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반오십 INFJ의 인턴 일지 Ep 0. 퇴사합니다

글 입력 2021.10.1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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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0-1. 반오십의 첫 퇴사



퇴사를 했다.


‘퇴사’라는 단어를 쓰니 꽤나 거창하게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소규모 스타트업의 작고 귀여운 인턴이었고, 기간 또한 3개월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이었다. 경력으로는 인정도 되지 않는, 이력서에나 한 줄 추가될 경험이라고 할까.


그럼에도 모든 처음이 그렇듯 다사다난한 3개월이었고,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한 3개월이었으며, 그래서 의미가 있는 3개월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9~10월은 쉬는 날이 많아 3개월을 꽉 채웠다고도 보기 힘들지만, 어쨌든 그렇다.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의 일을 기록으로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은 정말 뜬금없이 찾아왔다. 인턴 기간 동안 가장 자주 든 생각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인데, 한 번 꽂히면 저지르는 내 성향 또한 변하지 않았기에 다짜고짜 메모장부터 열었다.


오랜만에 내 이야기를 정리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단순히 글이 좋아서 국문과에 진학한 나는 학교 과제부터 대외활동까지 하루에도 수만 자를 쓰곤 했고, 취미 활동 또한 글과 관련된 것이었다. 남들은 리포트를 한 줄이라도 늘리기 위해 글꼴부터 줄 간격까지 온갖 꼼수를 동원할 때, 나는 한 줄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인생은 정말 사주팔자를 완벽히 거스르지는 못하는 걸까. 최근 들어 몇 년 전 나의 사주를 봐주었던 H의 말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20대 초반과 달리, 20대 중후반이 되면 글을 덜 쓸지도 몰라.”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실제로 현실의 벽을 마주하며 글태기가 찾아왔다. 글로 벌어먹고 살지는 못해도 키보드를 놓고 싶지는 않았는데, 머릿속에 하고 싶은 말도 차고 넘치는데, 정작 그것이 글로 옮겨지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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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근무를 시작하면서부터는 H의 예언(?)처럼 자연스레 취미 활동을 놓게 되었다. 첫 한 달간은 네이버 포스트에 업로드할 글을 기고하는 게 주 업무였는데, 하루 종일 글에 시달리다보니 퇴근해서까지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던 탓이다. 이래서 취미가 일이 되면 취미마저 사라진다고 했던 걸까. (따로 날짜를 세보지는 않았지만 아트인사이트 활동도 근 1년을 쉬었다는 걸 발견했다.. ^^;;)


그래도 쉬는 날마다 메모장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글감을 끼적대는 걸 보면 마음 한구석에 미련이 남았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반오십을 몇 달 남겨두지 않은 지금,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3개월간의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Ep 0-2. MBTI에 대한 간단한 고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MBTI를 믿지 않는다.


물론 100% 믿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랜 기간 쌓여온 데이터는 신뢰하지만,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을 고작 16가지 범주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한다는 것에 가깝다. 더 정확히는, MBTI로 모든 사람의 유형을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인정하지 못한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 자신의 MBTI는 소름 돋게 잘 맞는 편이다. 최근에 다시 한 번 검사를 해봤는데, 또 INFJ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혼자 소름 돋기도 했다. 남들은 상황이나 컨디션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던데, 나는 정말 뼛속까지 INFJ인 걸까.


주변 친구들도 말한다, 너는 INFJ를 사람으로 옮겨 놓은 표본 같다고. INFJ가 겉으로는 마더 테레사 같지만 속으로는 히틀러를 품고 있다는데,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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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유명 짤에서도 비슷하게 표현된 것 같다.

 

 

신기한 건, INFJ는 전 세계 1%의 희귀 유형이라면서 나의 주변에는 INFJ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유유상종이라고 표현하기엔 글쎄, W의 경우 10년 가까이 알고 지내도 나와 다르면 달랐지, 비슷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물론 W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러한 현상이 MBTI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각설하고, 그럼에도 제목에 INFJ를 넣은 이유는 첫 번째, 그럼에도 나는 내가 INFJ라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 (꼭 INFJ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MBTI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위로를 느꼈다. 지인들로부터 ‘특이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내가 생각해도 내가 특이한 것 같았다. 이만하면 착한 것 같다가도 때때로 드는 나쁜 생각에 놀라고, 은근히 관심 받고 싶지만 부끄럽고, 안정과 평화를 좋아하지만 변화 없는 삶은 지루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MBTI가 유행한 후,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뭐야, 생각보다 나 같은 사람이 많잖아?
 


인정욕이 강한 나는 어쩌면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러한 성향은, 짧은 인턴 생활을 거치는 동안에도 어쩔 수 없이 발현되었으니, 결국 ‘나’라는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했고 말이다.

 

 

[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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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푸른하늘
    • 와 저도 INFJ예요 ㅎㅎ 이렇게 뵈니 반갑네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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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당근J
    • 2021.10.16 18: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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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하늘와 그렇군요!ㅎㅎㅎ 저도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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