조화를 무엇보다 중요시했던 과거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다. 적절한 거리와 비율에 따라 조화로운 모습을 그렸다면 안정감이 느껴져야 할 텐데, 영화 속 장면들은 오히려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우리가 바라보는 인간의 세계는 자로 잰 듯, 완벽한 비율로만 이루어진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구성된 부분도 있지만, 그 틈새마다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함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조금은 흐트러지고, 때로는 한쪽으로 쏠리기도 하고, 딱 맞는 구도를 보이는 일은 흔하지 않다.

 

이점에서 영화 속 완벽한 균형감을 지닌 장면들이 이질적이고,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게 느껴졌다. 또 거대한 인공 건축물과 우주의 자연, 그 앞에 작은 점처럼 같은 간격으로 서있는 인간의 모습은, 그들이 얼마나 힘 있는 대가문이고 황제인지를 떠나, 덧없는 한 인간의 삶, 그 한계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억눌린 느낌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가문 간, 서로의 세력을 과시하고 자신의 가문을 지키기 위해, 우주를 지배하는 황제와 적절한 거리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택한 것은 균형이었다. 가문들의 모 행성, 그들이 거주하는 공간, 군대의 행렬, 모두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균형을 보였고, 그래서 깨질 것처럼 불안했다. 주인공 폴 또한 미래 우주의 운명이 달린 중요한 인물이지만,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엄격한 규율과 규칙, 위에서 아래로만 내려오는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듄>을 보면서 미술관을 거닐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영상의 구도뿐만 아니라 가문마다, 계층마다 그들을 상징하는 신체의 모습과 소유하는 물건, 시각적 이미지는 미술관을 떠올리게 한다. 전위적이고 충격적인 동시대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의 느낌이었다. 다만 미술관에서는 작품을 어느 정도 거리에서, 얼만큼 관람할지 나의 선택 하에 있었다면, <듄>은 어디로도 피할 수 없는 작은 객석에서, 3시간의 긴 러닝타임 동안 쏟아지는 충격을 받아내야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듄>은 시각적 이미지와 음악, 모두를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듄>의 세계로 초대한다


 

<듄>은 놓치기 아까운 영화다. 감독이 빚어낸 세계를 느끼고, <듄>만이 지닌 예술적 경험을 하기 위해선 집에서 보는 것도 역시 아깝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날, 잠도 잘 자고 밥도 든든히 먹고 영화에 맘껏 몰입할 수 있는 몸과 마음으로 영화관으로 향하길 추천한다. <듄>의 세계를 만난 이상, 시간이 흘러도 기묘한 그곳의 시간과 감각을 잊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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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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