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생충, 소확횡의 결말

'소소한' 횡령에서 '지나친' 횡령을 하면 생기는 일
글 입력 2021.10.2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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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년 쯤, 가장 빠르고 간편한 확산성을 자랑하는 소셜 미디어 트위터에서 ‘소확횡’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것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의 [소확행]이란 단어에서 파생되었는데, 먼저 이 원조의 의미는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과 그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을 말한다. 자가 마련, 취업, 결혼 등 경제적/사회적 성공이란 크고 불확실한 행복을 좇기 보다는 현실의 내가 ‘작지만 반드시’ 이룰 수 있는 성취감을 획득함으로써 자아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다. 자기계발서가 아닌 자기위안의 에세이(제목 마케팅의 대단한 성공사례인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등)가 붐을 일으킨 현 세대에 나타난 적절한 위로의 방식이자 생존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소확행]이란 단어는 다이어리용 스티커 같은 ‘딱히 쓸모는 없지만 아기자기한 것’을 수집하는 것에서부터, 퇴근 후 치킨이나 피자 대신 책 한 권과 함께하는 책맥(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것)과 같은 신생 문화, 심지어 ‘지친 피부에 보습을 선사하는’ 스킨케어까지 그 범주로 취급하며 화장품 판매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청년세대 문화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확횡]이란 무엇인가. 바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많은 공감을 얻었던 단어다. 회사에서 무상제공 되거나 업무와 연관되어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사측 자원을, 개인의 목적으로 될 수 있는 한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 ‘자원’이라 하는 것은 다양한 종류를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전기, 물, 종이, 심지어 근무시간 같은 것들도 포함이 된다(물론 이것들은 모두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대한민국의 20~30대 직장인들이 행하는 ‘소확횡’은 다음과 같다.


개인 자료는 회사에서 프린트하기. 전자기기는 꼭 회사에서 충전하기. 회사 탕비실 털기(구체적으로 커피믹스 2개 타서 마시기). 회사 물티슈로 책상 자주 닦기. 심지어 대변을 보면서 돈을 벌 수 있다며 근무시간에 화장실 가기(추가로 꼭 비데 쓰고 나오기)도 어마어마한 공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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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기생충>의 기택의 가족에게도 적용된다. 동익의 가족으로부터 엄연히 ‘횡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들은 조작된 수법으로 일자리를 횡령한다. 운전기사, 가정부, 미술교사 등 있는 자리 없는 자리를 샅샅이 찾아 ‘밀어내고’ 직접 그 자리를 ‘메꾼다’. 침입을 성공한 후엔 마치 정직원이라도 된 양 자유롭게 집안을 횡보하며 은밀한 자유를 만끽한다. 사장 내외 앞에서 몰래 손을 잡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복숭아를 깎아 내며, 집이 비었을 때는 안방의 욕조까지 차지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은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급여에 포함되지 않고 고용 계약서에도 쓰여 있지 않지만 공간 이용을 핑계로 은근슬쩍 손댈 수 있는 것, 최대한도로 고용주의 것을 티 안 나게 누려야 한다. 그 집 아이들을 먹일 돈으로 장을 봐서 내 아이들에게 먹이는 것이야 말로 피고용자가 된 기택 가족이 할 수 있는 짜릿한 소확횡이다.


이들이 그들로부터 횡령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당장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취객의 노상방뇨가 방자하는 곳에서 시작된 기택 가족의 일차적 목표는 의·식·주 였다. 배터지게 먹고 깔끔한 공간에 있는 것. 취직에 성공해서 안정적인 돈벌이를 가지는 것. 바라던 대로 삶의 질이 한 단계 높아지자 그들은 점점 욕심내게 된다. 정확히는 여느 직장인들처럼 이 작고 소소한 횡령에서 만족하는 사람과 ‘욕망’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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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기우는 동익의 딸 다혜와 결혼해 이 집의 사위가 되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기우의 계획이며, 그동안 이 집에서 횡령한 사소한 것들 대신 진짜 큰 것을 제대로 가져보겠다는 포부이기도 하다. 얼마 전 회사 탕비실의 커피믹스를 지나치게 많이 자신의 가방으로 옮겨 담던 한 직장인이 횡령죄로 고소당할 뻔한 사례가 있었다. ‘소소한’ 횡령에서 ‘지나친’ 횡령으로 욕망의 정도를 넓히자마자 그것은 범죄가 되어 ‘벌’을 받는다. 기우가 선전포고를 하자마자 곧 가족은 지하실의 또 다른 기생충과 마주하게 된다. 나의 계급 안에서 누릴 수 없는 것을 욕망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시련과 파국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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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래도 되나? 어차피 돈 많은 사람들인데 뭐. 나 땜에 잘린 윤기사는 잘 살고 있겠지? 우리 코가 석잔데 신경 꺼. 그래 어차피 젊은 놈이니까 뭐. 그들이 소확횡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어차피 돈 많은 사람들’로부터이기 때문이다. 절대 넘어설 수 없는 빈부격차 속에 각종 분노와 억울함을 느끼다가 이젠 그것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 오는 허무함과 무력감. 그러니 그들 모르게 ‘이거라도’, ‘일부라도’ 누리고 싶다는 작은 욕심과 일말의 정당화. 부자들의 삶을 통째로 횡령하고 싶지만 그 대신 소소하고 자잘한 방식으로나마 그들에게 손해를 입히고 있다는 통쾌함과 짜릿함이 그 저변에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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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은 해석의 여지가 차고 넘치는 다양한 의미들을 내제하고 있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떠올리게 하는 지하에서 지상까지의 공간성, 상하의 이미지, 물, 인디언, 지하철 냄새, 대만 카스테라까지. 하지만 그 저력에 깔린 건 넘을 수 없는 계급사회에 대한 현실의 반영과 그 안에서 피어난 분노와 무력감, 변질된 형태의 존경심 같은 것들이 아니었을까 한다. 누군가에겐 기택의 가족에 비춘 현대인들의 소확횡이 언제든 격분이 되어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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